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은 '페인트번호판' 밀어붙이나
[중앙일보 2005-10-29 05:28]
[중앙일보 강갑생] 안전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온 자동차번호판 개정안이 최근 원안대로 확정됐다.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28일 "7월 발표했던 자동차번호판 개정안을 여론조사 등을 거쳐 원안대로 확정했다"며 "관보 게재 절차를 거쳐 계획대로 내년 11월 번호판 교체작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건교부 방침에 따르면 내년 11월부터 새 차나 번호판 교체 차량부터 새 번호판을 달게 된다.
이 번호판은 현재 쓰이는 것처럼 페인트로 번호를 쓰는 방식으로 제작되며 현재보다 가로가 길고 글자를 일렬로 배치한 것만 다르다.
교통안전 전문가들은 그동안 "안전성이 높으며 대부분 국가에서 사용하고 있는 반사번호판 대신 종전과 같은 페인트번호판을 또다시 채택하는 것은 시대 흐름을 거스르는 처사"라며 계획 재검토를 요구해 왔다. 본지 8월 25일자 12면
네티즌 등 상당수 국민도 "정부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며 "안전성이 높은 반사번호판 도입 방안을 추진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사 번호판은 그래픽과 숫자 등이 들어간 필름을 평평한 알루미늄 판에 붙여 만들어지며 야간에 잘 보이는 게 장점이다
그러나 건교부는 여전히 무인 단속카메라 때문에 반사번호판을 도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박현철 건교부 자동차관리팀장은 "무인 단속카메라가 야간에 반사번호판을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경찰의 반대가 심했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또 "설령 반사번호판을 도입하더라도 상당 기간 현 번호판과 같이 쓰일 수밖에 없는데 현재 두 번호판을 모두 찍을 수 있는 무인 단속카메라가 없어 반사번호판 도입은 불가능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양대 윤종영 교수는 "독일 등에서 이미 두 번호판을 모두 찍을 수 있는 카메라가 개발됐다"며 "그럼에도 정부에서는 국내외에 이런 카메라가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할 뿐 카메라 연구개발은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건교부 관계자는 "페인트번호판으로 일단 바꾸었다가 카메라 문제가 해결되면 이 번호판에 필름만 씌우면 반사번호판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윤 교수는 "반사번호판은 제작방식이 페인트번호판과 전혀 다르다"며 "페인트번호판에 필름만 씌우면 반사번호판이 된다는 설명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건교부는 또 국민에게 내년 11월부터 새 번호판을 보급한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대국민 약속'이라는 명분에 사로잡혀 지나치게 경직되게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전문가는 "그동안 정부가 한 여론조사는 두 번호판 간의 성능 차에 대한 설명 없이 디자인만 단순 비교토록 한 것"이라며 "가장 중요한 국민 안전에 정부가 너무 무감각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강갑생 기자 kksk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