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응접실 익스플로러 밴
매일 세단이나 SUV만을 시승하다가 오늘은 그야말로 접하지 못했던 차를 타보기로 했다. 익스플로러밴이다. 미국에서 만든 컨버전밴으로, 달리는 응접실 정도로 이해하면 좋은 차다. 대부분 병행수입업체가 취급하는 차종이어서 그 동안 타볼 기회가 없었다. 10년쯤 전, 스타크래프트밴을 시승한 기억이 난다.
이런 차를 보면 사람들은 그 안에 연애인이 타고 있다고 믿어버린다. 물론 그럴 확률이 매우 높은 게 사실이다. 많은 연예인들이 이런 밴을 이용한다. 기사가 달린 밴을 타고 다니는 게 연예인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고 한다. 소속 기획사에서 얼마만큼의 대접을 받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척도라고. 이 때문에 소속사를 새로 옮기거나 뜨는 연예인들은 밴을 사달라고 요구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됐다고.
어쨌든 연예인들이 이 같은 밴을 좋아하는 이유는 ‘크고 편안해서’다. 촬영을 시작하면 밤새기 일쑤인 그들이 이동할 때 짬짬이 잠도 자고, 일도 보고, 쉬기도 할 수 있어서다. 실제 촬영장에서 밴은 쓰임새가 많다. 톱스타의 잠자리가 되기도 하고, 탈의실로 쓰이는가 하면, 서넛이 모여 수다를 떠는 사랑방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차들이 이동수단으로서의 쓰임새가 80~90% 이상을 차지한다면 이 차는 절반쯤이 이동수단이고, 나머지 절반은 앞서 말한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될 것으로 봐도 된다. 절반은 자동차, 절반은 응접실 정도인 셈이다.
한국에서는 사실 익스플로러밴보다 스타크래프트밴이 더 많이 알려졌다. 유명한 컴퓨터게임 스타크래프트가 나오기 전부터 스타크래프트밴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그러나 요즘 미국의 밴시장은 힘겹다. 기름값이 치솟으면서 기름 많이 먹는 밴들이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많은 업체들이 부도로 쓰러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 와중에 익스플로러밴은 한국의 A&G모터스와 손잡고 국내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디자인
이 차는 GM의 쉐비밴의 인테리어를 다시 꾸며 익스프롤러밴이라는 이름으로 팔린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컨버전밴이 이런 방식으로 생산된다. 메이커에서 기본모델을 공급받아 내외관을 변형해 자신의 브랜드를 붙여 판매하는 것. 따라서 완성차메이커의 치밀함에는 미치지 못하는 부분도 더러 보이지만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돋보이기 마련이다.
운전석에 앉으면 창밖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시야가 매우 넓다. 구석구석에 수납공간이 있고 실내 조명을 켜면 아늑한 분위기가 된다. 실내는 매우 고급스럽다. 시트에 앉으면 푹신한 소파에 몸이 파묻힌 느낌이다. 편안해서 눈을 감고 있으면 금세 잠이 들 정도다. 조수석보다는 운전석 뒤 2열 시트가 더 편하고 공간도 넉넉하다. 혼자 앉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 9인승이지만 맨 뒤의 두 좌석은 평소에는 접어두고 7인승처럼 사용한다. 접어둔 좌석은 전동식으로 움직이는데, 시트는 물론 침대로도 활용할 수 있다.
인테리어는 주로 가죽을 많이 이용했다. 간간히 나무를 쓴 곳이 있기는 하나 많지 않다. 잡소리를 줄이는 데에는 나무보다 가죽이 효과적이다. 23인치 LCD 모니터도 있다. TV는 물론 DVD 등을 볼 수 있고, 컴퓨터 모니터 역할도 하는 화면이다. 물론 게임도 할 수 있다. 지붕을 높게 만든 차여서 실내에 들어서서 허리를 굽히는 대신 목이나 무릎만 살짝 굽혀도 된다. 실내에 앉아 있다 보면 ‘편안함’이 최고 덕목인 차임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불편함도 따른다. 실내 주차장에 들어갈 때 매우 조심해야 한다. 지붕이 걸릴 때가 많아서다. 어지간하면 실내 주차장에는 들어가지 않는 게 좋다.
인대시 타입의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7인치 LCD가 적용됐다. 차가 커서 후진할 때는 아무래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으나 이 차에는 후방카메라가 설치됐다. 변속기가 후진 위치로 가면 내비게이션 모니터에 자동으로 후방카메라의 영상이 뜬다. 차 뒤쪽 상황을 보면서 후진할 수 있어 편하기도 하거니와 안전에도 큰 도움이 된다. 진공청소기도 있고 불을 끄는 소화기도 마련됐다.
A&G모터스가 판매하는 익스플로러밴에는 시트와 도어에 A&G모터스 표기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미국에서 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국내 독점판매권을 가진 A&G모터스에 대한 배려라고 할 수 있다.
▲성능
마일로 표시된 계기판은 100마일, 즉 160km/h까지만 있다. 시속 160km로 달리는 것도 이 차에는 부담스럽다. 덩치가 큰 데다 푹신한 느낌이 강해 속도를 높이면 불안감이 급증한다. 운전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으나 시속 100km 정도로 움직이면 가장 편안할 듯 하다. 이 속도에서도 윈드실드에 부딪히는 바람소리는 작지 않았다.
왼쪽 사이드 미러가 유난히 선명했다. 이 쪽으로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면 뒤쪽 상황이 매우 또렷히 드러난다. 매우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운전석이 높아 앞시야가 훤하고 사이드미러가 선명해 뒤쪽 상황도 잘 보인다. 게다가 주차할 때는 후방카메라가 바로 뒤쪽을 비추니 적어도 시야에 관해서는 전후좌우가 시원하다.
이 차를 고성능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엔진 배기량이 5,328cc로 큰 편이기는 하지만 최고출력은 285마력으로, 배기량에 비하면 힘이 약하다. 변속기는 4단 자동이다. 차량 총중량은 3,235kg으로 무겁다. 타이어도 16인치로 아담한 사이즈다. 배기량이 큰 것 빼고는 고성능과 거리가 먼 조건들이다. 고성능을 원한다면 이 차를 선택하면 안된다.
가속 페달을 밟아도 빠르게 탄력을 받아 속도를 높이는 것도 아니고, 차를 조금 거칠게 몰기라도 하면 휘청거리는 움직임으로 운전자를 긴장시킨다. 따라서 이 차는 조용히, 천천히, 편안하게 운전할 때 빛을 발하는 차다. 부모님을 태우고 달린다 생각하고 운전대도, 브레이크도 조심해서 조작해야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특성이 살아난다.
뜻밖에 뒷서스펜션에는 코일 스프링과 리프 스프링이 함께 적용됐다. 승차감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차에 리프 스프링이 안어울리는 건 사실이지만 3t이 넘는 무게를 코일 스프링만으로 지탱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리프 스프링이 큰 무게를 받쳐주는 한편 코일 스프링이 적절하게 강도를 조절하면서 승차감 저해를 막고 있는 것이다. 리프 스프링과 코일 스프링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경제성
막연히 이 차를 볼 때 사람들은 무척 비쌀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억은 넘을 것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컨버전밴은 그렇게 비싼 차가 아니다. 고급스럽게 꾸며서 그렇지 보기만큼 비싸지 않다. 판매가격을 알고나서 의외로 싸다며 호감을 보이는 이들도 많다. A&G모터스가 결정한 이 차의 판매가격은 8,100만원. 앞뒤 에어컨, 히팅시트, 냉·온장용 아이스쿨러, 듀얼 에어백, 선루프, 최고급 오디오 시스템 등이 적용된 가격이다.
연비는 시내에서 6.2km/ℓ, 고속도로에서 7.6km/ℓ 수준이다. 엔진 배기량을 고려하면 그렇게 나쁜 편도 아니다. 대형 세단에 견줘도 그렇다. 이 보다 연비가 나쁜 대형 세단도 수두룩하다.
병행수입업체들이 난립하는 시장에서 A&G모터스가 과연 신뢰할 수 있는 곳인 가도 진지하게 살펴야 한다. 우선 공급업체인 익스플로러밴측과 독점판매계약을 맺었음은 평가할 만하다. A&G모터스는 중고차사업과 렌터카사업을 축으로 자동차관련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는 오토젠의 별도 사업부문이다. 이미 관련 분야에서 탄탄한 기반을 갖춘 업체인만큼 최소한의 신뢰성은 확보했다고 봐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