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한 사연과 진행과정은 닉네임 누르고 지난 글 보세요.
1. 계속 글을 써야 하는 이유
이제 한 40일 정도 된 것 같군요.
누워있다보면 몇 일 지나가 있어 저로써는 지난 글 이후 지금이 다음 날입니다.
지금이라도 멀 먹어라 하시는데, 작년 11월의 단식은 그래도 본인의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었지만 지금 단식은 먹을 수가 없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이미 1월초부터 구역질과 메스꺼움이 심해서 먹을 수가 없다고 글 남겼었습니다.
억지로 먹어도 졸립고 피곤해서 계속 더 드러눕게 되어 이차저차 이렇게 되었습니다.
작년 11월 단식도 일주일간 잠을 자지 못해서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12월에도 자의반 타의반 16일간 밥을 먹지 못하였습니다.
12월에 제가 글을 썼었나요?
일부러 안 먹으려하는 것도 아니고, 관심이나 끌려는 의도였다면 12월에는 왜 글을 쓰지 않았을까요?
제가 먹지 못하는 것과 글 쓰는 것은 시기가 우연찮게 중첩되었을 뿐 별개입니다.
단식을 하지 않고 있다면 비판글만 썼겠죠.
그 비판 내용이 단식 시작하게 된 경위와 현재까지도 밥을 못 먹게 된 결과로도 이어지니 함께 담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전에 부천XX요양병원에 전화해준 것을 대단한 위세로 아시는 분이 있는데, 저는 분명히 작년 11월에 초기글에서부터 요양병원에 전화하지 말라고 글 남긴 바 있습니다.
오히려 본인 휴대폰번호를 남기며 본인에게 전화하라 하였는데 본인에게는 한 번도 전화 온 적이 없습니다.
왜 당사자에겐 전화하지 않고 요양병원에 전화한 것은 무슨 의도일까요? 그리고 지금도 그것을 자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로써는 돈이라도 갈취하려는 목적 외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당사자 번호까지 공개했는데 왜 당사자한테는 전화하지 않고 요양병원에 전화해준 것을 지금도 섭섭해하고 있을까요? 어떤 댓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요? 특히 요양병원들이 문제 많다는 인식이 은근 널리 있기에 더더욱 그런 의심을 짙게 합니다.
지난 주말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다룬 내용이지만, 사람들이 참 사악들 합디다. 공익을 빌미로 사적 이익을 노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본질이 훼손되는 사례가 지난 주말 방송에 있었습니다.
https://programs.sbs.co.kr/culture/unansweredquestions/vod/55075/22000317891
그런 행위가 정작 피해당사자를 위한 행위인지 양심에 손을 얹고 돌이켜보길 바랍니다.
요양병원에서 부당한 행위를 당하여 잠도 못자니 할 수 없이 단식하는 사람한테 직접 연락하여 위로나 조언을 해준 것도 아니고 요양병원 원무팀에 전화한 것은 마치 무슨 약점을 잡고 딜을 하려는 의도로 밖에 안 보입니다. 처음 전화부터 기자를 사칭한다는 전화였고 원무팀장이 추궁하니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입니다. 진짜 기자가 맞다면 왜 더 당당히 추궁하지 못하고 당사자가 휴대폰번호까지 공개했는데 확인전화 한번 오지 않았을까요? 세상이 옛시절 보다 더 혼탁하고 정의가 사라진 듯 합니다. 남의 불행을 이용하여 편취하려는 자들까지 이곳에 있고 지금도 이익을 못 본 것에 유감을 표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래서 아무리 민주고 인권이고 떠들어도 인간 자체가 이기적이라 사회발전에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행위가 지금까지 사태를 악화시킨 원흉입니다.
지금 현재도 업무방해 사건이 진행중인 만큼, 그 행위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얼간이들이 있다면 추후 피의자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어린 아이들도 알만한 전후순서입니다.
바로 이곳에서의 그런 행위로 일이 지금까지 이어지니 여기다 계속 글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그만 쓰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 댓글 보니 대부분 그때 일과 연루된 듯 보입니다.
왜 본인이 입 다물고 침묵하면 사건이 조용히 묻힐까봐 그럽니까?
여기 분들 팩트 엄밀히 검증하는 거 좋아하던데 그렇다면 제 글이 계속 이어져야 무엇이 진실이고 누가 얼만큼 잘잘못이 있는지 명백히 밝혀지기 위해서라도 글은 계속 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2. 현재 몸상태
다리, 오른쪽 허벅지가 팔뚝만해졌습니다. 한창 건장할 때 제 팔뚝만도 못한 것 같습니다. 이러니 걷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또한 단식으로 이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우울증 등 정신적 고통도 심한데 신체적으로도 걷기 힘들어지니 더욱 음식을 구하거나 먹을 의지가 약해지는 것입니다. 대소변 보기도 상당한 힘이 들어가니 음식물 섭취가 12월부터 저절로 줄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몸에서 음식이 잘 받지 않아 먹기도 힘들다고 이미 1월초부터 말해왔습니다.
이렇게 상호 인과관계에 의해서 단식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신체가 건강한 사람이라면 애초 이렇게 오래 단식도 못할 것입니다. 아니면 한번에 끝내기 위해서 약을 구하거나 목을 메거나 투신을 했겠죠. 저로써는 그런 것도 구할 수 없을 정도의 신체상태이고 어쩔 수 없이 누워만 지내야 하는 상태이니 자의반타의반 단식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근원은 작년 11월부터의 단식이겠죠. 그때 안했으면 지금까지 정신적 육체적 고통도 없었을테니 지금 단식도 안하고 있겠죠. 그러나 작년 11월의 단식 또한 요양병원의 가혹한 처우 때문에 역시 자의반타의반 시작했던 것입니다.
애초 단식에 본인 의지 보다 외부 환경 요인이 더 컸습니다.
3. 꿈속의 기억
어제인지 그제인지 계속 잠들어 있다보니 어릴적 일화가 꿈에서 재현되었습니다.
초등 5학년 때 미술학원에서 겪었던 일인데 제가 그림을 좀 잘 그리는 편이었습니다. 다닌지 한두달 정도 밖에 안 되는데도 배우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칭찬도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시샘이 있었는지 제가 그렸던 그림을 중학생들이 빼돌려 대회 나가서 상도 타고 그랬습니다. 반복되는 이런 문제로 다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원장은 도리어 내가 피곤하다는 식으로 되려 본인을 나무라고 모친에게 말해서 학원을 그만 나오게 했던 것으로 기억 납니다. 학원 액자에 걸어둔 것인데 이걸 가지고 나갈 정도면 결국 원장의 묵인이나 허락이겠죠. 모친이 청각장애가 있어서 그런지 별로 따지지도 못하고 그냥 내가 유난 극성 떠는 아이로 몰리고 학원을 그만 나가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그림도 돌려 받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그게 마음의 상처가 되어서 이후로 그림 그리는 것도 포기하고 화가의 꿈도 접었습니다.
근데 왜 하필 이 시기 30년도 더 된 일화가 마치 어제 일처럼 꿈에서 재생되며 부천XX요양병원 사람들이 연상되었을까요?
왜 그런 꿈을 꾸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미술학원 원장 나이대가 지금 부천XX요양병원 간호팀장, 수간호사와 원무팀장이 당시 내 그림을 뺏어가놓고는 이를 따지니 누나 형한테 덤벼드는 불손한 아이로 몰아세운 그 중학생들 나이대랑 같습니다.
청각장애 모친이 할 수 없이 도와주러 나섰으나 도리어 울상을 짓게 된 것도 그때와 같구요.
나이 몇 살 더 먹었다고 갑질 당함이 지금 40대 중반 나이까지 되풀이 되다니 참 인생이란 끝없는 뫼비우스의 순환 띠 같습니다.
옛날 일로 치부할 정도가 아닙니다. 사람이 한이 맺히면 40년이 지나서도 따지게 됩니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137115
부천XX요양병원에서 겪은 일도 제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내 영혼 깊숙이 각인 되어 다음 생까지 영향 끼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을 파기하고 고소전 벌이는 등 잊어보려해도 현실적으로도 얽매이게 만들고 있는 것 또한 부천XX요양병원 측입니다.
그리고 현실적인 가혹행위와 향후 예견되는 수탈 또한 그때와 같네요. 소중한 것을 뺏어가고 도리어 나쁜 사람 취급 당했던 어린 시절의 일이 지금 이 나이에도 되풀이 되니 더욱 좌절과 우울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마음 뿐 아니라 심신 모두가 다친 상태이니 더욱 희망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단식3일차 원무팀장이 병실에 처음 올라와서 한 말이 기억 납니다. 수간호사 태도부터 지적하니 당신 보다 나이가 많으니 반말 좀 해도 된다는 식의 대응이었습니다. 원무팀장 역시 같은 태도이길래 나중에 말해주길 서너살 더 먹은 사람들이더군요. 원무팀장 수간호사는 거의 같은 나이였습니다.
반말만이 아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애 취급하고 하대하는 태도였습니다. 친근감과 애정으로 하는 반말 정도는 구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웃으면서 하는 반말이랑 인상 쓰면서 손가락질하면서 하는 반말이랑 같겠습니까? 문제를 지적하니 들어나 보려는 사람과 듣기 조차 싫다는 사람의 평소 반말이 같은 것이겠습니까? 그래서 글초기 수간호사의 반말을 유독 지적한 것입니다.
머 나이 때문만은 아니겠죠.
가령 본인이 나보다 한 서너살 어린 40살 먹은 사람한테 그따위로 행동하면 가당키나 한 행위겠습니까?
지들 딴에는 나름 사회적 지위가 있고 넌 사회에서도 특별한 신분지위가 없었던데다가 수급자들이나 오는 요양병원 입원환자이니 지들보다는 낮은 등급이라는 이런 선입견이 있으니 처음부터 반말에 하대하는 행위를 하였던 거겠죠.
그런 평가기준이 있는 요양병원이라 그런지 입원날 다른 병원들과 달리 신상명세를 받아가더군요. 이름 주소는 당연 기본일테고 보호자 연락처까지 받는 건 이해하겠습니다. 근데 마치 어디 취직이나 군대 가는 것도 아닌데 직업, 재산, 학력 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받아적어갔습니다. 아마 이런 문제에서도 낮은 신분으로 판단하는 자료가 되었나 봅니다. 취직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것에 구애 받고 싶지 않고 그리고 적으라는 칸이 한정되어 있어서 더 자세히 적을 수가 없고 자영업으로 오래 일해 그런지 기억도 가물해서 적당히 고졸이라고 쓴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간호기록지 보니 맨 첫폐이지부터 매번 고졸이라는 문구가 반복되더군요. 아 바로 이래서 수간호사가 바로 반말과 하대하는 태도로 나왔구나, 매번 간호사팀들이 바귈때마다 환자들 수준을 봐가면서 처우했구나 매번 첫장의 처음이 환자의 학력표기였습니다.
근데 실은 본인이 졸업은 못했지만 4년제 대학 3학년까지 다녔습니다. 당시 IMF 라는 불온한 환경이 배경에 있습니다. 취업이나 경력 목적이라면 대학중퇴나 전문대졸 정도로 표기하겠는데 그 당시 내민 조사지 칸도 좁고 오후에 입원절차였고 곧바로 정형외과 외래 예약 있어서 당시 시간에 쫓기는 편이라 별 생각 없이 고졸이라는 칸에 체크했는데 나중에 간호기록지 떼니 매번 첫폐이지 화면에 나오는 환자에 대한 기본체크 정보였던 것입니다.
아 이래서 이랬구나라는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이것도 참 웃긴 일입니다. 의사 빼고는 대단한 학력을 가진 사람들도 아닐텐데 상대가 고졸이라고 얼마나 우습게 봤을까... 머 이 나라 여자분들이 학력 더 따진다는 것은 이미 알만한 상식일테고 ㅎㅎㅎ
이러니 일련된 하대행위가 이해가 되었습니다. 사람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중국인 타방간병인이 행패하는데도 환자를 챙길 생각을 안하고 방관하거나 되려 나무랐겠습니까?
이렇게 돌아보니 쓴웃음의 연속입니다.
요즘 세상에 환자의 학력을 따지는 병원도 있다니 말입니다. 그것도 요양원 만도 못한 요양병원에서 말이죠 ㅎ
4. 단식중 조사 가혹행위
제 인생 역시 그러하지만 역사란 큰 틀에서 돌아봐도 100년전이나 지금이나 세상의 근본원리는 바뀐 거 같지 않습니다.
부천XX요양병원 병원장과 원무팀장이 고소한 사건을 대한 부천SS경찰서 형사들 중 일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피의자를 대하는 인권개념은 100년전 일제시절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http://program.kbs.co.kr/contents/vod/vod.html?source=episode&sname=vod&stype=vod&program_code=T2013-0571&program_id=PS-2018211931-01-000§ion_code=05&broadcast_complete_yn=N&local_station_code=00§ion_sub_code=08&site_id=8259
테라우치총독암살미수조작사건에 대한 방송인데, 여기서도 언급된 바와 같이 인간의 고통 중 제일 심한 것이 잠을 재우지 않는 것, 그 다음 고통이 배고픔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18:30초경부터 더 자세히 나오며, 방금 언급한 부분은 22:30초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문 중에 제일 심한 가혹행위가 단식 중에 취조입니다.
본인은 그 2가지를 모두 겪었습니다.
잠도 못자고 밥도 못 먹는 상태, 단식6일차에 부천SS경찰서 사이버팀, 그것도 팀장이 직접 나와서 조사를 하였습니다. 고소 접수한지 이틀만에 전화한지 하루이틀만에 바로 병원까지 달려와서 조사를 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고소를 해본적은 있어도 고소를 당해본 적은 없고 단식중이라 판단능력이 없어져 그냥 원래 그런가 보다했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이상한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통상적으로 출석요구를 2차례이상 해서 그래도 못 나오면 당사자를 찾아가거나 한답니다. 그런데 그런 기본절차를 모두 무시하고 고소접수당일 전화가 와서는 당장 못 나온다니 바로 이튿날 직접 병원으로 그것도 고소한 측의 병원에 입원중인 사람을 단식중에 정신이 가물한 상태에 조사를 강행한다?
그것도 팀장이 번개 같이 달려와 조사를 하고 가다니 말입니다.
처음 전화 올 때 이랬던 기억이 납니다. 나 지금 상태 안 좋아서 앞으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하니 처음에는 자신들이 직접 오겠다 언제 올지는 모른다하더니 기다려보지 않고 하루이틀만에 병실로 직접 찾아와서 조사하였습니다.
그 당시 같은 병실 환자의 폭행으로 인한 사건 때문에 형사팀의 형사들도 나온다고도 해서 누가 누군지 정신도 없는 상태에 조사 받았습니다.
뒤늦게 내가 피해자로 조사 받는게 아닌거 같아서 머라고하니 별거 아니고 빨리 끝난다며 조사를 강행했었는데 오전부터 전날 계속 원무팀장에 내내 시달리다 조사 받으니 결국은 원무팀장이 말한 내용과 같은 조사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연속으로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한 셈입니다.
원무팀장이 스마트폰 들이대며 자백을 받으려 하였는데 자백이 안 나오니 사이버팀 형사들 불러서 폭행피해 조사인양 현혹시킨 다음 자신들 원하는 대답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입니다.
제 기억이 100% 완벽하지 않을 순 있습니다.
잠 못자고 밥 못 먹고 넋나간 상태에서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일이니 중간중간 필름 끊긴 것처럼 다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수액요청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금방 끝난다며 제지 당한 것은 기억 납니다.
결국 단식기간 내내 끝나고도 수액처방은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후 상당기간 후유증도 시달렸구요.
편안한 상태의 단식도 아니고 원무팀장에게 시달리다 간호팀장의 책망을 당하다 된통 이중삼중의 고통이었습니다. 단식 중에는 평소 보다 물을 더 많이 마셔야 한답니다. 2~4L이상을 마셔야한다는데 그 당시 본인은 물도 잘 넘어가지 않고 떠오기도 힘들어 500ml정도 밖에 못 마셨고 중간중간에 물 조차 아예못 마신 날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루종일 소변 조차 안 나온 날도 몇몇 있었습니다.
병원 옮긴 뒤 일주일 정도 지나서 정신이 좀 들어서 연락을 했더니 내가 지금 말하는 거랑 조서내용이랑 다르다고 사이버팀장 스스로도 인정하며 대질도 해주겠다하였는데 알고보니 그 날 바로 송치하였더군요. 처음에는 팀장인지도 몰랐는데 전화하다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고소 접수 이틀만에 병실까지 찾아와 조사, 이후 열흘도 안 돼서 송치? 당사자가 이의를 표시하니 대질 또는 추가진술을 받아줄 것처럼 하다 뒷통수치기?
저로써는 고문 가혹행위 당하다 짜고친 각본에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구체적 혐의 조차도 알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조사내용 조차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정상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상태를 악용하여 이루어진 일련 된 사태는 과연 누구의 이익을 위해서였을까요?
만약에 그 때 잘못되었다면 전적으로 요양병원 탓이 되는데 그렇게 조속히 사건을 만들어놔야 잘못되더라도 지들 책임이 줄어들 거 같다는 꼼수 아니었을까요?
병실 조사를 강행함으로써 지들에게 향한 화살을 돌리고 본인에 대한 요양병원 내 동정적인 여론을 희석시킬 수단이 되지 않았을까요? 하루이틀 입원해있던게 아니라 두달가량 잘 참고 지낸터라 직원내에서도 동정적인 여론이 없지 않았습니다. 원무팀장의 잔꾀겠지만 그런 여론을 범죄자로 낙인 찍어야 잠재울 수 있었던 것이겠죠.
병실에 형사들이 들어오자마자 앉기도 더럽다 툴툴 거리며 타환자 옆침대에 털석 앉으며 마치 억지로 온 티를 내며 예의 없이 굴고 종종 나를 바라보며 비웃던데 이제 돌아보니 그때부터 먼가 이상하긴 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바로 이의를 표시하거나했겠지만 내내 어지럽고 정신이 없어서 얼마나 병실 환경이 불결해보이면 그랬을까 넘어갔었는데 이제보니 병실까지 찾아와 조사한다는 자체부터 불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치 누가 억지로 시켜서 나온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보니 형사들이 미리 올 것을 알고 같은 병실환자 3이나 밖으로 내보낸 것부터 이상한 일입니다.
간호기록지에도 평소와 달리 간호팀장이 직접 기록을 남겨가며 인터넷글을 언급하며 반론을 표시하던데 간호기록지가 그러라고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압니다. 환자의 건강을 위한 기록일텐데 여기에 원무팀장이나 할 법한 말들이 왜 들어가 있을까요? 돌아보니 의문점 투성이입니다.
이후 업무방해사건도 있어서 느낀 바이지만 그 정도로 고소인 측의 편의를 봐주는 형사는 특별한 배경이 있지 않고서는 없을 것 같은데요? 업무방해사건에서는 몸이 아퍼서 움직일 수 없다하니 한달 두달씩 시간여유를 주고 있는데 말입니다.
일체 피의자의 대응할 권리를 차단한 행위에 대해 참다못해 인권위 진정중입니다만, 단식 중에 피의자 조사는 극히 전례를 찾아볼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인권위 진정을 제기하니 어떻게든 변명거리를 만들려는지 옮겨간 병원의 기록까지 요청했더군요. 어떻게 옮겨간 병원명까지 알아내서 자료제출을 요청했을까? 옮겨간 재활의학과의원 원무부장도 이상한지 사이버팀장이 요청한 팩스를 본인한테 전달해주더군요. 원래 요청하면 보내주는게 관행인데 목적도 이상하고 법적근거도 없어서 본인에게 연락을 해준거랍니다. 의무기록은 영장이 없다면 본인의 동의를 받아서 요청해야하는 것으로 압니다만 법을 다루는 사람이 스스로 불법행위를 자행하고 있습니다.
아마 먼저 입원해있던 부천XX요양병원 원무팀에 요청하여 자료 넘겨받고 그런 다음 재활의학과의원으로 전원한 것을 확인하여 거기다도 요청한 것이겠죠. 환자의 동의가 없음에도 부천XX요양병원 원무팀은 연락도 없었고 자료를 넘겨준 것으로 보입니다. 재활의학과의원에서 환자에게 연락을 준 것이 정상적인 행위겠죠.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 어떤 불법을 써서라도 본인에게 죄를 주겠단 심보야말로 내내 그들이 떠들던 특별한 목적성으로 보입니다.
왜 그들이 그렇게까지 해야했을까?
내가 알고 있는 정도의 비판 정도로는 감당이 안 되는 얼마나 더 감쳐진 흑막이 많길래?
심신상태가 엉망이 되어 내가 겪은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감도 오지 않았으나 역사저널 방송을 보다보니 내가 당한 것이 100년전 일제시절 겪은 고문과 같은 것이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이외 http://program.kbs.co.kr/1tv/culture/myhero/pc/list.html?smenu=c2cc5a 여기도 볼만한 내용이 있습니다.
과거엔 감옥이나 정치적 목적으로 고문이 자행되고 사람을 병신 만들었지만, 자본주의에 고도로 발달된 요즘은 병원 아니 요양병원에서 돈을 목적으로 가혹행위가 자행되고 사람을 병신 만드니 당하는 입장에서는 육체적 고통 못지않게 정신적 고통이 더 크게 다가 올 것입니다.
세상사 인생사 뫼비우스의 순환 띠입니다. 지겹게도 같은 고통이 끝없이 되풀이 됩니다. 이것이 이 나라 헬조선의 역사고 인생인가 봅니다.
조상님들도 얼마나 고통 받았고 억울했을까.
일제의 잔재와 폐악이 끝이 없이 지금 이 시대에도 이렇게 영향 끼치고 있구나...
본인이 직접 몸과 마음으로 그 비통함을 겪고 있으니 역사의 기록으로만 알고 있을만한 고통이 현실로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 또한 다음 생을 위한 영혼의 성장통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뿐입니다.
지난 주말엔 너무 어지럽고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넘어갈 것 같아서 119를 몇번 눌렀습니다.
나도 모르게 경황이 없어 눌렀버렸다 바로 끊었습니다.
원무팀장이 걸어둔 저주 겸 본인의 의지로 다시 끊고 견뎌보려한겁니다.
원무팀장의 그 사악한 발언과 역겨운 비웃음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나중에 살려달라고 빌게 될거다”
육체적이나 사회적 위치나 힘은 그 자보다 못할지 모르나 내 영혼과 정신적 의지는 그 자 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최후까지 살려달라고 빌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저에게 마지막 남은 인간의 품위, 진정성 및 진정한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개인적 문제를 차지하고 사회공익적 문제인데요.
지난 주말 119신고때 위치추적 문자 2번이나 온걸 보니 연결은 되었던 모양인데 확인전화는 없더군요.
어디 산이나 외진 곳에서 사고 당한 사람이 전화하다 끊길 수도 있는건데, 확인전화 조차 없는 걸 보니 이게 바로 이 나라 헬조선의 현실입니다.
119 소방관님들 열악한 사정은 알겠지만, 신고전화를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 이 점 안타깝습니다. 진정 긴급할 때 그냥 끊길수도 있는데 위치까지 파악이 되었다면 무슨 용건이었는지 확인전화라도 하는 매뉴얼이나 마인드로 개선되었으면 합니다.
몇일 계속 자다보니 조금 나아졌습니다.
이렇게 잠드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면 결국 때가 되면 가겠지요.
나 하나 희생되더라도 보다 나은 세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남은 힘을 다해 글 남겼습니다.
단식을 장난으로 생각하는 분들은 아래 글 보기 바랍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A%B0%95%EC%A3%BC%EB%A3%A1
단식을 시작한 이상, 반복한 이상 이미 죽기를 각오한 것입니다. 이번에 죽지 못하더라도 언제간 그 영향 때문에 죽게 됩니다.
요약 원하는 분 있어 마무리 요약해봅니다.
중앙선침범 중상해 교통사고를 당하여 정형외과 두달 정도 입원해있다 부천XX요양병원 입원
요양병원에서 방송에서도 언급 된 유사한 피해를 당함
https://programs.sbs.co.kr/culture/unansweredquestions/vod/55075/22000309997
3. 수면부족과 사고외 추가질병으로 고통받는 상태에 원만한 개선을 바라고 수차 대화를 시도하였으나 외면 당하여 자살을 시도하려하였으나 여의치않아 단식하게 됨
4. 인터넷글 초기 네티즌의 몰이해와 원무팀장의 간교한 대응으로 피해자가 도리어 고소를 당함
5. 잠도 못자고 밥도 못먹는 상태에 조사를 받는 등 가혹행위를 당함
6. 병원을 옮기고 모두 원만히 끝내자하였으나 불순한 목적을 감춘 기만행위였음
7. 돌아보니 의혹스런 배경이 한둘이 아니라 인권위 진정중인데 이를 은폐하기 위한 불법행위가 또 자행되고 있음.
만에 하나 제게 남은 생이 더 있다면, 모든 일이 정리되면 속세를 떠나고 싶습니다.
이제는 머리 깎고 승려가 되는 게 이승에서의 남은 꿈입니다.
사회가 너무 혼탁하네요.
밖을 바라만 봐도 불안해요.
언제 또 무슨 일이 터질지.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사고와 사건의 연속입니다.
거리만 바라봐도 사람도 많고 차도 많고 늘 복잡하고 불안과 혼돈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제3자적 관점에서 멀리 바라보니 그 사회 안에서 내가 부댓기고 살아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그런 혼탁한 곳에서 중심 못잡고 왔다리갔다리했으니 결국 사고 당하고 이렇게까지 흘러온거겠죠.
돌아가신 아버님도 9년전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님은 현장에서 즉사하셨습니다. 갈비뼈가 다 으스러져서 말이죠. 119신고가 늦게 돼서 사고후 1시간 정도 지난 뒤 도착이라 병원 도착시 이미 사망이라던데 아마 살았다면 더 고통스런 삶을 사셨을겁니다. 차라리 그 자리에서 돌아가신게 본인이나 가족들을 위해서나 최선이었을 것입니다.
저 역시 차라리 사고 당시 죽지 못한게 더 한스럽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서 왜 이렇게 고통 받아야 되는지, 차라리 가해자였다면 덜 원망스러웠을텐데, 피해자가 이렇게 당하고 또 뒤집어쓰고 욕을 봐야하는지...
차라리 사고 당시 죽었어야 이런 고민도 안하고 죽네마네 이렇게 번민하지 않았을텐데...
평생 남는 육체적 고통과 후유증도 모잘라 정신적으로 이렇게 고통 받고, 환자가 보호 받아야할 병원에서 학대행위를 당하고도 적반하장 몰아세우다니... 병원이란 말은 정정하겠습니다. 병원이 아니지요. 병원의 탈을 쓴 요양원 만도 못한 요양병원이지요.
이제 죽던 살던 앞으로는 보통의 사회생활을 못하게 될 것 같습니다.
육체적으로도 무리지만 정신적으로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죽어서든 머리를 깎아서든 이 혼탁한 사회에서는 더 이상 못 살 것 같습니다.
혹시 신이신가요?
혹시 신이신가요?
나도 살 빼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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