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머니 옛말로 고녀 (고등여학교)-지금의 여고 다니실 때 다친 다리로 평생을 불편하게 사셨습니다.
포항에 처음 면회오실 때 한참 먼저 군대 가 육군 병장 달고 있던 친구 녀석들과 함께 오셨습니다.
포항시내 작은 여관방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로 밤샜는데...
지금은 우리 어머니 손주도 못 알아보시고 오로지 하나뿐인 이 아들만 알아보시는 94세의 노인이 되셨습니다.
만화 보고 나니 나도모르게 울컥하네요.
저 병장 당직근무 전날, 사수 갈굼때매 일병하나가 저녁점호때 사라짐 이틀정도 못찾고 있을때 저 멀리 고향에서 부모님이 부랴부랴 오셔서 확성기 단 레토나 타고 ,그 당시 우린 페바에있었는데 gop까지 가서 월북하지 말고 그만숨고 나오라 하며 찾으러 다니심, 그 와중에 우리 중대 구막사 보일러가 잔고장이 많았는데 그 일병 아버지가 보일러 수리공이셨음, 그 정신없고 마음조리며 아들도 못찾는 와중에도 보일러 고쳐주시는거 보고 참 울컥했엇네요..그 일병은 그다음날 폐쇄된 분리수거장에소 배고픔과 추위를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나타났음 ㅋㅋ
18살때 혼자 학교 때려치고 상경해서
지금 마흔이 됐는데..
엇나가던 시절에 엄마 가슴에 못 박은 말들이 지금도 생각나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어디선가 부모 가슴에 못 박으면 못을 빼내도 그 자국때문에 또 눈물 흘린다 하던데..
그런 생각날때마다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 다시" 라는 노래의 가사가 생각납니다..
노래 가사에서 너의 의미를 헤어진 연인이 아니라
엄마로 바꿔보면 그때 나를 보시던 엄마 마음이 어땠을까 싶어서 마음이 참 많이 아픕니다..
잘할걸..
아니 그러지 말걸..
그렇게 안해도 되는 일이었는데 싶습니다
지금은 치매가 심해지셔서 힘들게 요양원에 계시지만.. 자식사랑이라면 둘째가라면 싫어하시는 어머니 그 단어 그대로였습니다..요양원 가시기전 억지로 제가 병원에 강제입원을 시킨적이 있어.. 지금도 자식들중 제 이름은 절대 안 꺼낸다 합니다ㅠ 이 중생 고통의 몸..
헤어짐이 더 가까워올수록..젊으셨을때가 더 그리운거같습니다
21살때 군대간다는 막연한 두려움과 나의 자유는 끝낫다는 생각에 입대전 거의 두달을 친구들과 술마시고 놀았죠,,, 아버지는 이를 엄청 못마땅해 하시며, 항상 쌍욕과 구박을 하시고,,,ㅋㅋㅋㅋ 저로선 아들이 얼마안잇어 군대가는데 이런것도 이해못해주시는 아버지가 이해가 안됐구여,,, 그리고 입대할때도 기차를 타고 포항까지 가는데, 친구를 셋이나 데리고 간다며,,,ㅋㅋ 그걸로도 욕먹고,,,(부모님은 일때문에 같이 못가주심,,,) 그렇게 입대날 기차를 타고 가는데, 아버지한테 전화가 오더니, 모진 아빠 만나서 니가 해병대를 가게됐다며, 우시더라구요,,, 아버지가 우시는건 그날 처음봐서,,, 전 괜찮아요 하고 끊고 저도 눈물이 나더라구여,,, 훈련소 끝나고, 후반기교육갓더니 전화 5분시켜 주길래, 아버지한테 전화했는데, 아버지는 반갑게 전화를 받아주셧는데,,, 왜이리 목이 메이던지,,, 살아계실때 효도해야되는데, 처자식 챙기다보니, 항상 죄송한 마음뿐,,, 잘할게요 아빠!!
포항에 처음 면회오실 때 한참 먼저 군대 가 육군 병장 달고 있던 친구 녀석들과 함께 오셨습니다.
포항시내 작은 여관방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로 밤샜는데...
지금은 우리 어머니 손주도 못 알아보시고 오로지 하나뿐인 이 아들만 알아보시는 94세의 노인이 되셨습니다.
만화 보고 나니 나도모르게 울컥하네요.
엄마 엄마랑 나...이 아들 훈련소 퇴소식때
잠시 봤고 그때 화해 했지? 율 엄마..아들이 철없어서 이래저래 많이 미워했는데
이 아들 그때 우시는 울 엄마 보고 나도 산으로
뛰어가서 많이 울었어 ㅠㅠ
이제 이해해 울 엄마가 왜 그랬는지 ㅠㅠ
아들 이렇게 나이먹고 나서야 이해하네
울 엄마 꿈에라도 다시 보고픈 엄마
안동에서 포천까지 오신 울 엄마!
멀어도 너무 멀다
한번 왔으니 이제 안와도 되지?ㅎㅎㅎ
그후로 면회 안오심!
엄마 멋져요♡
댓글이 마음을 울리네요.
감사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엄마가 아빠가 보고싶네요.
이제는 어머니 아버지 할 나이가 됐는데도 이럽니다.
감사합니다.
병원에 꼭 하루만 외출하게
부탁해서 아들 군 면회
오셨었죠
왜그렇게 부대 주소를 물어보시나 했었지
군대는 참...
마산 참 좋은곳이죠^^
늘~~~ 복되고 건강한 날들 되시길바랍니다.
아직 눈에 선합니다..
단풍놀이 잘 댕겨 오셨지요..?
사랑함돠
울아들 엊그제 자대배치 받았는디..
집이 부천인데 거제도로..아오..
전집이 거제도인데 강원도 인제로 배치 받았었네요.
거제 놀러 오셔서 구경도 하시고 맛 난거 드시고 하세요~
휴가 나오면 그만 좀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동참해준 분대원,소대장 모두 지금 잘살고
있을겁니다.
면회는 오지 않았어요
막판엔 좀 그만 나오라고... ㅋㅋ
12사단 신교대 나오셨군요..^^
지금 마흔이 됐는데..
엇나가던 시절에 엄마 가슴에 못 박은 말들이 지금도 생각나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어디선가 부모 가슴에 못 박으면 못을 빼내도 그 자국때문에 또 눈물 흘린다 하던데..
그런 생각날때마다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 다시" 라는 노래의 가사가 생각납니다..
노래 가사에서 너의 의미를 헤어진 연인이 아니라
엄마로 바꿔보면 그때 나를 보시던 엄마 마음이 어땠을까 싶어서 마음이 참 많이 아픕니다..
잘할걸..
아니 그러지 말걸..
그렇게 안해도 되는 일이었는데 싶습니다
전역 때도...
집에가니 점심 먹고 있음 ㅋ 울 엄니
영장받고 일주일만에..
집을 나서는날 어머님이 입혀주시던 털실조끼를 잊지못합니다
밤새 뜨게질을 하셔서 짠 조끼.
입대하면 소포로 보내질것을 아시면서도 입대날 하루를 입히게 하려고 밤을 새워 하셨던 뜨게질.
지금은 90 이신 어머님께 불효자는 늘 죄송할 따름입니다
면회 오시는 분들 보면,
부모님 면회는 몇번 못보고 대부분 여자친구 면회였는데.
아, 한번도 면회 안오는 병사도 있긴 했음. 성실한 놈이었는데.
새벽에 눈물나와서.... 딴일 못하게...
대한민국 해병대 2사단 GOP 근무 합니다.
코로나 땜시 딱 한번 휴가 나오고 면회도 안되니 보고 싶은 마음 간절 합니다.
아들아 보고 싶구나~~~
비닐커튼 넘어 휠체어에 앉자 계시는 엄마
10분 비대면 면회하고 왔는데...
지금은 치매가 심해지셔서 힘들게 요양원에 계시지만.. 자식사랑이라면 둘째가라면 싫어하시는 어머니 그 단어 그대로였습니다..요양원 가시기전 억지로 제가 병원에 강제입원을 시킨적이 있어.. 지금도 자식들중 제 이름은 절대 안 꺼낸다 합니다ㅠ 이 중생 고통의 몸..
헤어짐이 더 가까워올수록..젊으셨을때가 더 그리운거같습니다
우정의무대가 따로 없구만
임관식때는 왔었는데...
재대할때는 못보셨는데..,
보고싶네
말년쯤 휴가때나 잦은 포상휴가는 아무도 신경안쓰는.... ㅎㅎ;;
입영날아침 엄마,아버지께 큰절올리는데눈물이 너무나서 업드린채로 일어나질 못하겠더라...
부모님도같이우시고 ㅠ
춘천 102보충대 다와가니 운전하시던 아버지가 우리아들 헤어질때 다됐네하시며
백미러로 쳐다보시는데 눈물흘리고 계시더라...ㅠㅠ
입소하고 "부모님들은 모두내려오세요" 이말에 부등켜안고 우는데
태어나서 최고많이 울었던기억이....
20년넘은 추억인데 지금도 눈물나네
남자들 군대얘기하니 빠지기싫어서 기억하나 ...ㅋㅋ
군대짠밥 먹고싶다고 ..하셨는데
엊그제 기일이였음
건강히 길러주신 것만 해도
세상 모든걸 다 해주신겁니다
못난 불효자
참나... 눈물이 고이네요 ㅎㅎ
다녀와야 알수 있음
전국각지에서 별 희안한 사람들 모인곳이라 힘들지만 느끼는것도 많은곳이 군대임
엄마 얼굴 보고나면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 내 어머니 사랑하는 내 어머니
보고도 싶고요 울고도 싶어요
그리운 내 어머니
엄마가 그리울 때 엄마 편지 다시 보고
엄마 내음 느껴지면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 내 어머니 사랑하는 내 어머니
보고도 싶고요 울고도 싶어요
그리운 내 어머니
- 그리운 어머니 (작사:강문수 작곡:강인구 노래:강인엽)
불효자 자식이지만 이노래래 들을때마다 마음 고쳐먹곤합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팔자 좋게 잘 먹고 헬스장 가서 몸 만들고 하는 재벌집 아들들 정치인 아들들은 죄 면제고...
군시절 군단FTX훈련때 포항에서 여주.양평 남한강으로 훈련와서 기동할때 우리집 지나가는데 엄마가 나와서 손흔드는 모습을보고 눈물이 흐르는데 엄마는 날봤을까 알아봤을까? 나중에 엄마한데 엄마 나인즐알고 손흔든거야.. 물어보니 해병대 전차가 지니간다고 그래서 너는 알아볼거라 생각하고 나와서 먼지날리는 도로옆에서 그많은 전차 장갑차 다 지나갈때까지 손흔드셨다고
엄마 앞에서 나도모르게 속도줄였다가 헤드셋에서 울려퍼지는 전차장의 쌍욕.. 그래도 기분좋았던 기억이 엄마를 봤으니까 ㅋㅋㅋ
문무대 가니 논산훈련소 도 많이 변햏더라고요.
입소대 연병장에 들어 서는 순간. 딱 30년전 바로 그날이 다 떠올랐다. 30년전 그 연방장은 그대로. 안동 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여동생들.
세월지나 이젠 나의 아들이. 입대.
아들과 헤어지고 운전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몇시간내내 눈물 낫습니다.
울엄니 아부지 의무대 후송가서 입원면회만 오시고
그뒤로는 안오셨다는
나이들고 병든 부친이나 모친을 홀로 두고 군에 강제로 입대해 1년 365일씩 2년 가까이 근무하나 월 수만원의 임금이 전부였는데 정작 피해받았다고 말한 여성이나 장애인들은 최소 월 100여만씩 벌었으니 정작 누가 피해를 보았는지 모른단 말인가?
무지한 부모와 노인들이 이런 추태를 자행하는 자칭 보수들에게 표를 주는 것은 스스로 자신과 자식의 불행을 자초하는 꼴인데 수십년간 당하고도 모르면서 또 보수들에게 표를 주고 있으니 얼마나 우둔하단 말인가?
아부지가 운전해주시던 쏘2에 죽마고우들과함께 포항땅으로 갔었지~~~~!!
세월이 22년이 훌쩍~~~~~~~참. . . . .
보배드림가족분들 늘 복되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군대가는게 실감나지 않아서 어머니가 싸주신 김밥먹으며 차 뒷좌석에서 친구랑 시시덕 거리며 훈련소까지
갔는데...그때까지 아무말 없으시던 어머니가 잘다녀오라고 울면서 말씀하셨던 목소리가 훈련소 입소첫날
잠자리에서 계속 생각나 잠을 못이뤘던게 생각나네요.
볼때마다 눈물나는 만화 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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