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가 바뀐 현대차 위기설... 아직 진짜 위기는 오지않았다
최근 비자금 조성 등과 관련 MK가 검찰에 소환되고 구속위기에 몰리는 등 현대차가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는 것으로 언론에 비춰지고 있습니다. 우선 현대차 수장이 사실상 움직일 수 없게됐으니 대외적으로 그룹전체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도 무리는 아닐겁니다. 현대차는 총수를 정점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군대같은 조직으로도 유명하니까요. 현대차에서 MK의 위치는 다른 대기업의 여느 총수 이상의 비중을 갖고 있는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언론보도를 통해 나오는 현대차 위기설의 내용을 읽어보면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현대차가 수장을 잃어 최근 벌이고 있는 대형 해외사업에 큰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한국최대의 수출산업인 자동차산업이 이번 검찰조사 건으로 인해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거의 전 언론의 경제면을 채우고 있고요. 심지어 현대차 적대적 M&A설까지 나오고 있더군요. 뭐 어차피 가정을 다룬다는게 안될 것은 없겠지만, 하필 지금상황에서 적대적 M&A까지 거론한다는 것은 자동차에 조금만 관심있는 독자가 보더라도 기사의 의도를 의심할 여지가 있습니다.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한 언급인 것은 물론이고 엄밀히 따져 현대차의 M&A 가능성이 이번 사태로 인해 더 커졌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왜 그런지를 설명하는 것은 논점이 너무 확대되는 관계로 다루지 않으려 합니다만, 현대차 적대적 M&A설의 기사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쪽의 출처가 처음에 어디서 시작됐는지 잘 살펴보신다면, 이 기사의 분석 근거가 다소 부족하다는 것을 아시게 될겁니다.
환율위기 노사문제 등도 역시 현대 스스로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1990년대 도요타 혼다는 지금 현대의 경우보다 훨씬 더 심한 환율위기를 겪었지만, 오히려 더 크게 성공했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현대가 글로법 톱5로 도약하기 위해선 어차피 넘어야 할 산입니다. 최근 게시판에 도요타가 신형 캠리 등에 들어가는 3.5리터 V6 엔진의 원가를 어떻게 절반으로 줄였는가에 대해 쓴 적이 있습니다. 역시 원달러 환율이 아무리 현대차에 불리하게 전개된다 하더라도 쥭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이제껏 현대가 성공해온 것이 결코 현대에 유리한 상황 때문만은 아니었던것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위기 역시 현대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또한번의 도약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현재 현대차의 위기와 MK의 경영공백이 어떤 관계인지 간단히 생각해보겠습니다. 경영공백의 위기는 현대차 경쟁력에 어느정도 영향을 줄까요.그동안 MK가 품질경영을 통해 현대차를 세계적인 글로벌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분명 인정할만한 위업입니다. 하지만 MK가 빠진다고 해서 회사가 흔들린다면 주가가 떨어져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현대차의 주가는 최근의 현대위기와 상관없이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시장상황을 가장 냉정하게 보는 쪽에 속하는 주식시장이 아직 이번 사태를 현대차의 위기로 보지 않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또 대부분의 현대차 애널리스트들은 현대차 주식에 ‘매수’ 의견을 내놓고 있고요. 목표주가는 현주가보다 20~30% 정도 높게 잡고있습니다. 가장 부정적으로 보고있는 삼성증권 정도가 ‘보유’ 의견입니다. 단적으로 예상해보면, MK가 경영일선에 정상복귀한다해서 현대차 주가가 오르리라는 보장은 없으며, 차라리 MK가 제2선으로 물러나고 좀더 신속하고 효율적인 의사결정권을 지닌 전문경영인 체제가 잘만 정비된다면 오히려 주가가 오를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좀더 논의를 좁혀서, 최근 불거진 비자금 조성이나 경영권승계와 관련된 문제들을 생각해보죠.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문제이지만, 현대차의 근본적 경쟁력과는 다른 각도로 봐야 합니다. MK가 1조원 사회환원을 언급한 것은 정말 안타깝고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 고전하고 있는 미국의 GM이 2003년 중반부터 내놓았던 일련의 광고시리즈가 있습니다. ‘구원으로 가는 길(Road to Redemption)’이라는 것으로 당시 디트로이트에서는 ‘사죄의 광고’로 알려진 것이었죠. 이 광고에서 GM은 1970~1980년대 GM차의 품질이 형편없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제는 GM의 품질을 믿어도 된다는 것을 속죄 형식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소비자들이 이 광고를 반겼을까요? GM의 말을 믿어주었을까요? 결과는 지금의 미국시장상황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1990년대 중후반 도요타가 미국시장에서 엄청난 이익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 디트로이트의 일부 언론이 “도요타가 미국자동차시장의 주류가 됐기 때문에 미국의 자동차 중심부 디트로이트에도 사회적 책임을 느껴야하며 공공시설에 기부해야 한다”는 취지의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정말 그래야 할까요? 도요타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일반적인 미국시민에게 봉사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도요타는 이익을 내기 위해 존재하는 기업입니다. 자선단체가 아닙니다. 따라서 도요타는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국에서 도요타 차를 사주는 구매자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하며, 도요타 주주들에게 이익을 안겨주어야 하고, 미국에서 도요타를 위해 뛰는 미국인 도요타 직원들에게 잘해야 합니다. 그게 다입니다. 날마다 피말리는 경쟁속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기업에게 그 이상을 요구해서는 안됩니다. 당연히 도요타는 디트로이트 언론의 그런 부당한 요구에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특정부분에 위법한 문제가 있다면 법적으로 단죄하면 됩니다. 엄밀히 말해 그것을 현대차 전체와 하나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MK의 현대차이기도 하지만, 현대차는 국내 제조업의 대단히 큰 축을 이루는, 수많은 국민들의 생계와 연결된 하나의 거대한 경제블록이기도 합니다. 현대차는 국민에게 사죄하고 거액의 현금출연을 통해 해결할 생각을 하지말고 현대차 구매자와 현대차 주주와 현대차 직원에게 더 잘할 생각을 해야합니다.
자동차세상 게시판을 통해 작년 말부터 현대차의 경영권문제나 현대차의 경쟁력약화 등에 관해 현대의 문제점을 지적한 글을 써오긴 했지만, 전 글로벌 자동차기업으로서 현대차가 지닌 경쟁력은 여전히 뛰어나며 그 강점은 단기간에 손상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갈수록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세계 자동차업계에서 최근까지의 현대차처럼 큰폭의 흑자를 낸 기업은 도요타 혼다 정도를 제외하고는 없습니다. 간단히 얘기해서 현대가 너무 무리하게 헛돈 쓸 일을 벌이거나 스스로 붕괴를 자초할 일만 하지 않고 지금의 경쟁구도 속에서 일정정도의 순익 수준만 유지하면서 버텨준다해도 현대는 5년후 10년 뒤에도 잘하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얘기입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26일 블룸버그의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페섹은 “한국은 칼 아이칸과 같은 외국인 투자자를 배척하기보다는 재벌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하며, 외국인들은 최근 현대차그룹 사태를 계기로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의심하게 됐다”고 전했습니다. 저는 사실 MK를 축으로 하는 강력한 오너체제가 좋은지 전문경영인체제가 좋은지에 대해서 윌리엄 페섹처럼 강하게 얘기할 자신은 없습니다만, 최근 잘나가는 회사들이 대부분 전문경영인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어느쪽이 더 나은 방법이다 라고 말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신속하고도 일관된 의사결정, 단기실적에 연연해하지 않고 좀더 길게 계획을 밀어붙일 수 있다는 점 등에서 본다면 오너체체가 오히려 유리한 점도 많습니다.
BMW나 도요타 같은 경우를 보면 크반트 가문이나 도요다 가문이 뒤에서 버티고 있지만 현재 이들 회사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특히 BMW CEO 헬무트 판케는 뮌헨대 교수, 매킨지 컨설턴트 출신으로 이전의 BMW 순혈주의를 깬 인물이기도 합니다. 도요타 CEO 와타나베 가쓰아키의 경우 도요타 경영기획실 참모 출신의 도요타맨이긴 하지만 역시 전문경영인에 해당합니다. 혼다의 후쿠이 다케오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혼다 F1 팀에서도 일했던 오리지널 혼다 엔지니어 출신이니까요. 혼다의 CEO이지만 도쿄 아오야마에 있는 혼다 본사건물에는 후쿠이 다케오 전용의 사무실도 없습니다. 임원들과 함께 쓰는 커다란 사무실에서 일하고, 커피도 직접 공용자판기에서 꺼내 마신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도요타의 경우는 와타나베 다음에 다시 도요다 가문 출신인 도요다 아키오 체제로 갈 것이라는 관측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전문경영인 체제라고만 보기도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전문경영인체제와 오너체제는 서로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현재 현대가 오너체제인 것이 반드시 문제라고만 보기는 힘듭니다. 다만 이번 일로 인해 MK의 경영권에 어떤 변화가 있게 된다면, 이 기회에 현대 상층부에서 감지되고 있는 노쇠현상이 일신될 필요는 있다고 생각됩니다.
제목에서 현대차의 진짜 위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한 것은 현대차는 정말 지금부터가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경영권 문제가 빠르게 해결돼 MK가 돌아오든, MK 대신 ES가 일선에 나서든, 아니면 전문경영인체제로 바뀌든 당면한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을겁니다. 현재 중국 유럽 등에서 현대차의 성장이 예전같지 않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리고요. 가장 중요한 미국시장에서 신형 캠리의 등장과 구형 캠리 할인판매 등 일본차 마케팅에 밀려 쏘나타 판매가 부진하다는 것도 무척 심각한 일입니다. 예전에 한국에서 실어보내던 때는 미국에서 덜 팔릴 경우 물량을 다른 쪽으로 돌릴 수 있었지만, 앨라배마 공장에서 찍어낸 쏘나타는 북미에서 전부 소화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게 계속 재고로 쌓이다보면 현대차 입장에서 큰 부담이 됩니다. 렌터카업체에 싼값에 밀어내다보면 중고차값이 엉망이 돼서 결국 일반소비자들이 제값 주고 안사려 할 것이고요. 그런 악순환이 반복된다면 현대차의 수익성 악화는 물론 현대차가 갈망하는 브랜드이미지 구축에 큰 악영향을 미치게 될겁니다. 그렇다고 공장에 쌓아놓을 수도 없는 일이지요. 어쨌든 현재 미국시장에서 도요타 혼다의 그 어느때보다 강력한 마케팅공세로 인해 현대가 무척 고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신형 쏘나타나 아제라(국내명 그랜저)의 상품성이 도요타 혼다 못지않게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벌어지는 일이라 더 안타깝습니다.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현대의 텃밭이었던 소형차부문에서마저 도요타 야리스, 혼다 피트 같은 차가 치고들어오는 것도 불안합니다. 또 하이브리드, 친환경디젤, 연료전지 기술 등에서 개발자금을 어떻게 분배해 쏟아붓느냐도 관건인데요. 이런 부분이야말로 역시 최고경영자가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갖고 결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세계자동차산업의 지형도를 놓고 봤을때 현대의 상황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세계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도요타와 비교해서 그렇지, 현대차의 현재 이익률 수준은 여전히 훌륭합니다. 최고경영진의 의사결정이 얼마나 제대로 이루어지느냐가 전제된 문제이긴 합니다만, 현대가 지금의 인력과 가용자원만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한다 해도 충분히 생존해 나갈 수 있을겁니다. 위기는 언제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현대차의 분전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