저만치 어둠을 뚫고 거대한 은빛이 섬광처럼 번득인다. 온몸에 전율이 인다. 궁극의 럭셔리를 만났다. 마이바흐 62. 4월 어느 밤, 눈 앞에 나타난 마이바흐 62는 마치 먼 수십억 년 전 지구를 지배했던 티라노사우르스의 부활과도 같았다. 가로등 아래 내려앉은 길이 6.2m의 거대한 차체는, 한눈에 모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하늘과 땅, 주변 모두가 이 경이로운 차 앞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지난 반 세기 동안, 마이바흐라는 위대한 이름은 다시 살아나지 않을 줄로만 알았다. 그 때와 같은 그런 마스터피스는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을 걸로 알았다. 하지만 지금, 그 이상의 마이바흐가 눈 앞에 드리워있다. 21세기에 새로 태어난 마이바흐는 그 옛날 선조가 그랬듯 다시 한번 시대를 초월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기술력과 디자인, 고급스러움, 그리고 전통. 마이바흐는 이 모두를 아우르려 한다.
62는 '호화로움의 축도(Epitome of Luxury)'라 불리는 마이바흐의 기함. 1920~30년대 최고의 디자인으로 여겨졌던 제펠린 DS8의 전통을 계승한 모델이다. 마이바흐를 압도할 차는 마이바흐뿐. 57S의 강렬한 이미지는 62 앞에서 어느 새 한풀 꺾이고 만다. 히말라야 다크 그레이와 실버 컬러가 어울린 거대한 차체는 '직접 보고 느껴야 알 수 있을' 위압감을 준다.
숱한 명차를 바라보며 가슴 설렌 적은 많지만, 이번처럼 철저히 압도 당하긴 처음이다.
1997년 도쿄 모터쇼에서 컨셉트카를 처음 공개한 뒤 2002년 제네바 오토살롱을 통해 양산화를 선언한 마이바흐는, 데뷔 당시부터 상상을 초월한 값과 놀라운 고급성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미국으로 향하는 세계 최고의 호화 여객선 퀸 엘리자베스 2세 갑판에서 진행한 월드 론칭 이벤트도 그 자체로 숱한 화제를 뿌렸다.
7억8천만 원이라는 엄청난 가격표를 단 62는, 전세계 마이바흐 판매량의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당연한 일이다. 마이바흐를 선택한 사람에게 비용은 중요한 척도가 아닐 터. 62는 최고를 지향하는 사람에게 걸맞은 최상의 품위를 제공한다. 차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호사를 담아낸 차. 직접 운전할 일이 없더라도, 차에 오르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을 차다.
운전석은 가죽과 우드 트림으로 단장했다. 57S와 똑 같은 구조를 지녔는데, 트림의 소재가 다르다. 부드러운 볼륨감을 드러내며 흘러간 대시보드 라인은 이제 메르세데스 벤츠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잡은 느낌. 타깃 구매층이 그렇듯, 62의 인테리어는 통상적인 개념의 고급스러움을 한참 넘어선다. 똑 같은 가죽이고 우드 트림일지라도 손에 닿는 감촉이 다르고, 심지어 코를 자극하는 향기마저 다르다.
독일 진델핑겐의 마이스터들이 미술작품 다듬듯 빚어낸 대시보드 패널과 가죽시트는 함부로 손을 대기가 망설여질 정도. 지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소재 속에 담아낸 장비들은, 그러나 보기와 달리 너무나 쉽게 움직여준다. 압도적인 존재감이 두려울 뿐, 62의 기능성은 의심할 여지조차 없다. 가죽과 우드 트림으로 꼼꼼히 여민 스티어링 휠은 마치 피부와 하나가 되듯 손바닥 가득 뿌듯하게 들어오고, 가만히 앉아 팔만 뻗으면 모든 계기들이 손가락 끝에 와 닿는다. 거대한 차체지만, 운전석에서는 버거워 하지 않아도 좋다. 62는 완벽한 쇼퍼 드리븐 리무진. 하지만, VIP를 모시는 운전자 또한 최상의 편안함 속에서 운전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톱기어>의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낸 62는 격벽까지 갖춘 최상위 버전. 앞좌석과 뒷좌석 사이를 가로지른 글라스 격벽은, 뒷좌석 암레스트에 내장된 버튼 조작만으로 간단히 내리거나 올릴 수 있다.
어디 그뿐이랴, 격벽을 올린 상태에서 또 다른 버튼을 누르면 글라스 격벽 내부가 순식간에 하얀 스모그 처리되어 뒷좌석을 완벽한 개인공간으로 만들어준다. 격벽을 올리고 도어 윈도와 리어 윈도 커튼을 모두 치면 외부와 단절된, 100% 나만의 공간이 등장한다.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의 시트처럼 리클라이닝 기능을 갖춘 시트도 62의 하이라이트. 독립식 시트를 쭉 펼치면 흠잡을 데 없는 휴식공간이 제공된다. 등받이는 최고 47도까지 젖혀져 가장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게 해준다.
마이바흐는 모두 200만 개에 이르는 옵션을 준비하고 있다. 실내를 장식하는 가죽이나 우드 소재의 종류에서부터 컬러, 질감, 또 서로 다른 두 가지 이상 소재의 조합 등 모든 게 고객의 주문에 따라 가능해진다. 따라서 마이바흐의 인테리어를 일률적으로 설명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일 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무의미한 일이기도 하다. 마이바흐 고객들은 여섯 가지 그랜드 나파 양가죽과 세 가지 우드 트림 가운데 마음에 드는 걸 선택해 자신의 고유 인장을 새겨넣을 수도 있다. 62의 뒷좌석 인테리어를 살펴보면, 주문형 조합이 끝이 없으리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뒷좌석 천장에는 속도계와 시계, 온도계가 나란히 달려있다. 격벽과 커튼으로 외부 정보를 모조리 차단한 VIP에게 차의 주행상황을 최소한으로나마 보고하려는 성의가 돋보인다. 두 개의 뒷좌석 사이에는 DVD 플레이어 등 엔터테인먼트 시스템과 시트 및 커튼 등 조작 버튼, 수납함, 냉장고 등이 마련되어있다. 또 주문에 따라 순은으로 만든 샴페인 잔도 제공된다. 달리는 차 안에서 만의 하나 유리잔이 깨어져 다칠 경우를 염려해 순은으로 샴페인 잔을 만들었다는 후문. 뒷좌석 가운데에서 나오는 샴페인 잔 홀더는, 흔들리는 차임을 고려해 잔 받침대 고정 걸쇠까지 세심하게 갖추고 있다. 마치 항공기 시트처럼 개인용 미니 테이블도 암레스트 옆에서 뽑아내어 쓸 수 있다. 앞좌석 센터페시아에서 이어진 뒷좌석 센터페시아에는 커다란 수납공간과 에어컨 컨트롤 버튼이 자리잡았다. 수납공간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 도어 트림에는 각 두개씩 널찍한 수납함이 마련돼 있고, 센터페시아 등 실내에도 눈길 가는 곳마다 수납공간이 준비돼있다.
62의 인테리어에서 가장 눈길을 끈 부분 중 하나는 고급스러우면서도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천장 조명등. 마치 우리나라의 창호를 깊이 연구한 듯, 창호문양의 천장은 밝기 조절에 따라 은은한 실내를 연출한다. 그뿐 아니라 B필러와 C필러 안쪽에 마련된 무드 조명 또한 튀지 않는 불빛으로 62의 실내를 꾸민다. 독서등을 뺀 모든 조명은 두드러질 정도로 밝지 않은 게 특징.
62의 뒷좌석 공간은 아무리 설명해도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실감할 수 없을 만큼 넓다. 키 180cm 가까운 남자라도 시트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힌 채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공간이 남아돈다. 이 차의 격을 생각하면 감히 상상조차 해서는 안될 짓이지만, 시트를 내버려두고 바닥의 최고급 매트 위에 앉아있더라도 다리를 편히 펼 수 있을 정도다. 시트가 깊고 실내가 워낙 넓은 탓에 도어 열고 내리기가 꽤나 힘들 것 같지만, 실상 '생각했던 것보다는' 그렇지 않다. 물론, 마이바흐 정도면 도어맨이나 수행비서가 얼른 열어준 도어를 통해 우아하게 차에서 내리는 게 가장 어울리는 광경. 하지만, 부득이할 때는 몸을 일으켜 직접 손잡이를 붙잡고 내려도 그리 어색하지는 않아 보인다.
62의 호화 여객선 같은 차체를 이끄는 심장은 V12 5.5ℓ 550마력 엔진. 최고출력은 5천250rpm에서 나오고, 91.7kg·m에 이르는 최대토크는 2천300~3천rpm의 영역에서 고루 퍼져 나온다. 완벽한 방음대책과 최상의 기술력이 어울려 어떤 주행상황에서도 실내는 고요하기만 하다. 길고 거대한 차체는 보기와 달리 운전자의 컨트롤에 부지런히 응답을 보낸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 차의 사이즈에 익숙해지기란 예삿일이 아닌 듯하다. 사진 촬영을 위해 짧은 거리를 오가며 운전석에 잠깐씩 앉든, 긴 이동을 할 때 조수석에 앉든, 오직 뒷좌석에 앉아있을 때를 빼고는 차가 움직이기만 하면 혹여 이 귀한 보디에 생채기라도 날까 오금이 저려오기 시작하니 말이다. 언뜻 좁아보이던 트렁크룸의 용량은 605ℓ에 이른다. 62의 엄청난 사이즈를 간접적으로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1921년 처음 등장한 최초의 마이바흐는 20년 동안 1천800대만 만들어졌다. 하나하나가 일일이 손으로 만들어진, 귀중한 차였다. 당시 절정의 가치를 보여준 이는 칼 마이바흐. 칼의 아버지는 바로 마이바흐 브랜드의 시초인 동시에 벤츠 창업자 중 한명인 고틀리프 다임러의 측근이던 빌헬름 마이바흐였다. 당시 이들 부자가 창조해낸 가치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고스란히 이어져온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마이바흐는 "과거를 돌이켜보는 것이야말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최선의 길"이라고 말한다. 그 정신은 지금껏 면면이 살아있는 듯하다. 지금 이렇듯 우리 곁에 등장한 21세기의 마이바흐는, 20세기 초의 조상으로부터 무형의 정신만을 속속들이 이어받아 가장 가치 있는 형상을 빚어냈으니 말이다.
마이바흐는 전세계 어떤 매체를 살펴봐도 저널리스트의 본격적인 시승기를 찾아보기 힘든 초호화 럭셔리 세단. 설령 개인적인 취향은 존재할 지 몰라도, 이 급의 세그먼트에서는 기술적 평가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이런 차들이 언제나 있어왔다. 어지간해서는 오너가 아닌 사람들의 승차를 허용하지 않는 차. 이름만 들어도 아찔한, 명품의 반열에 이름을 올린 차가 그렇다. 그런 차들은 굳이 직접 스티어링 휠을 잡지 않더라도, 모든 성능을 낱낱이 끄집어 내어 살펴보지 않더라도, 그 차의 존재를 통해 또 다른 문화와 세상을 접할 수 있음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마이바흐로 인해, 이제 갓 창간 1주년을 맞은 <톱기어> 한국판은 너무나 큰 축복을 받았다. 이보다 더 근사한 선물이 과연 있을까. 게다가 12페이지에 걸쳐 마이바흐 화보를 촬영한 예는 국내는 물론이거니와 <톱기어>의 본산인 영국 등 세계적으로도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케이스. 62와 57S를 나란히 촬영한 전례 또한 더더구나 드물었다. 이틀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마이바흐와 함께 보낸 시간은 영겁이었다. 그 이틀 동안 완전한 비현실 속으로 떠났다 돌아온 느낌이다. 다른 차들과 달리, 마이바흐는 함께 있는 동안 도무지 헤어날 수 없는 최면과도 같았지만, 헤어지자마자 금세 스테인드글라스 너머 아련히 보이는 존재인양 한 꺼풀 덧씌운 고결한 이미지만 남겨두었다. 속세에선 도무지 다가설 수 없는 차인가?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바뀌었어도, 마이바흐는 언제나 마이바흐였다.
취재협조: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
장소협조:인천국제공항공사·재단법인 경기도 영어문화원 파주 영어마을
SPECIFICATION : MAYBACH 62
Price : 78,000만 원
Engine : V12 5513cc 550마력/5250rpm 91.7kg·m/2300~3000rpm
Transmision : 5단 자동, 뒷바퀴굴림
Tire : 275/50 R19
Performance : 0→시속 100km 가속 5.4초 최고시속 250km 연비 5.3km/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