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영토갈등이 첨예화되는 가운데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문학가 오에 겐자부로 등 일본의 양식 있는 지식인들이 일본의 자성을 촉구하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일본의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잡지 <세카이>(세계)의 편집장을 지낸 오카모토 아쓰시, 오랫동안 한-일 과거사 보상 소송에 참여해온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 <아사히신문> 서울지국장을 지낸 오다가와 고, ‘헌법개악 반대 시민연락회’ 대표 다카다 겐 등 시민사회 대표들은 28일 오후 도쿄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영토갈등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일본은 자신의 역사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반성하고, 그것을 성실히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호소문엔 오에와 아동문학가 이케다 가요코, 군사평론가 마에다 데쓰오, 나가사키 시장을 지낸 모토시마 히토시를 비롯해 시민 1270여명이 서명했다.
호소문은 “현재 영토갈등은 근대 일본이 아시아를 침략했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일본의 독도 편입은 러일전쟁 기간 일본이 대한제국의 식민지화를 진행하며 외교권을 박탈하려던 중에 일어난 일로, 한국인들에게 독도는 단순한 섬이 아니라 침략과 식민지배의 원점이며 그 상징이라는 점을 일본인들이 이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일본에게 한국과 중국은 중요한 우방이자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만들어가야 할 파트너”라며 일본 정부가 지난 식민지배의 잘못을 시인하고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 등을 계승·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카모토 전 편집장은 “일본에 반중, 반한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리려고 호소문을 마련했다”며 “29일 중-일 수교 40주년을 앞두고 서둘러 닷새간 서명을 받았는데도 많은 분이 서명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영토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동아시아 영토갈등을 억제할 수 있는 행동규범의 제정 △주변 자원의 공동개발을 위한 대화·협의의 장 마련 △한-중-일-대만-오키나와를 잇는 민간 차원의 대화 틀 마련 등을 제시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저명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28일치 <아사히신문> 기고에서 최근의 영토분쟁이 지난 20년간 문화교류를 통해 성숙해온 동아시아 문화권을 파괴하는 데 두려움을 느낀다며 “국경을 넘어 영혼이 오가는 길을 막아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경선이 존재하는 한 영토문제는 피할 수 없지만 이는 실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영토문제가 ‘국민감정’ 영역으로 들어가면 출구 없는 위험한 상황을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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