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5의 전장은 라이트 형제가 첫 비행에 성공한 거리보다 길다.
C-5 카고에는 8개의 볼링 레인을 설치할 수 있다.
C-5가 싣는 최대연료적재량은 전임기 C-141 스타리프터의 무게와 비슷하다.
C-5가 가진 한개의 방향타 면적은 F-104 전투기의 주익 면적보다 넓다.
C-5 전체를 재도장하는데 필요한 페인트는 1.2톤에 달한다.
C-5 내부에는 165km의 전선과 6km의 튜브 그리고 8km의 제어케이블이 설치되어있다.
C-5의 엔진인 TF-39 터보팬 엔진 한개는 분당 38톤의 공기를 흡입하며, 자동차 800대의 출력과 맞먹는다.
C-5는 착륙할 때마다 타이어가 0.5mm씩 닳기 때문에 10회 이상 사용이 곤란하다.
C-5는 종종 병사들에게 프레드(FRED : Fucking Ridiculous Economic/Environmental Disaster - 빌어먹을 환경재난)
라고 불리는데 엄청난 연료소모와 그에 따른 환경훼손 덕분이다.
C-5 갤럭시는 한가지 화물만 실을 경우 다음과 같은 양을 운반할 수 있다.
음료수 27만 7천 캔 / 와인 7만 6천병 / 하키 퍽 75만 2천개 / 아스피린 3억 2800만정 / 골프공 2백 40만개 /
폭스바겐 비틀 100대 / 대륙횡단 고속버스(그레이하운드) 6대 / M1 에이브람스 3대 / UH-1 헬기 7대 /
아파치 무장헬기 2대와 험비 4대, 그에 따른 운용인원 모두를 동시에 탑재
한번에 자동차 130대를 싣고 뉴욕과 LA를 왕복할 수 있으며, 31대만 실었을 경우는 지구 반대편에 착륙이 가능하다.
1. 대륙간 전략공수 시스템의 요구
1948년 3월, 냉전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할 무렵 서방 국가와 공산 국가의 첨예한 대립지였던 베를린에서는 점령군이던 소련군에 의해 육로와 수로를 포함한 외부와의 연결통로를 모두 봉쇄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소련측은 베를린시에 거주하는 수백만 시민의 목숨을 담보로 미국과 영국 등 서방권 점령국이 가진 모든 권리를 포기하라는 것이 요구사항의 골자였지요.
서방측 정보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자고로 자체적으로 의식주 해결이 불가능한 대도시의 구조상 이러한 봉쇄 조치가 계속 이어진다면 한달이면 도시의 치안이 무너지고 두달이 지나면 아사자가 급속도로 늘어나며, 최종적으로 100일이 넘어서면 유령도시로 바뀌게 된다는 무서운 경고가 이어졌습니다. "베를린 봉쇄(Berlin Blockade)"라고 불린 이 긴급조치는 곧 서방측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왔으며, 미국은 대책 마련에 나서 공군으로 하여금 유일하게 외부와 열려있는 "하늘"을 통해 베를린 시민들에게 필요한 막대한 양의 생필품을 실어나르게 되었습니다.
이 어린아이 떼쓰기와도 같은 촌극은 결국 서방측이 이에 맞서 엠바고를 단행하는 한편 몇가지 외교적인 루트를 통해 11개월만에 봉쇄가 풀렸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냉전은 표면화되기 시작했고, 미 공군 수뇌부는 전술 수송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에 대해 깊이 고려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리하여 1950년대초부터 대륙간 전략물자 수송이 가능한 중(重) 수송기들이 속속 태어나기 시작했는데, 그 정점에 서 있는 것이 터보프롭 엔진을 장착한 더글라스 C-133 카고매스터(Douglas C-133 Cargomaster)와 사상 최초로 제트화된 중 수송기 록히드 C-141
스타리프터(Lockheed C-141 Starlifter)였습니다. 허나, 당대 최고를 자부하던 이 수송기들 모두 육군의 경무장 부대를 운송하는 것이 한계였고, MBT 등의 주력장비를 공수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이 덕분에 공수전차라는 새로운 전투차량이 개발되었지만 그 결과는 대부분 아실테므로 패스하지요 ^^)
D A T A
형식 / 명 칭 C-133 카고매스터 / 4발 전략 수송기 C-141 스타리프터 / 4발 전략 수송기 전장 / 전폭 / 전고 48.0m / 54.8m / 14.7m 51.3m / 48.8m / 12m 익 면 적 248.34m² 300m² 탑승인원 / 초도비행 공허중량 / 전투중량 49,631kg 65,542kg 최대이륙중량 130톤 147톤 동 력 프랫&휘트니 T34 터보프롭 엔진 X 4기 (각7,500마력) 프랫&휘트니 TF33 터보팬 엔진 X 4기 (각20,250lb) 최 대 속 도 578km/h 912km/h 항 속 거 리 화물 23.5톤 탑재시 6,590km 9,880km 상 승 한 도 9,800m 12,500m 화물칸 사이즈 공수 가능 병력수 생 산 수 비 고 대륙간 탄도탄을 운송한 수송기 전술공수 시스템을 확립한 제트 수송기
6명 /
5명 /
2. 사상 유래없는 거인 수송기 계획
점점 경직되어가는 냉전의 분위기가 고조되어가던 1961년에 접어들어 이를 계기로 미 공군 자재 사령부는 이 두 거인기를 세대교체할 - 정확히는 C-141은 아직 원형기조차 날지 못하던 시기로 만들어지지 조차 못했다 - 신형 전략 수송기에 관한 설계안을 미국내 유수의 항공기 제작사들에게 교부하게 됩니다. "CX-4"라는 계획명칭을 가진 이 신개념의 수송기는 한때 개발중이던 C-141을 스트레칭하고 엔진 두 개를 추가하는 방안도 제시되었으나 이는 페이로드(Payload)는 늘어나더라도 동체의 폭이 좁아 다양한 육군장비를 수납하기에는 곤란하다고 판단되어 유보됩니다. 이처럼 2년의 금쪽같은 시간을 흘려보내는 사이 프로젝트 명칭은 "CX-X"로 바뀌었고 구체적인 GOR이 제시되었는데 이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1. 4발 엔진을 장착할 것.
2. 임무중량은 55만 파운드(249톤) 이상일 것.
3. 회물 최대 탑재량은 18만 파운드(81.6톤) 이상을 수용할 수 있어야만 할 것.
4. 12만 5천 파운드(56.7톤)의 화물을 탑재한 상태에서 8,000마일(12,875km)의 항속거리를 확보할 것.
5. 카고 베이의 크기는 길이 30.5m 이상, 폭 4.11m 이상, 높이는 5.24m 이상으로 주력 전차의 탑재가 가능해야 함.
6. 카고 베이의 전후로 밀폐형 도어를 설치해 양방향의 출입이 자유로울 것.
7. 이륙에 필요한 활주거리는 2,438m, 착륙에 필요한 활주로 길이는 1,219m로 C-141과 동일해야만 할 것.
8. 화물을 만재하고 마하 0.75의 아음속으로 비행이 가능하며 공중급유에 필요한 장비를 갖추어야 함.
9. 상기 조건에 덧붙여 3만 시간의 운용주기 수명을 가져야만 할 것.
이듬해인 1964년 4월부터 CX-X 계획은 새롭게 개비된 표준으로 인해 "실험 중(重)화물 병참 시스템(Cargo Experimental-Heavy Logistics System, 곧 CX-HLS)"이라는 입찰명칭으로 보잉, 더글라스, 록히드, 제네럴 다이내믹스, 그리고 마틴 마리에타사가 설계안을 내놓게 됩니다.
이 거인기를 하늘에 뜨게 하는 데에는 최소한 70톤 이상의 추력이 필요했으므로, 각각의 엔진은 18톤에 달하는 추력을 가져야만 했지만 당시까지 만들어진 터보팬 엔진중에서 그러한 고출력을 달성한 제품은 사실상 없었기 때문에 제네럴 일렉트릭사와 프랫 & 휘트니, 그리고 커티스-라이트사가 엔진의 개발입찰에 공모하기에 이릅니다.
신예기의 동체를 설계하기 위해 구조실험을 거듭하던 각 메이커들은 뜻밖의 난제를 깨닫게 되었는데, 그것은 콕핏과 승무원이 탑승할 캐빈, 1,000입방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화물칸 - 그것도 앞뒤로 문이 달린 - 의 여압이 지극히 곤란하다는 것이었는데, 일정한 압력으로 세 구간의 공기압력을 유지하지 못하면 고공 비행중에 풍선처럼 터져 버릴 수도 있다는 문제였습니다. 보잉사와 더글라스사는 예상되는 이 트러블을 해결하기 위해 동체위에 별도로 포드형식의 캐빈을 만들 계획까지 했었지만 록히드사의 기술진은 동체 상단을 부풀리고 단면을 압력에 잘 견디는 계란 형상으로 만들어 길게 배치하는 설계로 이 문제를 보기 좋게 해결했습니다.
과적시 300톤 이상에 달하게 될 전대미문의 엄청난 날개 하중은 계획 입안의 처음부터 끝까지 설계진을 괴롭힌 문제였는데, 보잉사와 더글라스사는 민항기에 주로 사용되던 저익형을 채택해 이 상태로 구조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주익 자체가 너무나 무거워지는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이런 후보설계안에 비해 록히드사에서 이미 C-130 허큘리스라는 걸작 전술수송기를 내놓은 바 있는 엔지니어 윌리스 호킨즈(Willis M. Hawkins)는 구태의연한 상반각이 주어진 저익배치 대신 이 수송기를 하나의 거대한 시이소(Seesaw)로 간주하고 여러 하중을 분산 탑재했을 때의 공력중심을 고려한 결과, 하중을 견디기 쉬운 하반각을 가진 고익 배치의 25도 후퇴익, 그리고 T자형 미익이 가장 적합하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이렇게하여 동체 내부 전체에 골고루 여압이 가능하게 된 CX-HLS는 널찍한 내부에 전차나 대형헬기를 비롯한 온갖 장비를 탑재할 수 있게 됨은 물론, 무장한 공수병력 345명을 한꺼번에 실어 날라 투하하는 능력도 얻게 되지요.
당시까지 개발된 터보팬 엔진 중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TF-39 역시 갤럭시의 개발이 난항을 거듭했던 한 요인이었습니다.
길이만 9m 이상, 에어 인테이크로는 어른이 팔을 들고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이 맘모스급 엔진은 1기당 20톤에 가까운 추력을 발휘합니다. 미 공군의 주 엔진 공급업체이자 내노라는 제네럴 일렉트릭사도 이 엔진의 신규개발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개발진은 고심끝에 구축함이나 여객선의 기관으로 사용되던 LM2500 개스터빈 엔진을 기본 소체로 삼아 1965년에 이르러야 겨우 납기일에 맞추어 추력 4만 1천 파운드급의 시제품 제작에 성공 할 수 있었지요. 군용으로 출발한 고 바이패스 터보팬 엔진인 TF-39는 그 후 민간규격인 CF-6 엔진으로 발전되어 점보 제트기의 확대형인 747-200 시리즈의 엔진으로 선정되며 수많은 민항기에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3. 마침내 날아오른 세계 최대의 항공기
미 공군은 이 전략수송기를 훈련용 8대를 포함하여 모두 115대를 구입할 계획이었지만, 엔진과 주익 콤포넌트의 개발이 지연되고 개발 예산을 초과하면서 터진 몇가지 추문들에 휩싸임에 따라 81대만으로 생산을 종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몇가지 추문이란, 차기 수송기 개발을 재촉하던 미 공군이 록히드사에 파견한 어네스트 피츠제럴드 감사관이 개발 예산 초과와 지연에 관해 보고하지 않아 공군측에 고발당해 연방 법원을 통해 징계를 받았고, 이와 관련해 피츠제럴드는 미 공군 장비 획득 정책에 관해 비판하고 나선 것이었지요.
우여곡절을 거쳐 탄생한 갤럭시는 이때문에 록히드사로서는 전례없이 개념실증기 제작을 거치치 않고 원형기를 개수한 양산형이 곧바로 인도되었으며, 1번기 C-5A(66-8303)은 마리에타시 공장에서 1968년 3월 2일에 롤-아웃되었습니다. 베트남전이 파국으로 치닫던 당시 국제 정세와 이 같은 산고를 겪었던 갤럭시의 처녀비행은 록히드사에서 근무하며 C-130의 개발에 참여했던 테스트 파일럿 레오 설리반
(Leo J. Sullivan)과 월터 핸슬레이(Walter E. Hensleigh)에 손에 의해 그해 6월 20일에 실시되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이 대단히 순조로왔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테스트 비행에서 갤럭시는 랜딩기어를 비롯한 몇가지 사소한 문제점을 제외하고는 극단적으로 인상적인 성능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당초 제시된 작전요구사항을 충분히 만족시켰고 일부는 초과달성까지 하는 위업을 보여줍니다. 거인기의 개발과 제작에는 항시 개발비를 둘러 싼 여러가지 악재나 기술적인 문제가 걸림돌이 되어 성공이 어려웠던 항공사의 전례를 들춰보면, 갤럭시는 그 크기만큼이나 놀랄만큼 완성도 높은 항공기로 태어났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를 증명하듯, 해가 바뀐 1969년말에는 알투스 공군 기지를 모기지로 삼아 C-5A 단일 기종으로 훈련부대가 창설되었고 이곳에서 야전수송과 기종전환 교육을 거친 요원들은 드디어 찰스톤 공군 기지에서 제437 전략수송 항공단으로 배치되어 1970년 6월부터 실전부대에 전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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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리던 공수전차 4대와 공수병력 33명을 한꺼번에 공중투하중인 C-5B 갤럭시
4. 역사상 최고, 최대... 실전에서 기네스북에 도전한 갤럭시
1970년 7월 9일, 갤럭시는 실전배치와 거의 동시에 베트남전에 투입됩니다. 베트남전에서 갤럭시는 과연 저러한 거인기가 제대로 임무수행이 가능할지 의구심이 깃든 눈초리를 떨쳐내듯 이제까지 그 어떤 항공기도 보여주지 못한 일들을 거뜬히 해냈는데, 그중에는 M48 전차 세 대와 그 운용인원, 수반장비를 한꺼번에 미 본토에서 베트남의 탄손 누트 공항까지 논스톱으로 실어날라 관계자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었고, 귀국길에는 휴가병력과 함께 본토에서만 수리가 가능한 기자재들(공군 소속의 군용기들이 주요 고객이었습니다. 갤럭시의 화물칸은 날개를 떼어내면 F-111 전폭기 두대와 거기에 탑재된 4개의 엔진, 탑재병기 모두를 실을 수 있거든요)을 태우고 돌아오는가 하면, 육군에서 소요되는 8인치 자주포나 가교전차, 그리고 UH-1 헬리콥터같은 경우 7대를 분해하지 않은 채로 실을 수 있었으며 코브라 건쉽 세 대나 스코시 타이거 작전(근접지원에 미 공군 신예기들을 실험투입한 계획으로 궁금하시면 sundin13님의 리뷰에 자세히 나와있으니 참고하세요 ^^)에 필요한 노스롭 F-5 전투기 두 대를 한나절만에 미 본토로 실어 날랐습니다.
또한 갤럭시는 3년 후에 벌어진 중동의 욤-키푸르 전쟁에서는 이스라엘 정부의 요청으로 호크 미사일 포대를 통째로 실어날랐고, 이스라엘 공군이 주문한 신형 사이드와인더를 비롯한 각종 특수탄약들을 수송하는 임무(Operation Nickel Grass)에서도 빛을 발했습니다.
리뷰 첫 머리에서 여러가지 예를 들었지만, 갤럭시의 수송능력은 그 압도적인 페이로드 외에도 효율성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미 공군 공수 사령부(Air Mobility Command)는 과거 C-141을 운용하면서 확립시킨 463L 팔렛 시스템(발사 나무로 짜고 알루미늄 스킨을 덧대어 길이 274cm, 폭 224 cm, 5.7 cm 두께로 규격화되어 제작된 130kg 짜리 화물 운반용 받침대로, 각각 1만 파운드의 화물을 결속시킨 뒤 운반하는 화물/장비 공수용 기본장비. 현재는 전세계적으로 이 규격의 콘테이너로 공통화되어 있으며 우리 공군 또한 사용중)의 경우, 화물실 데크에 설치된 컨베이어 롤러 장치를 이용하여 36개의 팔렛을 90분 이내에 적재, 결속한 다음 이륙태세를 갖추도록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이 90분 동안에는 훈련을 마친 병력이라면 1개 포병중대가 탄약, 중대원 모두를 통째로 후방램프를 통해 갤럭시에 탑승하는데 걸리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효율성은 후계기이자 전략/전술 공용 수송기인 C-17 글로브매스터를 제외하면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으로써, 한번에 실어나르는 화물의 양을 생각하면 가히 세계 최고의 수송기라는 이름값이 아깝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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