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 하면서 사람을 참 힘들게 하는 것이 같이 한 세상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느 때부터인가 느낍니다.
또한 그런 사람과 살아가면서도 한편으로 위로와 힘을 주는 것이
또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과연 나는 다른 사람에게 힘을 주는 사람인가
되묻습니다.
이쪽 저쪽을 나누자면 서로에게 한편은 힘들게 하는 사람
각자에게는 힘과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겠지요.
역사를 잘 모르지만 몸으로 겪어본 제 인생사만 보더라도
그동안은 불편부당의 세상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군대에서, 직장에서, 자기에게 처한 어떤 영역에서든
약하거나, 덜 가졌다고, 덜 배웠다고
자리를 빼앗기거나, 수고에 비해 덜 받거나
마른자리가 아닌 축축한 자리에 앉거나 해왔습니다.
(고백합니다만 제가 뺏거나 덜 주거나 마른자리에 앉거나 한 적도 있습니다.)
세상이 그런 줄 알고 여태 살아온 사람도 있고
이것은 사람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다 하며
목숨까지 내놓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드려고 한 분도 계십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해가 갈 수록
조금씩 사람살기 좋아진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코로나로 일상이 많이 위축되어 있지만요.
이게 모두 우리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사람을 믿고, 또한 우리도 그에게 위로와 힘을 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억울하게 뺏기고, 맞고, 고소고발 당하고, 감옥에 가고, 그 귀한 세월을 묶였던 사람들이
왜 울고 싶지 않고, 화내고 싶지 않고, 저들처럼 부수고 깨고, 때리고 가두고 싶지 않겠습니까
똑같은 짐승이 되지 않으려고 그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불편 부당을 어디 오늘만 봤습니까
이제 거의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불편부당을 만들었던 그들이 오늘도 지하에서 대가리를 하나씩 쳐들고 있고
뜨거운 해는 내리쬐기 시작하고 곧 대가리부터 타들어 갈 것입니다.
아직 대가리를 들지 않은 저들이 많습니다만 내일도 나오고 모레도 나올테니
두더지 게임하듯 즐기시면 됩니다.
여태 꾸역꾸역 삶을 살아온 이유중에 하나는 이런 불편부당을 후손에게 물려주기 부끄러워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개인적으로는 자리도 양보하고, 때로는 손해도 보고, 뒷사람 위해
열린문도 잡아주고, (담배는 끊은지 한참되었지만 한창 피울때) 내 꽁초는 내 안주머니에 넣었다가 버리고
,한참 걸리지만 도로 진출입로에서 끼어들지 않고 줄서서 가고, 차 한대 없어도 신호 지키고
택배기사님들에게 음료수 한잔 드리며 고맙습니다하고, 앰블란스 뒤에 오면 재빨리 우측으로 피해주고...
몇년에 한 번씩 나라위해 일할 일꾼 뽑을때가 되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사람을 뽑고 또 뽑고 믿어주고 위로해주고 힘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랬더니 오늘이 온 것입니다.
지치지 않으면 산을 넘고 바다 건너 고향으로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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