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모스의 경인철도 부설권 획득
미국인 기업가 모스가 우리나라의 서울 - 인천간 철도 부설권을 위해 교섭을 시작한 해는 1891년 이후부터입니다. 하지만 일이 진척되지 않자 모스는 주한 미국 공사 알렌을 통해 조선의 대신급 인사를 포섭 내지는 매수 하려 했었으나 일본의 완강한 반대로 이루어 지지 못합니다. 그러던중 1896년 아관파천이 일어나자 미국이 외교적 교섭을 통해 당시 친러파 내각의 중진인 이완용을 매수하여 그해 3월 29일로 서울 - 인천간 철도 부설권을 따내게 됩니다. 경인철도 허가서 전문 13조는 이완용과 조병직의 명의로 허가 되었는데 그 내용 중 특이한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경인철도의 전 연선에 대해 조선은 건설, 운용에 관한 용지를 조선이 매수 할때까지 동 회사로 대여해주며 그 대가로 조선의 우편, 군인, 군수품의 수송은 무료이고. 둘째, 이 철도의 재료 수입은 무관세이며, 그 철도의 재산과 수입에 대해 과세하지 않습니다. 세째, 공사의 기공은 이 포고 이후 1년이내에 실행하며 부득이한 사유가 없는 한 3년안에 준공 해야 한다. 또한 1년 이내 착수하지 못한다면 이 부설권은 무효로 합니다. 넷째, 조선 정부는 철도 완공후 15년이 경과하면 시가에 따라 본 철도 및 전 자산을 매수할수 있으나 15년 경과후 매수하지 못한다면 이 허가는 10년 연장됩니다.
모스의 부설권 획득후 5월 8일 모스는 미국공사를 통해 외무대신 이완용에게 기계도입시 무관세를 요청하는 한편 그의 친구인 타운센트와 함께 회사를 설립, 콜브란을 기사장으로 하여 경인선의 선로 측량을 실시하고, 이듬해 3월 22일 인천 우각리에서 기공식을 거행하게 됩니다.
일본의 반발과 경인철도 부설권의 매수
모스가 경인철도의 부설권을 획득하자 1896년 4월 17일 고무라 주타로 주한일본공사는 외무대신 이완용 앞으로 '경인철도 건설의 일본 정부 사전 승락 필요의 건'이란 항의 서한을 보냅니다. 이 서한은 1894년 채결된 '조일잠정합동조관'의 3항을 들어 일본 정부의 승락없이 경인철도의 부설권을 제 3국에 부여한 것은 조약 위반이며 먼저 일본 정부의 승락을 요한다라는 내용입니다.
한편 모스는 철도 부설자금이 부족하자 미국으로 자금을 조달하러 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오는 길에 일본에 들린다. 이때 일본은 매수와 외교적 압력을 통해 경인철도 인수를 위해 광범위한 교섭을 벌입니다. 일본은 정부와 민간 기업까지 동원하여 경인철도 인수를 위한 조합까지 조직합니다. 1897년 5월 4일 경인철도인수조합이 결성되고, 조합의 교부금 5만 달러를 지불하면서 양도 계약이 성립됩니다. 하지만 일본의 과중한 기술적 요구와 촉박한 기한으로 조합과 충돌하던 모스는 1898년 12월 17일에 조합에 현 상태의 인도를 제의하고 이듬해 1월 30일 조합이 모스에게 170여만원을 지불하면서 경인철도는 완전히 일본의 수중에 넘어갑니다.
당시 서대문역
경인선 건설 공사와 개통
경인철도의 인수 이후 조합은 합자회사로 변경하여 1899년에 공사를 제개하였습니다. 인수 당시 토공공사가 반정도 진행되었으며 한강교량의 교각 3개 정도가 축조중이였으며 1899년 9월 18일 인천 - 노량진간 임시개통, 1900년 11월 12일 서대문역에서 전통식을 거행하면서 경인선이 완전 개통하게 됩니다.
2009.08.11 내용추가
현재의 인천역은 당시에도 인천역 또는 제물포역이었다.
당시 인천역은 제물포역과 동일한 역입니다. 당시에 승차권을 보면 역명의 한자 표기와 영문표기가 다른경우가 있는데 인천역의 경우는 제물포, 우각동역의 경우는 soppl 정도 되겠다. 제물포역은 1960년대 초반에 생긴역입니다.
기공식을 우각동역에서 한 이유
기공식은 원래 시 종착역에서 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처음 계획된 인천역 부지가 일본인 주지와의 토지보상 문제로 매수가 연기되자 공사기공은 1년이내라는 조항때문에 부득이하게 우각동에서 기공식을 하게 됩니다.
경인선 부분개통의 이유
1899년 한강의 큰 수해로 인해 한강철교의 완공이 늦어져 인천 - 노량진간을 먼저 개통합니다. 후에 한강철교는 1900년 7월5일 완공되었습니다.
현재 서울역은 서대문역이 아니다.
경인선의 노량진 이북 구간은 노량진 - 용산 - 남대문 - 서대문역이다. 이때 서대문역은 당시에 경성역으로 불렸으며 서대문구 합동에 있덨다고 합니다. 서대문역은 1919년 3월 31일 영업이 중단되고 그 후에 남대문역이 1923년 1월 1일 경성역으로 바뀌고 1925년 10월 25일 현재의 구 서울역이 신축됩니다. 그 후에 1946년 11월 1일 서울역으로 개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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