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형의 도움으로 뒤늦게 정규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3년 과정을 마쳤다. 정말이지 학교는 공부를 전혀하지 않아도, 도시락만 들고 다녀도 꼭 마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에 가서도 공부를 열심히 했다.
군대를 전역하고 어설프게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잠시동안 난 아버지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인정하기로 했다. 내 팔자려니 생각하고 보통 아버지와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이려 했다.
나이가 들면서 주변에 조카나 아이을 통해 나의 모습을 보았다. 시간이 갈수록 미움이 더해져갔다. 저 고사리 손을 왜그리 모질게 대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전혀 공감할 수가 없었다. 미움이 증오로 쌓이고 켜켜이 세월에 덮여 바늘조차 들어가지 못할 만큼 공고해졌고, ’아버지‘는 나에게 금기어가 되어갔으며 돌아가셔도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고 과거 속에 머물러 있다
오늘 문득 7살 때 걸음마 놀이가 선명하게 떠오르면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나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곰곰히 많은 시간 생각했다.
공감도 이해도 할 수 없고 아버지를 위한 연민 또한 1g도 없다.
좋았던 것만 기억하자
돌이킬 수 없고 지울 수도 없지만, 전혀 새로운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은
그래도 드물지만 좋았던 것만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아닐지 조용히 생각해본다.
굳건한 심성으로 고난을 극복한 용기있는 님께 갈채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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