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서울 한양대 공대 진학전
시골서 아부지 축산업 소똥치우고 쌀가마니 나르고 하며 공부했다
군대 강원도 화천서 전역 2개월 남기고 허리 작살나서 눈물없는 내가 울며 진통제 먹으며 군단병원서 전역하고 그 뒤로 재활로 1년은 학교다니며 고생했다.
전역 후 졸업 한학기 남기거 친구따라가다가 빚지고 통신사 독촉장도 받고 살아봤다.
나때도 내 대학 쓸만했다.
나 졸업후 카드값 대부 대출 통신은 끊기고 다값는데 집에 힘 안빌리려고
노가다 두달
그 힘들다는 화학공장 3차밴더까지 했다.
내 동기들 삼전 두산 롯데 엘지 다 입사할때. 돈 값아야해서.
허리 재활했어도 아픈데 노가다 상상이나 못할놈들이.
우리 부모님 좀 살았어도 난 독기가 있어 말안하고 살았다.
공장다니며 공부해서 니네 이제 취준생 수능본애들
니네가 가장 원하는 분야마다 특정 공기업 중 하나의
차장이 나다.
우리 동기는 좋은대학 나온애들 별로없고
요즘도 인서울보다 지방 대학도 꽤있다. 물론 서울대 카이스트도 있지. 하지만 다른 지방대학도 많아.
그깟 시험하나
그깟 면접 몇개에 깝치지마라.
아세톤으로 파이프 세척하며
방독면쓰고 배합도 해본놈도 그 12시간 일하며
니네가 그리 좋아하는 갓공기업 들어가는데
나보다 머리좋고 잘난 놈들이.
우리땐 들어가기도 숴웠지.
그래도 안독하면 들어도 못가고 들어가도 니네 상상도 못할 쌍욕먹으며 버텨
이 자리에 있다.
내 밑에는 천국이지. 자살한다 뭐한다 하지마라.
형 연차라 늦게자도 상관없는데
니네 가족 생각좀해라.
오타지적 감솨^^
니밍 고딩때 한양대 여자 화장실 공사하는데 친구놈 아버지가 데꼬가서 알바하는데 일보다 오르막길이 더 싫엇던 기억
화장실 위에석고보드에서 왜 연애편지가 나왓눈지 아직도
의문이고 신기함 ㅎㅎ
잘자요 저도 자러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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