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가 정확히 일치하자 그들앞으로 광장한 진동과 함께 세번째 바닥이 올라왔다.
다음 문제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이었다.
이 문제는 준수가 잘 알고 있어 답을 외치려고 입을 벌리는 찰나 동팔이 말을 막고 자신있게
외쳤다. 대책이 없었다.
"헤네시!"
그의 외침과 함께 바닥이 덜컹거리더니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엄청난 진동에 혹시나 떨어질까 염려된 사람들은 서로의 팔에 팔짱을 끼며 버티고 있었고
순화가 답답하다는듯 열변을 토했다.
"내가 못살아.. 헤네시가 어째서 와인이에요! 양주지!"
"포도주로 만들었다길래 한번 말해본것 뿐입니다."
"어떻게해.. 저 밑에 벌레 많은데.. 미쳐.."
순화는 내려가는 내내 동팔을 탓하며 울상을 지었다.
그러길래 정확하지 않은 답은 함부로 말하는게 아니거늘..
동팔은 고개를 숙여 반성하고 있었다. 다시는 답을 말하지 않겠노라 굳은 다짐을 했다.
바닥으로 완전히 내려가자 썩는 냄새가 진동했고 가뜩이나 예민한 그들의 귓가에 스물스물
벌레 기어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준수는 상황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재빨리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로마네 꽁띠! ((Roman'ee Conti)"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바닥은 다시 위로 솟아올랐고 방안의 모습이 보이자 모두들
팔을 풀고 안도했다.
그때 우연히 뒤를 돌아보던 료가 놀란듯 말했다.
"1번 바닥이 올라오지 않았어요."
"네?"
"1번 바닥이 올라오지 않았다구요. 올라온건 2, 3, 4 번 바닥뿐이에요."
"그게 어때서요? 우린 건너가기만 하면 되는거 아닌가요?"
순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질문하자 료는 답답하다는듯 가슴을 치며 말했다.
"1번 바닥이 안올라온 이유는요 두번 내려갔기 때문이에요.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한번 이상 내려간
바닥은 다시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즉 우리가 한문제를 더 틀리게 된다면 2번바닥도 작동을
멈추게 되요. 틀리는 횟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는 오도가도 못하고 중간에 갇히게 되는거에요."
"그건 안좋은 소식이군요. 그럼 최대한 정답을 맞춘 다음 어느정도 거리가 좁혀졌을때 뛰어 넘어야
겠어요. 오늘 넓이뛰기 여러번 하네.. 젠장.."
동팔은 넓이뛰기라면 치를 떨었다.
한번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뻔한 넓이뛰기를 어찌 잊을수 있단 말인가..
료는 문제가 적힌 벽을 바라보며 곰곰히 생각하다 준호에게 말했다.
"준호아. 혹시 모르니까 문제들을 좀 외워줄래? 우리가 바닥에 내려가게 되면 문제를 보지 못하잖아."
"네. 알겠어요. 외워볼께요."
"그럼 다음 문제는.. 진 토닉에 관한거네? 이건 쉽다."
"료형. 답을 아세요?"
"나 일본에 있을때 웨스턴 바에서 잠깐 일한적 있거든. 진토닉이야 워낙 흔한 칵테일이니까..
만드는 방법도 간단해."
"나도 한번 먹어보고 싶다.. 헤헤~"
"여기서 살아 나가게 되면 내가 만들어줄께. 준호군~"
"와! 정말요?"
"그럼! 기대해도 좋아."
"네. 고마워요~ 그럼 어서 답을 말해보세요."
"토닉 워터!"
자신있는 답이여서 그런지 료는 힘있는 목소리로 외쳤고 5번째 바닥이 올라왔다.
이정도면 순탄한 편이였다.
6번 문제는 맥주에 관한 문제였다. 문제들은 비교적 쉬운편이였다.
상훈은 팔짱을 끼며 처음으로 이빨을 보이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이 문제는 너무 쉽다. 맥주의 원료가 뭔지는 학생들도 다 알잖아요."
"저는 모르는데요?"
"동팔씨.. 실례가 많았네요. 맥주는 보리로 만드는 술입니다."
"실례랄것 까지야 있나요. 제가 무식한게 죄죠."
"그렇게 말하면 제가 미안하지 않습니까."
"미안하면 어서 답을 외치세요."
상훈이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한 표정을 짓자 동팔은 괜찮다며 답을 재촉했다.
상훈은 조용한 목소리로 짧게 끊어 외쳤다.
"보리!"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몸이 휘청거릴만큼 세차게 진동한 바닥은 서서히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영문도 모른채 그들은 또 다시 서로의 팔을 잡을수밖에 없었다.
"꺄악! 벌레가 다리를 건드렸어!"
"정말 지독한 냄새가 나는군요?"
"이상하다.. 분명 맥주는 보리가 주원료 아닙니까?"
어둠속에서 서로의 목소리만으로 안부를 확인한 그들은 다시 울렁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아야만 했다.
상훈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수 없다는듯 중얼거렸다.
그러자 준수가 아차 싶은 마음이 들어 말을 꺼냈다.
"보리가 아니라 맥아 라고 표현을 해야 맞는것 같습니다."
"어짜피 보리나 맥아나 같은 말이잖아요?"
"마스터 H 는 쉽게 넘어가는 문제는 만들지 않아요. 분명 한자어로 키워드를 입력시켜 함정에
빠뜨리려는 계락일겁니다."
"개같은놈.. 정말 죽이고 싶다!"
얌전하기 그지없는 상훈의 입에서 드디어 욕이 터져나왔다.
동팔은 몸이 간지러운지 팔을 벅벅 긁어대다가 옆에 있는 준호의 엉덩이를 살짝 건드렸다.
그러자 준수가 아님을 금방 알아챈 준호는 또 다시 발끈하며 대들었다.
"만지지 마세요!"
"뭐?"
"내 몸에 손대지 말라구요!"
"이 꼬맹이 또 시작이네? 어둠속에서 실수로 만진것도 죄란말야?"
"어둠속이든 빛속이든 싫어요! 건드리지 마세요!"
"아니..이게 보자보자하니까!"
준호가 계속해서 까칠하게 나오자 성질을 이기지 못한 동팔은 급기야 폭발했다.
준호가 유난히 동팔을 못미더워하는 까닭은 며칠전에 있었던 성폭행사건.
준수가 재빨리 준호를 반대편으로 옮기고 두사람 사이를 막아서자 두사람은 씩씩거리며 거친숨을
내몰아쉬고 있었다.
순화는 벌레가 있다는 생각에 안절부절 못하더니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 문제 뭐죠!"
"준호아. 다음 문제 알려줄래?"
"다음 문제는요.."
준호가 기억을 떠올려 말을 꺼내려고 하자 배알이 뒤틀렸던 동팔은 콧웃음을 치며 비웃었다.
"제까짓게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그걸 어떻게 외워? 말더듬는것을 보아하니 모르는게지"
"형! 제가 형인줄 알아요?"
"그럼 어서 말해보시지?"
"싫어요! 동팔형 때문이라도 죽어도 말 안해!"
준호가 화를내며 입을 굳게 다물어버리자 순화가 애원하듯 말했다.
애원하는건 필시 그녀뿐만이 아니였다.
"준호아.. 누나를 생각해서라도 말해주라. 나 벌레 정말 무섭단말야.."
"........................."
"무슨 술 년도 어쩌구였는데.. 우린 생각이 안나. 그러니 말해주라 응?"
"........................."
"동팔씨! 빨리 준호이한테 사과하세요!"
"제가 왜요?"
"그럼 동팔씨 때문에 우리가 이곳에서 벌레 밥이 되란 말이에요? 난 그럴수 없어요!"
"마음대로 하쇼!"
동팔도 오기를 부리며 절대 사과할수 없다고 배짱을 부렸다.
하지만 5분도 지나지 않아 자신이 실수하고 있는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준호의 고집으로 보아 자신이 사과하지 않으면 절대 입을 열지 않을것은 불 보듯 뻔한일.
동팔은 처음으로 자존심을 굽히며 건성건성 준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러자 준호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문제가 아니라 바로 답을 외쳤다.
"엑스트라! (Extra)"
다시 바닥은 방으로 올라왔고 순화는 바지에 붙어있는 벌레를 떼어내기 위해 발을 동동구르며 말했다.
몸짓은 다급했지만 표정은 밝았다.
"준호가 너 답까지 알고 있었어?"
"네. 아버지가 살아계실때 브랜디를 좋아하셨거든요. 그래서 등급에 대해 들은적이 있어요.
전부를 아는건 아니지만 최고 등급이 엑스트라인건 알아요."
"잘했어! 역시 똑똑해!"
순화는 준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7번 바닥까지 올라오자 남은 거리는 대략 1m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뛰어넘을수 있을것 같았다.
순화가 가벼운 몸놀림으로 폴작 뛰어 건너가자 모두들 그녀를 따라 건너편으로 뛰었다.
3번 방 문앞에 서니 다시는 보고싶지 않은 초록색 화면이 그들을 반겼다.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비밀번호를 입력하시오 : - - - -
-168 시간의 공포- *라시안*
"모르겠어요..이 성경 구절은 어디있는 말씀인지 짐작이 안가요.."
"순화씨가 모르면 어떻게 해요? 책을 다 뒤져볼수도 없는데.."
어느 전서에 속해 있는지만 알아도 수월하게 풀련만 그것마저 모르겠다고
순화가 주저앉아버리자 다들 망연자실했다.
상훈은 성경책을 집어들고 정신없이 페이지를 넘겼지만 그 많은 글중에 한절을
찾는다는건 모래밭에서 좁쌀한톨 찾기와 다를바 없었다.
동팔은 신경질을 내며 혼자 흥분하다가 문이라도 부실 요량으로 힘껏 차더니
거칠게 문 손잡이를 돌렸다.
그러자 어이없게도 딸깍-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뭐야 이거! 처음부터 열려 있었잖아?"
그들이 비밀번호에 집착해 미리 손잡이를 돌려보지 않은것이 실수였다.
3번째 방문은 비밀번호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는듯 간단히 열리며 그들을 조롱했다.
분개한 사람들은 처음으로 입에 쌍자음이 가득 담긴 욕지기를 내뱉었다.
마스터 H는 사람의 심리를 조종하는 악마라는 사실을 새삼 느낄수 있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방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정신이 몽롱해질만큼 어둡고 푸른 조명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양쪽 벽에는 열자루의 칼이 제 각각 다른 길이와 모양을 뽐내며 빛을 번뜩이고 있었다.
준수는 한발로 바닥을 굴러가며 확인했지만 별다른 함정은 없어보였다.
그때 옆에 서있던 준호가 한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비틀거렸다.
"느낌이 이상해.. 형.. 무슨 소리 안들려요?"
"무슨 소리가 난다고 그래? 이준호? 너 왜그래?"
준호는 준수의 팔을 잡고 비틀거리는가 싶더니 그대로 무너지듯 바닥으로 쓰러졌다.
놀란 그는 허리를 숙여 준호를 안아 올렸지만 그는 통 정신을 차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때 료가 소리쳤다.
"준수씨! 이상해요!"
"료씨. 왜그래요?"
"사람들이 이상해요!"
준수가 고개를 돌리니 순화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미친듯이 손톱을 세우고 바닥을
긁어대고 있는 장면이 포착됬다.
깨진 손톱의 멈췄던 출혈이 다시 시작된듯 바닥에 검붉은 피가 자국을 내며 번져가고
있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행동을 계속했다.
고양이가 용변을 보기위해 뒷발로 흙을 파해치는 행동과 흡사했다.
준수는 쓰러진 준호를 안아올려 빠르게 4번 방문앞으로 옮겨 놓은뒤 순화에게 달려갔다.
그 사이 료는 방 중앙을 계속 뱅글뱅글 도는 상훈을 따라다니며 말리고 있었다.
"길이 없어..흐흐.. 계속 같은 길이 반복되고 있어.. 흐흐흐.."
상훈의 눈은 촛점없이 동공이 반쯤 풀려있었다.
언제나 바른 자세로 일관하던 그는 허리를 노인네처럼 구부정하게 구부린채 한손을
허공에 뻗고 행동을 반복했다.
그 행동은 지팡이를 든 노인네라는 느낌을 강하게 풍겼다.
그때. 삐- 하는 고음이 언뜻 귓가를 스쳤다.
준수는 흠칫 놀라 료에게 물었다.
"료씨. 혹시 무슨 소리 들리나요?"
"별다른 소리는 모르겠지만 가끔 삑 하는 소리는 들려요. 손톱으로 쇠를 긁어내리는
소리같달까요?"
"저도 뭔가 들려요.. 혹시 사람들이 이 소리에 반응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요."
"그렇다면 왜 우리는 멀쩡한거죠?"
"우리가 저들보다 예민하지 못한게 아닐까요? 전 어릴때부터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크게 들어 버릇해서 살짝 소리에 둔하거든요."
"준수씨도 그래요? 저 역시 약간의 난청이 있어요. 이유는 같구요."
"이런.. 빨리 이방을 벗어나야겠어요!"
"상훈씨! 정신차려요!"
그들의 예상대로 방안에는 자극적인 전파가 흐르고 있었다.
최면 효과를 동반한 소리는 가청 주파수의 영역과 가까운 고음의 소리를 냈다.
이것을 예민한 사람이 듣는다면 심한 발작과 구토를 일으킬수도 있었다.
그 예로 일본인들이 저지른 만행중 하나인 마루타에서 고음의 전파를 내보낸 방에
두 사람을 가두어놓고 실험을 벌인 장면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귀를 막고 고통스러워하다가 결국은 온몸이 찢어져 피와 내장을 쏟으며
죽게 된다. 실제로도 전파는 신진 대사를 방해하는 큰 위력이 있다.
청각에 유난히 예민한 준호는 그 소리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버렸고
이유는 알수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최면에 걸린듯 각자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료가 고집을 피우며 계속 제자리에서 맴도는 상훈과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준수는
미친 사람처럼 웃고있는 순화의 뺨을 후려쳤다.
감정이 실리진 않았으나 남자의 손은 꽤 힘이 센지라 순화는 힘이 실린 방향으로
맥없이 쓰러져버렸다.
준수는 그녀를 안아올려 최대한 문쪽으로 바짝붙여 준호와 같이 눕혀놓았다.
그때 료의 비명이 강하게 귀를 비집고 들어왔다.
"준수씨! 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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