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차는 저의 개인적인 취향과 거리가 있어 아주 큰 관심은 없습니다. 좋아하는 미국차로는 초기 머스탱 패스트백, H1 Hummer, 2세대 바이퍼등 몇몇 차들이 있긴 하지만 신차가 기다려지고 궁금해질 정도의 매력을 느끼는 그런 미국차는 여태까지 별로 없던걸로 기억합니다. 근데 최근에 저의 관심을 붙잡고 놓질않는 미국차가 나타났습니다. 바로 최근에 풀모델 체인지된 콜벳입니다.
세계 경제 불황으로 GM, 크라이슬러가 파산한뒤 회복을 겪으면서 강도 높은, 정치적으로 매우 논란이 많았던 구조조정을 거쳤는데 최근들어 발표되는 신차들을 통해 그 효과가 점차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추세입니다. 과거 미국 브랜드들이 미국 내수시장에 집중하는 사이 국제적 상품성이 떨어졌다면 요즘 나오는 미국차들은 본격적인 수출을 노리며 국제적으로 어필할수 있도록 제작되는 양상입니다. 그간 Cadillac CTS, ATS, Jeep Grand Chrokee등 과거 어느때보다 매력적인 미국차들이 끊임 없이 나오면서도 여전히 어딘가 2% 부족한 느낌을 지울수 없었습니다. 작년에 대뷔한 신형 Viper 조차도 모기업 Fiat의 이탈리아 감성과 특히 가죽 인테리어 재질을 전수 받았음에도 약간의 이질감이 여전히 느껴졌죠.
스포츠카 세계에서 콜벳의 포지셔닝은 뛰어난 가성비를 갖춘 다소 단순한 차였습니다. 유럽 FIA GT와 Lemans 24같은 명성있는 스포츠카 레이스에 빠짐 없이 출전하면서 콜벳의 성능만큼은 그 누구도 무시할수 없었습니다. 911 카레라 가격으로 911 GT3급 성능을 구현하는 뛰어난 주행능력이 콜벳의 장점이었지만 성능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면에서 너무나 매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기존 콜벳의 한계였죠. 과거 콜벳들은 완전 brand new 상태에서도 M3, 911 카레라같은 라이벌들에 비해 뭔가 뒤쳐지다 못해 그냥 좀 허접한 모습이었고 단순하게 엔진 출력만으로 가성비를 따지는건지 디자인, 마감품질, 기술등 모든 면에서 약점을 드러냈었죠.
쉐보레는 콜벳 C7(C7 = 콜벳 7세대 개발명)을 기획, 개발하면 둔 가장 우선순위 과제가 기존 콜벳의 "중년 아저씨 이미지"를 벗는것 이었다고 합니다. 이 "중년 아저씨 이미지"란, 배나온 미국 아저씨가 지붕을 오픈하고 유유히 운전하는, 엔진 출력만으로, 직빨만으로 포르쉐 911, BMW M3 오너들 앞에서 거들먹거리는... 그런 이미지가 상당히 강했습니다. 실제로 쉐보레서 진행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기존 콜벳 고객중에 55세 이상인 고객의 비율이 46%라고 합니다. Audi R8의 22%, Porsche 911의 30%에 비하면 거의 절반에 가까운 고객들이 55세 이상이라는건 기존 "중년 아저씨 이미지"가 어디서 나온건지 쉽게 알수 있죠. 신형 콜벳은 이런 이미지를 탈피해야만 했습니다.
최첨단 모터스포츠 기술과 젊은 감각으로 전혀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추구한 콜벳 C7을 소개합니다.
고정관념을 깬다는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며 단기간에 달성하기 힘든 목표 입니다. 콜벳이 기존 이미지를 벗으려면 굉장한 변화가 필요했을텐데 "중년 아저씨 이미지"라는 색안경을 낀 시선으로도 신형 콜벳의 파격적인 디자인을 보며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C5, C6는 처음 공개했을때도 아저씨 이미지가 풍겼던 기억이 나는데 C7의 첫인상은 예상보다 훨씬 날카롭고, 역동적이고 무엇보다도 "젊다"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Batman 시리즈는 과거에 만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중 가장 돋보인 시리즈이긴 했지만 그래도 "만화 베이스 영화"라는 한계가 있는지 어딘가 유치한 구석이 있었고 1997년에 개봉했던 Batman & Robin은 아예 대놓고 만화영화같은 구성으로 후퇴했던 적이 있었죠. 모두가 포기하고 손을 놓아버린 배트맨 시리즈를 Christopher Nolan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재탄생시킨 2005년의 Batman Begins는 영화사상 유래없는 컴백으로 극찬을 받았었죠. 이번에 콜벳 C7도 그런 비슷한 맥락으로 보입니다. 파산을 겪고 회생절차를 거친 GM이 완성시킨 역사상 최강의 콜벳.
기존 콜벳에서 가능한한 격차를 두고 최고를 차를 개발하려는 쉐보레의 의지가 많이 전달되는 부분이 기존 콜벳과 달리 매우 젊고 매우 스포티한 감각의 디자인입니다. 특히 후면부를 보시면 보수적인 이미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아주 파격적이고 유니크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테일램프에서 약간의 무리수가 느껴지는 부분도 쉐보레가 차별화된 디자인을 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느껴집니다. 특히 기존 콜벳은 조악한 실내 마감으로 혹평을 받았었죠. 이번 차량은 실내 퀄리티 향상에 상당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알루미늄, 카본파이버, 가죽등 "가짜 재질"이 철저하게 배제된 노력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실제로 한번 봐야 완전히 알겠지만 지금까지의 정보로는 실내 디자인은 미국차중 최고가 아닌가 느껴집니다. 카본파이버 대시보드는 파가니에서나 볼법한 디테일인데 이 정도 가격대에 볼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이제부턴 M3, 911 카레라와 큰 품질격차를 느끼기 어려워질것 같습니다.
신형 콜벳이 과거에 비해 얼마나 파격적인지 보여주는 재미있는 에피소드 두가지 있습니다.
첫번째 에피소드는 2011년에 콜벳 디자인이 온전히 유출됐는데도 진위여부를 놓고 논란이 굉장히 많았다는 겁니다. 익명의 GM직원을 통해 Jalopnik라는 사이트에 유출된 링크입니다. http://jalopnik.com/5858683/exclusive-this-is-the-2014-chevy-corvette 당시엔 이 렌더링이 "컨셉카다, 가짜다, GM이 저렇게 만들리가 없다" 매우 다양한 반응을 일으켰는데 공통적인 반응은 보수적인 GM 성향에 비해 너무나 파격적이다는 평가였습니다. 하지만 이 링크를 되돌아보면 저 디자인 그대로 양산까지 나와주었죠. 2011년까지만해도 일반 대중들은 이런 파격적인 콜벳을 본다는걸 기대하기 힘들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그리고 두번째 에피소드는 콜벳의 상징은 4개의 원형 테일렘프가 각진 디자인으로 바뀐데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기존 콜벳이 다소 보수적인 고객층을 상대했다보니 신형이 갑자기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니까 약간의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런 여론을 의식해 신형 콜벳에 이전 콜벳의 테일림프를 이식하는 에프터마켓 키트가 등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기존 콜벳 고객들이 이질감을 느낄정도로 파격적인 콜벳을 만든 쉐보레, 그 의지와 용기에 박수를 쳐줘야할것 같습니다.
하지만 디자인이 아무리 훌륭해도 하드웨어가 받쳐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겠죠?
과거에 콜벳이 이미지 메이킹에 실패해서 그랬지 수십년간 꾸준히 출전한 모터스포츠 역사는 포르쉐, BMW에 뒤지지 않습니다. 다만 포르쉐 911은 모터스포츠와 양산차와의 경계가 애매할 정도로 모터스포츠 기술이 양산차에 많이 적용했다면 기존 콜벳은 "적당히 성능 스펙만 갖추면 첨단 기술은 굳이 필요없다." 이런 마인드가 강했습니다. 포르쉐가 911을 끊임없이 진화시키는 과정에서 드라이섬프 엔진, 단조 피스톤으로 성능을 끌어올리고 M3가 F1에서 영향받은 V8, 카본파이버로 지속적인 진화를 거듭해왔습니다. 반면 기존 콜벳은 기어비, 세미슬릭 타이어 같은 간단한 변화들을 통해 랩타임을 잰다음에 "거봐, 이렇게 쉽게 랩타임을 맞출수 있는데 뭐하러 돈쓰고 고생하냐" 이런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이처럼 과거 콜벳은 적당주의의 산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콜벳 C7의 개발 철학은 과거 관행과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기존 차량의 뛰어난 알루미늄 샤시를 완전히 재설계해 강성을 두배로 높이고 무게를 50% 줄였습니다. 여기에 새로 개발된 460마력 LT1엔진이 프론트 미드쉽에 장착되어 제로백 3.8초의 뛰어난 운동성능을 자랑합니다. 더 나아가 독일차, 페라리, 닛산 GT-R에서나 볼법한 첨단 전자제어장치들이 대거 투입되었고 포르쉐 911에서나 볼수있는 7단 수동기어도 장착됩니다. 조만간 듀얼클러치가 장착된다는 소문이 돌고있는데 이 부분은 아직 공식 발표가 없네요. 기술적으로는 M3, 911 카레라같은 근점 라이벌들과 비교해 아주 높은 경쟁력을 갖춘것 같습니다.
전 특히 이 영상을 보며 콜벳이 얼마나 젊어졌는지 느낄수 있었습니다. Car and driver이라는 미국 잡지에서 만든 영상인데요, 보시면 기존 콜벳의 주요 타겟층이었던 매우 전형적인 미국 아저씨가 시승을하는 모습입니다. 얼핏보면 지루해보이지만 콜벳의 기술적 정교함과 날카로운 성능이 영상의 나른한 분위기와 상당히 대비됩니다. 특히 중간중간에 들리는 즉각적인 엔진음과 배기음... 각 드라이빙 모드마다 엔진 사운드가 눈에띄게 바뀌는 모습이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그리고 내외관 디자인이 굉장히 미래지향적인 모습이라 리뷰중이신 아저씨가 오히려 어색한 점도 인상적입니다. 마지막 6:15부터 들리는 트랙 모드에서 배기음.... 정말 대단하다고밖에 할말이 없네요.
또다른 변화는 바로 마케팅! 유럽의 GT레이싱 무대에서 애스턴마틴, 포르쉐등과 경쟁하는데도 불구하고 중년 아저씨 이미지가 강했던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마케팅의 실패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보다 젊은 고객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쉐보레는 콜벳의 마케팅 프로그램을 전면 수정했으며 특히 2007년 첫 세계수출 모델로 공개된 닛산 GT-R의 행보를 아주 비슷하게 따라하는 모습입니다. 닛산이 GT-R 양산차가 공개되기 전에 위장막이 덮힌 테스트차량이 그란투리스모 5 데모에 먼저 공개됐듯이 쉐보레도 같은 방법으로 위장막이 덮인 콜벳 C7 프로토타입을 게임상에 선배포하고 실차 공개되는 날 다시 양산차를 게임상에서 공개했었죠.
그래도 콜벳은 콜벳인지라 과거를 완전히 무시할수 없었습니다. 자칫 콜벳의 역사와 동떨어진것 처럼 느낄수있는 신차를 과거 콜벳 역사의 연장선으로 표현하기 위해 콜벳 C7의 공식 이름은 Corvette Stingray로 지었습니다.
스팅레이는 콜벳 역사상 가장 전성기 모델인 1963년형 콜벳 C2에 붙여졌던 이름으로 가오리를 모티브로 만든 디자인을 반영한 이름이었죠. 당시 NASA의 아폴로 프로그램과 달착륙등 미래지향적인 미국문화를 반영해 쉐보레는 매우 파격적인 디자인의 콜벳을 완성했었습니다. 게다가 아폴로 프로그램의 우주비행사들이 바로 이 콜벳을 애용하면서 절정의 인기를 얻었었죠. 하지만 이후 여러가지 이후로 콜벳의 역사는 수십년간의 긴 침체기를 거쳤고 심지어 2009년엔 GM이 파산되면서 콜벳의 미래가 더욱 어려워보인 때가 있었지만 GM이 다시 활기를 찾고 미래를 향해 진격한다는 의미에서 2014년형 콜벳 스팅레이 개발에도 이런 마인드가 적용된것 같습니다. 알루미늄 가오리처럼 생긴 스티어링휠! 콜벳을 아는 사람들만 짚어낼법한 easter egg가 아닐까요.
글제목에서 "미국판 GT-R"이라고 비유한 이유는 바로 이번 콜벳의 첨단 기술, 젊은 감각, 뛰어난 성능을 가리키는 동시에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마케팅도 GT-R의 행보를 많이 따라하고 있고 조만간 뉘르 기록도 기대할수 있을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GT-R과 콜벳은 과거에 내수시장을 최우선 시장으로 설정했었다가 본격적인 세계무대의 스포츠카로 탈바꿈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과연 콜벳 스팅레이가 세계무대에서 R35 GT-R과 같은 돌풍을 일이킬수 있을지, 중년 아저씨 이미지를 벗을수 있을지 기대가 큽니다.
여기서 한가지 반전은 이 글에서 소개한 콜벳 스팅레이가 신세대 콜벳 라인업의 가장 기본 베이스 모델이라는 겁니다. Grand Sport, Z06, ZR-1 버전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도 굉장한 존재감이 느껴지는 콜벳 스팅레이 Z51. 앞으로의 행보가 상당히 기대되는 미국차입니다.
- Ghepard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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