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빠른 항공기로 기록되었던 SR-71 블랙버드의 명칭은 타격 정찰-SR(Strike-Reconnaissance) 또는 전략 정찰기-SR(Strategic Reconnaissance)를 의미한다.
SR-71의 개발이 시작된 주 이유는 U-2 정찰기의 추락에서 시작된다.
U-2 첩보기는 워낙 고공(지상 20Km이상)을 비행하므로 당시에는 이 U-2 항공기를 격추시킬수 있는 나라가 없었다.
지대공 미사일도 도달할수없었으며, 다른 전투기도 따라 잡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유유자적하며 소련영공으로 들어가서 정찰임무를 수행하는게 예사의 일이었다.
1960년 U-2 조종사 파워즈는 SA-2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드디어 소련이 U-2를 격추시킬수있는 미사일을 보유하게된 것이다.
이로서 미 CIA는 새로운 정찰기의 개발이 필요하게된 것이다.
U-2보다 더 고공에서, 더 빠른 속도로 더 낮은 레이더 탐지면적이 필요하였다.
이 때문에 미국은 코드네임 "구스토(Gusto)" 프로젝트를 마련, RCS를 줄인 신형 초음속 정찰기 획득에 착수하게된다.
그러나 CIA는 이 신형 정찰기가 이전에 한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현존하는 기술을 능가하는 능력이 요구되었기 때문에 매우 비싼 기체가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소음이 없고 비 철금속을 사용한 동체로 가장 빠르고, 가장 높이 나는 스텔스형 정찰기의 탄생을 기대하였다.사실상 정찰기를 이용한 방대한 첩보 수집이 가장 저비용이었던 것이다.
순항 속도 마하 3에서 4, 순항 고도 8만(24835m) ~ 10만(30,480m)피트가 CIA의 요구 사항이었다.
최소의 레이더 단면적, 예술적 디자인, 고성능 통신기기, 최신형 카메라와 각종 감지기 설치는 기본이었다.
켈리 존슨은 개발팀을 편성하여 1957년에 기본안이 마련되었던 록히드 A-12기 개발에 착수했다.
당시의 컴퓨터 기술은 대단히 제한적인 능력만 갖추고있어서 기체 개발은 매우 어렵고 고된 작업이었다.거기에다 초극비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A-12 개발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신형 정찰기 개발 계획은 원자폭탄 개발 계획이었던 맨하탄 프로젝트의 보안 수준에 비교될 정도로 초극비였다.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최측근, 공군 최고위층과 CIA, 그리고 몇 명의 하원의원만이 프로젝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1959년 7월,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공정한 평가하에 제너럴 다이내믹스와 록히드 중 하나를 선택하며, 경쟁에서 이긴 회사는 가능한한 빠른 기간내에 원형기를 제작해야한다고 지시하였다.
1959년 8월 20일, 두 회사의 설계도와 제안서가 국방부/공군/CIA 합동 부서에 제출되었다.
곧 두 회사가 제안한 기체에 대한 평가 작업이 실시되었다.
1959년 8월 29일, CIA는 제너럴 다이내믹스를 제치고 록히드의 손을 들어주었고 9월 1일에는 450만달러의 예산이 승인되었다.이로서 CIA의 스텔스성 정찰기 획득 계획인 코드네임 "구스토(Gusto)" 프로젝트가 종료되고 다시 코드네임 "옥스카트(Oxcart)"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SR-71은 록히드사(현재의 록히드마틴사)의 당시 부사장이었던 클라렌스 존슨이 이끄는 팀에 의해서 흔히 스컹크 웍스(Skunk Works)로 알려진 록히드사의 Advanced Development Projects diuision에 의해 개발되었다.
SR-71이 성공을 거두자, 이제는 미공군이 눈독을 들였다.
바로 이 25Km이상을 비행하는 고공의 비행성능과 마하 3.8을 넘나드는 속도를 이용하여 F-106기를 대체하는 전투기를 구상하게된다.
마하 3급 전투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미 공군에 록히드는 A-12 정찰기의 전투기형을 제안한다. A-12는 이미 CIA의 비밀 자금이 투자됐기 때문에 개발에 성공한다면 미 공군은 저렴하게 마하 3급의 전투기를 획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제안은 A-12 사업에서 미 공군을 전면에 내세우고 주체를 감추고 싶어 했던 CIA의 입장과도 맞아떨어져 A-12의 전투기형, 즉 YF-12 블랙버드의 개발이 1960년 8월에 승인된다.이미 마하 3급의 A-12를 개조해 탄생하게 되는 YF-12 검은 새(Black Bird)에는 세계 최고의 눈과 발톱이 추가됐다. YF-12의 눈으로는 탐지거리가 500마일을 넘는 AN/ASG-18 펄스도플러 레이더가 채택됐다.
1963년 8월 7일에 첫 비행을 성공한 YF-12A는 1964년 표적기에 대한 장거리 요격실험까지 성공리에 마쳤다. 성능에 만족한 미 공군은 1965년에 93대의 양산형 F-12B를 록히드에 주문했다.
하지만 공군의 구매 의지에도 불구하고 맥나마라 당시 국방부장관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1966년에 YF-12 프로그램을 전면 취소시키고, 대신 염가형의 F-106X 개발을 지시한다. 결국 F-106X도 개발이 취소돼 미 공군의 F-106 후계기 선정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방공형 F-16 ADF 기종으로 결정됐다.
대량생산됐다면 러시아의 MiG-25를 능가하는 가공할 요격기가 됐을 YF-12는 결국 드라이든 비행연구센터로 이관돼 1979년까지 실험기체로 사용된 후 퇴역했다. YF-12 사례는 성능도 만족스러웠고, 소요군도 사용을 원했지만 무기체계 효율성만을 강조하던 맥나마라 장관의 의지 때문에 취소된 경우다. 맥나마라 장관의 무리한 의지는 미 공군과 해군 전투기를 F-111 기종으로 통합한다는 TFX 계획도 실패로 끝나면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YF-12의 가장 큰 특징은 레이더를 기수부분에 탑재하기위해 기존의 SR-71에있던 날렵한 칼날같은 턱을 제거하여야했으며 이로서 기수부분은 SR-71 과는 달리 둥근모양이되었다.
이어서 장거리 요격기 버전인 YF-12A가 1963년 개발되었으며, SR-71로 명명된 미공군의 정찰기는 1964년 비로서 처녀비행을 실시했다. 이들 항공기에 대한 존재가 대중에게 공표된 것은 1964년 2월 29일로 당시 대통령이었던 린든 존슨 대통령은 A-11이 캘리포니아 공군기지에서 실시된 테스트에서 시속 2000마일 이상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A-11기체 설계를 바탕으로 하여 전략 정찰기로 설정된 SR-71의 개발은 1963년 2월 시작되었다. 첫 번째 비행은 1964년 12월 22일이었으며, 당시 실험적 성격의 장거리 요격기로 개발된 YF-12A는 1964년 9월 30일 에드워드 공군기지에서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SR-71A의 첫번째 작전 출격은 1968년 일본 오끼나와에 위치한 가데나 공군기지에서 있었다.
SR-71은 취역한 후 30년간 실전 배치된 군용기중 가장 빠른 항공기의 지위를 유지해 왔으며, 각종 기록들을 갈아 치웠다.
1976년 7월 28일 SR-71기는 25km의 직선코스를 시속 2194마일로 비행하여 세계최고기록을 경신했으며, 같은 날 또 다른 SR-71기는 85,069피트 상공에서 지속 비행함으로써 고고도 비행 신기록을 경신했다.
SR-71기는 캘리포니아주의 빌 공군기지에 위치한 제9정찰비행단 소속으로 실제 활동은 역시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에드워드 공군기지를 근거지로 한다.
그러나 SR-71기는 1990년도에 모든 임무를 마치고 퇴역하였다. 이것은 동구권과 러시아에서의 공산정권 붕괴에 따른 냉전종식에 따라 미국의 국방예산이 삭감됨에 따라 운용비가 지나치게 비싸고 실질적으로 동원해야할 목표대상을 상실한 SR-71기를 퇴역시키게 된데 따른 것으로 후속기의 개발이나 기종의 기술적 결함 때문은 아니었다.
그러나 1994년 미의회는 SR-71기를 실제로 운용하지는 않더라도 항시 운용 가능한 상태(즉 대기상태로)로 보유해야하며, 따라서 재 취역시킬 것을 지시하였다. 이것은 실제로 접경지역의 신속한 정찰 필요성에 SR-71만큼 효과적으로 대응 할 수 있는 기체가 없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결국 SR-71기는 미의회의 1억 달러에 달하는 예산지원 등에 힘입어 상시 운용 가능한 상태로 대기하기위하여 2대가 '재취역' 하여 1995년 3/4분기부터 오클라호마주의 라이트 페터슨 공군기지에 배치되었으며,(상시 운용하는 것은 아니다.) 2대는 필요시 사용가능하도록 보관되었고,
이밖에 NASA에 2대의 SR-71기(SR-71A, SR-71B(훈련기))를 항공 연구목적으로 빌려주었다.
이 두 대의 SR-71기는 현재 에드워드공군기지내의 드라이든 항공연구센터(Dryden Flight Research Centre)에 소속되었다.
그러나 다시 1997년 10월 14일 빌 클린턴 대통령의 결정에 의해 SR-71은 다시 퇴역조치에 취해졌으며, 그 다음해인 1998년 10월 30일 미공군은 SR-71 프로그램의 파기를 명령했으며, SR-71의 폐기에 따른 부속품들은 U-2기에 사용되어진다고 발표되었다.
그러나 현재도 SR-71의 특징과 비행특성은 현재도 하이퍼소어(Hypersoar)와 같은 극초음속기의 기체와 추진시스템의 개발을 위해 참고 되고 있다
기체구조는 주로 티타늄과 티타늄합금으로 되어 있어 지속적인 초음속비행에 의해 발생되는 열에 견딜 수 있도록 되어 있다.
SR-71은 검은색의 레이더파 흡수 도료로 도장되어 있다.(그러나 실제로 SR-71은 배기구로부터 분출되는 엄청난 열등으로 각종 센서에 쉽게 감지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은색으로 도장된 기체의 표면은 지속적인 초음속 비행에 의해 발생되는 상당한 양의 열에너지를 방사하는 역할도 한다. SR-71의 검은색 도장은 이기체에 '블랙버드'라는 별명이 붙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SR-71기의 길이는 33.5m, 너비는 16.95m, 높이는 5.64m이며, 자체중량은 60,000파운드(27,215kg)이다.
SR-71 블랙버드는 2개의 P&W사제의 J-58엔진을 장착하고 있다. J-58엔진은 후기연소기(애프터버너)가 장착된 Axial Flow 터보램제트엔진으로 1개의 엔진이 32,500파운드의 엄청난 출력을 낸다.(F-15E의 F100-PW-229 엔진이 29,000파운드의 출력을 낸다.)
엔진의 공기흡입구 부분은 엔진실 앞부분에 원뿔모양의 중간부분(소위 Movable Spike라고 불림)이 위치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것은 터보젯 엔진에 공급되는 엔진의 흐름의 최적화 시켜서 엔진의 출력을 증대시켜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애프터버너와 분사노즐은 이 기체의 초음속 공기흡입비행에 적합하도록 설계되었다.
조종사는 2명이 탑승하여 한 명은 조종사이며, 또 다른 한 명은 정찰요원으로 두 명 모두 완전 가압비행복을 착용한다.
워낙 고공을 비행하다보니, 우주에서 방사되는 우주선이 침투하며 이를 방지하기위해 우주복과 같은 모양을 하게되었으며, 별도의 산소통 등을 사용해야한다.
SR-71 내부 조종석. 전형적인 3세대 항공기의 계기판이다.
전체적으로 SR-71은 델타익을 하고있다. 델타익 후미에는 엘러베이터와 에어론 기능을 동시에 하는 엘레본이 설치된다.
티타늄이 주 구조물인 SR-71은 비행중 발생하는 열(공기 압축에 의해 생기는 열)로 인해 금속이 팽창을 한다.
이 금속 팽창을 사전에 계산하여 지상에 있을때는 서로 구조물간의 간격이 벌어져 덜거덕 거리기까지한다.
이런 비화도있다. 이 항공기 개발을 위해 고온에서도 견디는 유압 작동유를 구하기위해 연구소에 연구를 한 결과, 연구소에서 들고온것이 밀가루 같은 것을 들고왔다. 이게뭐냐고하자, 바로 고온에서도 견딜수있는 유압용 Hydrauric이란 것이다.
즉 상온에서는 고체가되고, 비행중 극고온에서 액체가되는 것이다.
타이어도 워낙 고온 상태에서 팽창하여 터져버릴 위험이있어서, 타이어를 애기들 세발자전거 같은 통타이어를 장착하였다.
A-12는 공격기가 아니라 개발중 붙인 일련번호이다. 사진은 A-12의 첫 비행사진이다.
A-12의 사출좌석 실험
극비에 붙여진 A-12의 비행은 UFO등으로 유명한 51구역에서 이루어졌다.
SR-71 조립과정.
51구역에 에서 테스트중인 SR-71.
SR-71중에는 훈련기로 사용하기위해 복좌를 제작하기도하였다. 무엇이 거위를 닮았는지는 모르나, 별명을 티타니윰 거위라 불렸다.
전투기형태로 제작된 YF-12. 레이더 수용을 위해 기수부분이 둥글게 제작되었다.
수직꼬리날개가 안으로 기울어진 것은 레이더 반사를 작게하기위한설계였다. F-117, F-35, F-22 등의 항공기에서도 사용하는 방법이다.
엔진은 제트엔진과 램제트를 모두 사용하였는데, 램제트는 고속에서만 작동이 가능하다.
이륙과 램제트 작동 영역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J58 일반 제트엔진이 사용된다.
SR-71 운영을 중단한 결정적인 이유는 운영비가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비행준비를 위해서는 거의 12시간 가까이 작업이 필요하다. 밀가루 같은 작동유를 데워서 액체로 만들어야하고, 지상에서는 줄줄새는 연료와 생명유지장치등을 점검하기위한 것들이다. 대개 오늘날 전투기는 비행준비를 위해서는 약 한시간정도가 필요하다.
51구역에 주기한 SR-71. 두번째 항공기가 복좌형이다.
SR-71과 YF012를 구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수부분의 레이더 외에도, 정찰기형은 Ventral Fin이 없다.
하지만
YF-12에는 엔진 하부에 벤트랄 핀이 달려서 정방 기수부분 개조로 인한 공기역학적 특성을 보완해주고있다.
복좌형으로 제작된 YF-12.
고속의 비행 능력을 이용하여 무인기(Dron)을 비행시키기도하였다. 드론은 적지역으로 들어가 정찰을 하고 찍은 필름을 지상에 투하한후 자폭하는 형태다. 파워즈 사건과, 나날이 발전하는 소련의 지대공 미사일을 염려하여 또 다른 파워즈 사건이 발생할것을 염려한 결과이다.
SR-71은 한때 오끼나와에 주둔하면서 북한 영공을 드나들면서 많은 정찰 활동을 하였다.
내가 초등학교때 뉴스에 나오면서 나에게 항공분양의 관심을 끌게했던 항공기인데, 당시 뉴스는 이 비행기가 휴전선 근방을 비행하는데, 북한이 이를 격추시키기위해 미사일을 쏘았고, 미사일은 항공기가 지나간후 한참뒤에 폭발했다...라는 뉴스다.
하지만 실제로는 북한을 수없이 들락거렸으며, 이를 알고도 북한은 격추시킬 능력이 없었다.
SR-71.... 무수한 기록과, 항공매니아들의 관심의 대상이었으며 지금도 그 형상과 성능을 보면 가히 그당시 수준으로 만들었나 의심이 가는 정말 걸작중의 걸작이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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