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척으로 편중된 권력[편집]
1874년 11월 흥선대원군을 축출한 뒤 황후는 민씨 일족을 대거 등용하여 조정에 진출시켰다. 이 중 민겸호는 선혜청에 있으면서 군인들의 급료를 착복하고 모래를 섞어서 주어 임오군란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문정공 송준길은 우복 정경세의 사위이며 민유중은 송준길의 사위이다. 명성황후는 송준길 집안에 대해서는 가까운 외가의 의를 지켰고, 정씨 집안을 추대해서 역시 외척같이 각별히 생각해 왔다.[95] 명성황후는 정경세를 부르기를 우복 할아버지라고 하였다. 그래서 송씨, 정씨 두 집안의 후손들은 크게 고종의 총애를 받아 과거에 급제해서 벼슬을 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로 많았다. 이때 고종과 흥선대원군은 친골육지간이지만 사이가 나빠져, 아버지 대원군을 혐오했던 것 같았다. 이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며 비아냥거렸다. "내전(왕비)는 돈목을 감소시키고 대전(임금)은 돈목을 증가시키면 좋겠다.[95]"는 것이다.
결과야 어떻던 안중근은 일본인 죽였으니 애국이랑께~(순종 상복 입구 석달간 대가리 처박게됨 )
그 엄청난 열사를 고종은 애도도 안했지만 ~(아따 고종은 조선인 아닌가벼)
그건 모두 일본의 침략때문이랑께~(일본 눈치 본건가?)
민비가 무당불러서 굿판 벌인것도 일본이 때문이랑께~ (세정 폭망)
민씨의 군인 급여 착복도 모두 일본때문랑께~~(군정 폭망)
을사조약은 고종이 시켰지만 이완용이 사인 했으니 매국노랑께^^(시켜놓고 아몰랑 이완용이 했어요 우쭈쭈~)
조선의 자폭도 일본 때문이랑께^^
글 내리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린학생이라도 보면 같은 어른으로 부끄럽습니다.
성역화의 대표적 인물은 박정희 똘마니죠 반인반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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