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날.
움직이기 싫은 날.
밥도 먹기 싫은 날.
숨도 쉬기 귀찮은 날.
그래도 해야만 하는 그냥 어느 평범한 날.
인터넷에 하루가 멀다하고 아내 험담이나 결혼반대에 대한 글이 끊임없이 올라오지만 나는 우리 아내가 한 없이 고맙고 사랑스럽다.
아내는 굳세고 튼튼하다. 어쩌면, 나같은 남편을 데리고 살기위해 그렇게 진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항상 나를 배려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꼭 같이 함께해주면서도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은 내게 같이하자고 권유할 뿐 강요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멋진 아내덕분에 결혼을 했음에도 총각때의 자유로움을 그대로 즐기며 살 수 있었다.
인생이 달라진 건 아이가 태어나고부터였다.
임신기간에 입덧도 하지 않았고 워낙 잘 걷고 활동적이었기에 임산부 아내를 둔 남편으로서의 특별한 자각을 하지 못한 채 10개월을 보냈다. 출산마저도 초산임에도 쉽게 낳은 덕분에 나는 아무런 여러움없이 사랑스런 우리의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임신기간동안 육아의 힘듬을 미리 예행연습 해보지 못했던 나는 아무런 준비없이 육아를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하고, 회사를 마치고 퇴근을 하고, 간단하게 밥을 차려 교대로 밥을 먹고, 아내와 같이 아이를 목욕시키고, 입었던 아기옷들을 손빨래 하고, 쌓인 그릇들을 설거지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잘 시간이 되어버린, 나의 하루엔 나를 위한 시간이 사라져버렸다.
얼마간은 워낙 정신이 없어서 힘든지도 몰랐다. 30일이 지나고 40일이 지나면서 조금씩 생기는 시간이 생기면서 점점 나아지고 있음에 감사했다.
낮동안에 장모님이 와주시기 시작하면서 반찬걱정도 사라지고 설거지 및 청소도 쉬게 되었다. 100일이 되고부턴 손빨래를 종료하고 세탁기로 돌리기 시작하면서 더 더욱 여유가 생겼다. 아내가 8시쯤 수유하러 들어갈 때 부터 자기 전까지 나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쯤 부터 나는 사는 게 재미 없어졌다.
나를 위한 시간이 상당히 많이 생겼지만 나 혼자만의 시간은 썩 유쾌하지 않다. 출산 전 처럼 회식하고 싶을 때 회식하고, 친구만나고 싶을 때 친구만나고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건 아니기에, 나는 퇴근 후 맡은 바 임무를 마친 뒤 생긴 2~3시간의 여유시간이 자유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내 책상이 있던 서재는 아기 용품공간으로 바뀌었기에 여가시간에 할 수 있는 건 낮은 조명의 거실 식탁위에 노트북을 펼쳐 놓고 앉아있는 정도. 그전엔 글도 쓰고 책도 읽고 게임도 하면서 취미생활을 영위했지만 어수선한 공간에서 보내는 내 여유시간은 죽은 시간과 다름이 없었다.
배부른 투정이다. 아내의 육아엔 퇴근이 없다. 하루종일 아이를 보고, 출산 후 벌써 6개월 가까이가 되가지만 여전히 2시간 간격으로 깨어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를 달래느라 밤에도 항상 시달리고 있다. 그런 아내에게 내가 가진 여유시간은 꿈같은 시간이겠지만 배부른 나는 그 시간이 그렇게 달콤하지만은 않다.
의미없이 시간을 죽이는 날이 많아졌다. 가끔 아이 목욕시키고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난 거기서 육아가 힘들다는 투정섞인 하소연을하며 혼자 고생하고 있을 아내에게 죄스런 마음에 절제된 음주를 하며 시계를 본다.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놀고 왔음에도 마음이 허하다.
파일을 정리하다 몇 년 전 써놓은 글을 보게 되었다. 아내와 함께, 대학로에서 한 참 연극을 하던 시절의 연극 대본이었다. 아마추어긴 하지만 내가 쓴 대본을 무대위로 올리고 연출을 했던 그 가슴벅찼던 과거의 그 감정들이 떠올랐다.
다시금 연극을 하고싶은 생각이 충동적으로 밀려왔다. 아내와 당장은 같이 할 수 없음을 자각했다. 그렇다고 내가 맡은 최소한의 육아마저도 내팽겨친 채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아님을 깨달았다.
다시 생각해봐도 평일 저녁에 주어진 이 시간은 죽은 시간이다. 군대도 2년만 참으면 끝이 나는 데, 나의 육아는 10년이 지나면 편해질까? 그리고 10년 뒤에도 나는 여전히 지금의 나로서 살아갈 순 있을까?
이미 두 셋의 아이를 둔 친구들을 보면 아이를 키우는 것에서 보람을 느끼고 즐거움을 찾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친구는 아이에게 뭐 하나라도 더 해주려고 퇴근 후 투잡을 하기도 했다.
나도 우리 아이가 분명 귀엽다. 적어도 내 눈엔, 내 아이 또래의 다른 아이들 보다 훨씬 잘생겨보이고 귀여워 보인다. 나도 다른 보통의 남편들처럼 아이를 키우는 데 보람을 느끼고 행복을 느껴야 하는데 아직까지 난 육아가 행복하지 않다.
나는 나의 취미를 하면서 즐겁고 싶고, 새로운 취미를 하면서 행복하고 싶다. 아이의 행복이 나의 행복임을 인정하지만 그로 인해 원래 나라는 사람이 좋아했던 것을 잃고 싶지 않다.
나는 지금의 이 시간이 계속 지속되어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났을 때, 내게 누릴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여유가 생겼음에도 훌쩍 늙어버린 내 몸과 마음이 더 이상 예전같지 않을까봐 나는 그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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