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에 열한 살의 가브리엘 샤넬은 며칠째 어머니의 침대 맡을 지키고 있었다.
결핵에 걸린 어머니는 서른셋의 나이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유일한 안식처였던 어머니는 샤넬이 두려워했던 대로,
어머니가 죽고 며칠이 지난 후에야 나타난 아버지는 그녀와 두 자매를
프랑스 중부 어느 수녀원에 맡겼다.
아버지는 곧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했으나 이후 다시는 볼수 없었다.
수녀원에서 수녀들은 엄격한 규율을 강요했고,
소녀들은 칙칙한 벽 안에서 기도를 올리며 금욕적인 생활을 해야했다.
소녀마다 옷은 단 두벌이었고 그나마도 똑같이 추레한 모양이었다.
사치는 금기였고,들을 수 있는 음악은 교회음악뿐이였다.
열여덟 살이 됐을 때 샤넬은 수녀원을 떠나 기숙학교로 갔고
수녀원들이 운영하던 그곳에서 샤넬은 재봉사가 되는 교육을 받았다
동네 곳곳을 둘러보던 샤넬은 연극 무대에 섰지만
재능은 타고나지 못했음을 얼마 못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 사실을 받아드린 샤넬은 이내 새로운 꿈을 찾아냈다.
연기로 생계를 꾸리기 힘든 여배우들은 부유한 남자의 후원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운 좋게도 에티엔 발상이라는 젊은이가 샤넬을 그의 저택에서 지낼 수 있게 초대했다.
저택에는 아름답고 세속적인 여자들이 많이 왔다.
유명한 여성들은 모두 육감적이고 아름다웠다.
그들에 비하면 샤넬은 굴곡 없는 몸매에 전형적인 미인이라고 보기는 힘든, 소년 같은 외모였다.
샤넬은 언제나 남이 가진것을 원했다.
다른 여자가 남자친구나 남편과 함께 있는 것을 보면 그 남자를 뺏고 싶은 욕망에 불탔고,
실제로 몇번 그렇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남자친구든, 저택에서의 생활이든,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 나면 그녀는 늘 실망했다.
샤넬은 이런 인간본성을 이용해
그녀는 자신과 자신이 만든 물건에 '미스터리'라는 아우라를 둘러쳤다.
샤넬은 사람들의 앞에 서는 횟수를 주도면밀하게 조절했다.
그녀는 잠시 모습을 감추는 것의 가치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샤넬은 처음부터 자신의 옷이 도처에 보이기를 바랐다.
남들이 샤넬옷을 입은것을 보면 똑같이 옷을 갖고 싶은 경쟁심이 자극된다.
임자 있는 남자를 볼 때 자신이 얼마나 깊은 욕망을 느끼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 남자들이 탐났던 이유는 다른 사람이 그들을 탐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원하던 것을 갖게 됐어. 그러면 나는 행복할까? 별로. 대체 뭐가 빠졌기에?
내 영혼에는 더 이상 욕망이 주는 짜릿함이 없어... 아, 착각해서는 안돼.
기쁨은 만족에 있는게 아니라 좇는 과정에 있는거야.』
-피에르 오귀스탱 드 보마르셰 (18세기 프랑스의 극작가)
(인간본성의법칙-로버트그린 中)
가지지 못한걸 더 원하는 마음은 누구나 공감할듯 한다
또 남들이 가지고 있는걸 나는 가지지못해 서운한적은 누구나 있을것이라 생각된다.
필자의 학창시절만해도 등골브레이커라는 노스페이스패딩이 유행했었고
학생들이 교복처럼 입고다녔다.
필자는 유행에 관심이없고 소박함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라 딱히 관심이 없었는데
친한친구 한명한명씩 입고다니는게 보이니 나도 모르게 가지고싶은 욕구가 생겼고
구매하진 않았지만 부모님께 부탁해봤던 기억이난다 ^^
지금생각해도 너무 비쌌다...
그렇게 우리는 욕망에 쉽게 휘둘리고 어쩌면 노스페이스는 마케팅에 잘 성공한게 아닐까싶다.
[출처]https://cafe.naver.com/singlehood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