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개봉하는 '도쿄 타워'는 마흔한살 유부녀와 스물한살 청년의 사랑을 그립니다. 다소 극단적인 설정 같기는 하지만, 반대의 경우가 실제로 없지 않은 것을 생각한다면, 여자라고 해서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겠지요. 저는 이 영화의 원작이라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읽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 말하기도 어렵지만, 영화속 설정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다만 이 책은 앞으로도 읽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에쿠니 가오리는 제가 좋아하는 일본 작가도 아니고요.^^
우리도 점점 그렇게 바뀌어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일본의 경우 대개 우리보다 부부관계가 좀더 개인적인 편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인간이 원해 외롭고 우울한 존재이다 보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곳에서 사랑을 찾게 되나 봅니다. (특히 여자들의 경우엔 사랑받지 못하는 삶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죠. 제가 여자가 아니라 확실한건 아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상에 뭐 별거 있냐,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소중하게 생각하자, 뭐 그런 생각도 강해지는것 같고요.
아뭏든 영화 자체가 그다지 여흥을 주는 그런 작품은 아니었습니다만, 자동차에 관심을 갖는게 제 병인지라 영화 속 한 주부가 타고 나오는 C3가 시종 눈에서 벗어나지 않더군요. 빨간색 C3와 30대 중반의 유부녀 조합이 묘하게 도발적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일본의 경우 푸조 시트로엥 피아트 같은 프랑스 이탈리아제 소형차를 모는 이들이 꽤 있습니다. 가격대비 품질로 보면 자기네차들이 최고죠. 하지만 자동차란 꼭 그런것만으로 타는 것은 아니어서, 제 멋이나 개성으로 푸조나 피아트를 타는 경우도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한국에 사는 제 일본인 친구중 한명은 도쿄에 있을때 푸조206을 몰았습니다. 네코아시(고양이 발놀림)라고 해서 날카로운 핸들링이나 가벼운 주행감이 참 좋았다고 하더군요. 하긴 이탈리아의 50~60년대 명소형차 피아트 500 을 타고다니는 일본인도 있을 정도이니 말 다했지요.
영화에는 도쿄에 가보신 분들이 기억날만한 도쿄의 명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도쿄 타워를 주변으로 롯본기 같은 곳의 밤품경도 무척 로맨틱하고요. 여주인공의 가게가 있는 아오야마도 무척 세련된 풍경이지요. 아오야마는 도쿄에서도 고급패션거리로 유명합니다. 혼다의 본사건물도 아오야마에 있습니다. 저는 영화에서와는 달리 낮에 몇번 가봤었는데요. 그다지 번잡하지 않으면서도 우아한 느낌의 거리였습니다.
아! 그리고 당부말씀 한가지. 자동차세상 게시판이 너무 기술적이고 전문적이라는 지적이 좀 있더군요. 특히 여자분들이 '읽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몰라 댓글 달기가 겁난다'고 애기할 땐 거의 좌절하게 됩니다. 어떤 글이어도 좋으니 가볍게 생각하시고 올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게시판 제목에 구애받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성분들, 뭐든 남겨주세요~~~
다음은 제가 대우차사보 11월호에 쓴 글을 약간 수정한 것입니다.
‘도쿄 타워’의 시트로엥 C3
스물한살 청년과 마흔한살 유부녀의 사랑. ‘도쿄 타워’는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설정으로 관객을 유인한다.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의 원작자로 국내에도 이름이 알려진 일본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마흔한살 유부남과 스물한살 처녀의 불륜이 아닌 그 반대의 경우를 그린 설정이 별로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다니... 사회가 이렇게 빨리 바뀌었다는게 놀라울 정도다라고 생각한다면 벌써 구식인 걸까.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기혼녀들의 숨겨진 욕망과 그 욕망을 제어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미세한 떨림을 포착해내는 대사들이 매력적. 도쿄타워를 둘러싼 도쿄 시내의 명소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극단적인 사랑 이야기는 부드럽고 세련된듯하면서도 거칠고 동물적이다.
스물 한 살의 의대생 토오루(오카다 준이치)은 어머니의 사업상 친구인 마흔한살의 시후미(구로키 히토미)와 3년전부터 연인관계다. 시후미는 일본의 고급패션거리인 아오야마(靑山)에 있는 잡화점 주인이자 유명한 CF플래너의 아내로 꽤 부유한 삶을 살고 있지만, 가끔씩 토오루를 만나 밀회를 즐기는게 인생의 큰 기쁨이다. 토오루의 친구 코지(마쓰모토 준)도 자신의 뒤치닥거리만 해주길 바라는 남편과 까다로운 시어머니 때문에 불만인 서른다섯의 유부녀 키미코(테라지마 시노부)와 사랑을 나눈다. 우연히 장난처럼 시작되지만, 키미코는 점점 더 코지에게 매달리게 된다.
영화에서 키미코와 코지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은 지하주차장에서 키미코가 모는 차를 코지가 대신 주차해주면서부터다. 이때 키미코가 모는 차로 프랑스산 소형차인 빨간색 시트로엥 C3가 등장한다. 프랑스 1위의 자동차회사인 푸조-시트로엥(PSA) 그룹중 시트로엥을 대표하는 소형차로, 푸조 206과 더불어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소형 해치백이다. 그렇다해도 이 차가 일본영화에서 여주인공이 타는 차로 등장한다는건 좀 의외다. 일본 자동차판매 통계를 보니 한달에 약 50~60대 정도의 C3가 일본에서 판매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소형차가 많이 팔리는 일본의 감각으로 볼때 도쿄시내에서 C3와 만난다는 것은 꽤 드문 일에 속한다.
우리로 치면 젠트라 정도의 크기로, 일본내 판매가격은 1.4리터 75마력 엔진에 4단자동 모델이 193만엔, 1.6리터 110마력 엔진에 5단자동 모델이 210만엔으로 나와 있다. 우리돈으로 약 1700만~1900만원 정도. 소형차치고는 다소 비싸다고 할 수 있다. 싸고 편의성 뛰어나고 성능좋은 소형차가 넘쳐나는 일본의 관점에서 가격대비 구매가치가 그리 뛰어난 차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예술을 사랑하는 프랑스인이 만든 차 답게 디자인이 귀여우면서도 꽤 우아하다. 영화속 C3는 그중에서도 지붕 전체가 유리로 돼 있는 옵션 차량인데, 일본차와는 다른 세련된 느낌이 분명 존재한다. 또 디자인이나 편의장비가 여성취향이라, 전체 구매자의 60~70%가 여성 고객이라고 한다. 자신의 개성이나 욕망을 드러낼 수 없는 주부 키미코가 조금이라도 남과 달라보이고 싶어하는 욕망을 표출하기 위해 선택한 차가 빨간색 C3가 아니었을까.
“언젠가는 헤어질걸 알지만 오늘은 아니야. 사랑은 하는게 아니라 빠져드는거야”
‘도쿄 타워’는 여자의 시각으로 섬세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담아낸다는 평을 얻고있는 에쿠니 가오리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탓인지, 2005년 도쿄를 살고 있는 ‘아줌마’들의 현실. 특히나 결혼한 여성들이 느끼는 박탈감·상실감 같은 것들을 세밀하게 표현해내는 대사들이 보통은 아니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시후미나 시어머니와 남편에 눌려 살아가는 키미코나 책임만을 요구하는 주부이기에 앞서 사랑받고 존중받고 싶어하는 여자인 것이고, 영화는 바로 그러한 점을 강조하며 여성관객들과 공감대를 만들어나간다.
영화내용과 별도로 현재의 도쿄 풍경을 감상하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도쿄타워를 중심으로 계절이 바뀌고 낮이 밤이 되고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각각의 도시 표정 변화가 꽤 근사하다. 영화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흐르는 오프닝곡 노라 존스의 ‘Sleepless Nights’도 도쿄 야경의 로맨틱함을 한껏 고조시킨다.
혼란스러움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담고있는 마흔한살의 유부녀 시후미 역은 영화 ‘실락원’(1997)의 여주인공 구로키 히토미가 맡았다. 뭔가가 뺘져있는듯 우아하면서도 창백한 얼굴 연기가 영화의 중심축을 세워간다. 시후미에게 빠지는 젊은 영혼 토오루 역은 오카다 준이치가 맡았다. 시후미가 영화속 대사에서 “음악 같은 얼굴을 가졌구나”라고 말하는 것처럼 예술적 분위기와 남성적 매력을 동시에 지닌 신예다. 일본 인기그룹 V6의 멤버인 그는 최근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크게 활약하고 있다.
토오루보다는 좀 가볍지만 역시 연상녀를 사랑하는 코지는 드라마 ‘너는 펫’ ‘고쿠센’으로 인기를 끈 마츠모토 준이 맡았다. 코지와 사랑에 빠지는 주부 키미코 역에는 2003년 영화 ‘바이브레이터’로 도쿄영화제 여우주연상 등 일본내 주요 영화상을 휩쓸었던 연기파 배우 테라지마 시노부가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캐릭터로 35세 주부의 감춰진 욕망과 일본 주부의 현실적인 의식과 감각을 반영한다.
이외에도 ‘워터보이스’(2001)와 국내영화 ‘바람의 파이터’에도 출연했던 히라야마 아야가 코지를 괴롭히는 동창생으로 등장해 귀여운 매력을 발산한다. 시후미의 남편 아사노 역은 일본의 연기파배우 키시타니 고로가 맡았다. 잘생겼다기 보다는 다소 코믹하게 생겼는데, 최양일 감독의 데뷔작 ‘달은 어디에 떠있나’를 비롯 ‘개 달리다’ 등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다.
시트로엥 C3는 2002년 4월 프랑스에서 데뷔했고, 2003년에만 전세계에서 34만2000대가 팔려 시트로엥 브랜드의 전체 판매성장을 이끌었다. 2005년 7월 전세계 시장 누계판매대수 100만대를 돌파했을만큼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작년 한해동안 유럽에서만 26만7000대가 팔렸고, 이외에 일본 아프리카 남미 호주 등 거의 전세계에서 판매되는 일종의 월드카다.
C3가 경쟁하는 유럽 B세그먼트 시장은 2003년 현재 푸조의 206, 르노의 클리오, 폭스바겐의 뉴 폴로, 도요타의 야리스(일본내 명칭 비츠), 혼다 피트 등이 주력이며, GM대우의 젠트라 역시 모기업 GM의 시보레 상표로 수출돼 치열한 시장쟁탈전을 벌이게 된다.
시트로엥 C3의 경우 국내에 수입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서울거리에서 만날 기회가 없다는게 좀 아쉽다. ‘도쿄타워’에서 주부 키미코의 애마로 등장하는 C3를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할 것 같은데, 서울 거리에서 빨간색 C3를 모는 주부의 모습을 본다면, 웬지 영화속 불륜이 생각날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