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광주에서 나온지 1주일 후인 2003.2.8일(토), 저는 8순 여사님을 따라 탈북자 동지회 사무실을 구경하러 갔습니다. 송파경찰서 옆 반듯한 건물의 2층에 탈북자 동지회 사무실이 있었습니다. 방은 약 3개정도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작은 회의실도 있더군요.
사이즈가 커서 소매를 접어 올린 허름한 반코트를 입고 노 여사님과 나란히 소파에 앉았습니다. 빠릿빠릿하게 보이는 국정원 직원이 노 여사님의 방문 목적을 확인하면서 여사님께 이 분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여사님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냥 저와 함께 오신 분입니다”. 그는 낯이 익은지 “여기에 한번 와 보신 적 있으시지요?”라고 제게 물었습니다. “아니요. 처음입니다”. 고개를 몇 번 갸우뚱거리더니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후에 알고 보니 그들은 저를 여사님의 운전기사로 보았다 합니다.
약 10분이 지났습니다. 이문열 소설가 선생님이 회의실 문을 열고 나오시더니 저를 보자마자 뛰어오듯 다가와서 각별한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 분과의 대면은 그게 첫 순간이었지만 매우 정감이 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자 국정원 직원들이 갑자기 빨리 움직이며 제게 신경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누구세요?”. 여사님이 당황하시는 순간 안쪽 방에서 방문객을 환송하려 나오신 황비서님이 저를 보자마자 달려와 포옹을 하셨습니다.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한동안 놓아주지 않으시더군요. 잠시 다른 손님을 만나고 조금 후에 다시 보자며 들어 가셨습니다.
국정원 직원이 여사님에게 “이 분 누굽니까?” 하며 다그쳤습니다. “이 분은 지박사님인데 훌륭하신 분입니다”. 직원은 지만원 박사가 아니냐며 그제서야 제가 그들과의 소송 당사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우리하고의 소송도 아직 걸려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를 어떻게 오십니까? 왜 신분을 속입니까? 오늘은 황비서를 만나지 못합니다”.
“이 보시오. 나는 당신에게 신분을 속인 적 없습니다. 나는 탈북자 동지회를 구경하러 온 것이지 황비서님을 뵈려고 온 게 아닙니다. 그런데 내가 무슨 신분을 속였다는 말이오”. “여튼 못 만나십니다”. “좋소. 나는 여사님의 용무가 끝나면 모시고 나갑니다. 황비서님을 만나러 온 게 아니니 그냥 가겠소. 안심하시고 커피나 한잔 주시오”. 그의 자세가 누그러졌습니다. 저는 속으로 그들의 단순함에 놀랐습니다. 황비서님이 저를 부를텐데 어찌 그들이 이를 차단할 수 있겠습니까?
잠시 후 여사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여사님만 모시고 들어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황비서님이 손수 나오셔서 저를 데리고 들어가셨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그야말로 벌레씹은 얼굴이었습니다. 황비서님은 저와 나란히 소파에 앉아 제 손을 두 손으로 감싸며 한동안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의 얼굴은 무척 수척해 보였습니다. 몇 가지 중요한 말씀을 하셨지만 공개는 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다지 비밀스런 것도 아니지만 제게는 중요한 교훈이었습니다. 목소리도 가늘고 몸은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 수척해 보였습니다. 건강을 엇주어 보았지만 “저는 건강합니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여사님과 방에서 나왔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여사님과 저를 골방으로 몰아넣더니 문을 콱 닫더군요. 두 명이 달려들어 여사님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저를 데려왓느냐는 것입니다. 점잖으신 여사님은 연실 “미안하게 됐수다”로 일관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눈을 부라리며 할머니를 추궁했습니다.
참고 또 참다가 제가 나섰습니다. “이 보시오. 젊은 양반들, 당신들 나이가 몇 살이오. 이 어른은 8순 노인입니다. 무엇이 잘못됐으면 애교조로 다시는 그러시지 마십시오 하는 식으로 끝내야지 그렇게 쥐잡듯 다루어도 되는 거요? 당신들에겐 할머니도 없소? 그리고 여기 이 분은 황비서님의 귀한 귀빈입니다. 당신들은 황비서님을 어른으로 모시는 사람들입니다. 상관의 귀빈을 이렇듯 막 대해도 되는 거요?”. 그들의 태도를 보면 황비서님은 그들이 존경하는 어른이 아니라 감시의 대상으로 여기는 듯 했습니다.
“지선생님은 우리를 속였습니다”. “이 보시오. 내가 왜 당신들을 속였다고 하시오. 당신들이 알다시피 나는 황비서님을 만나 본 적이 없는 사람이오. 나는 황비서님을 만나지 않겠다고 당신들에게 약속까지 했지 않소? 황비서님이 나를 부른 것이지 내가 적극적으로 그 분을 만나려고 한 게 아니지 않소?. 나는 당신들이 여사님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말해주었소. 그럼 지금부터 내가 당신들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말하시오”. 그들은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무엇이 그리도 분한지 얼굴에 심한 경련이 일었습니다. “잘못한 게 없으면 문을 여시오. 당신들, 이렇게 사람을 골방에 가두고 다구쳐도 되는 거요?”.
한 직원이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여사님도 따라 나가셨습니다. 그런데 남은 한 직원이 저와 조용히 이야기 좀 하자며 문을 닫으려 했습니다. 골방에 둘이 있으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당신과 조용히 이야기 할 게 없소. 문 여시오”, “못 엽니다“. ”열지 못해?“. 갑자기 건물 내 전체가 시끄러워 졌습니다. 회의실에서 회의를 하던 사람들이 우루르 몰려나왔습니다.
인근에서 점심을 하면서 탈북자들과 수년씩 같이 지낸 젊은 인사들과 말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탈북자들이 국정원의 눈치를 너무나 많이 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황비서님이 미국방문 여권조차 받지 못하고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계시듯이 탈북자들도 그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듯 했습니다.
이튿날, 국정원 차장이 노 여사님께 전화를 해왔다 합니다. 도대체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지만원이 대한민국에 어떤 해를 입혔고, 황비서님이 대한민국에 어떤 해를 입혔기에 두 사람의 만남에 대해 국정원이 이토록 야단들입니까? 국정원은 도대체 무엇 하는 곳입니까? 저도 1980-81년 사이에 국정원 정책 부서에 있어 보았습니다. 그 때의 정보부에는 그래도 명분에 승복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국정원에, 황비서님과 제가 만나면 왜 안 되는지에 대한 명분을 묻고 싶습니다.
미국 하원 정책분과위원장의 초청과 신변을 보호하겠다는 미국무성의 다짐이 공개돼 있는 지금도 저들은 황비서님을 놓아주지 않는 모양입니다.
“북한에서 70년을 보낸 것보다 남한에서 7년을 보낸 것이 더욱 괴로웠다”,
“죽고 싶다”.
황비서의 말입니다. 여기가 과연 자유대한인지 다시 한번 곱씹어지는 대목입니다. 황비서님의 방미를 위해 많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5.30일자 중앙일보: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비서는 6일 오전 방영될 YTN방송 `백지연의 정보특종` 녹화방송에 출연해 "지난 1월 5일 헨리 하이드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장과 크리스토퍼 콕스 하원의원 등 미국 상·하원 의원 네명에게 친필 서한을 보내 방미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며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과 리처드 루거 상원 외교위원장에게도 미국 방문 희망 서한을 보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