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기자들은 '정봉주 성추행 피해자 A씨'를 '안젤라'라고 부릅니다. 그에게 평생 따라다닐 주홍글씨를 본명으로 기억하는 것조차 미안한 마음에서입니다.
피해자는 사회에 첫 발을 내딛기도 전에, 자신이 지지하고 응원했던 한 정치인으로부터 씻어낼 수없는 악몽을 겪었습니다. 정의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이에게조차 여성은 그저 성적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7년을 삭였습니다. 그 정치인이 1년 감옥살이를 정치 밑천 삼아 이제 더 높은 정치직을 바라보는 동안에도, 자아를 가둔 피해자 내면의 독방 창살은 걷히지 않았습니다.
서지현 검사가, 김지은 씨가 먼저 외쳤습니다. 앞선 이들에 힘입어 어렵게 용기를 냈습니다. 상처 입은 피해자를 학창시절부터 토닥여주던 <프레시안> 기자의 펜을 빌어 내뱉었습니다. '나도 당했다'고.
피해자는 이미 극성스러운 이들의 돌팔매질로 '2차 가해'를 받는 중입니다. "이름 까고, 얼굴 까고 미투해", "강간도 아닌데 웬 미투?"
프레시안을 향해선 폐간을 협박합니다. "그깟 어린 여자애 10원짜리 인권이 전도유망한 정치인의 10억짜리 정치생명보다 중요합니까? 당신들이 그러고도 언론입니까?"
제법 유명한 사람들도 피해자 잘못이라고 합니다. 어느 교수는 "사이비 미투"라고 합니다. "한 남성과 여성 사이의 일회적인 성추행, 그것도 당시 권력이 없는 사람의 미수 행위는 미투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건 "미 온리"라면서.
어느 방송인은 "미투를 공작으로 이용하고 싶은 자들이 분명히 있다"면서 미투 공작설을 유포합니다. 진보니 보수니, 영문 모를 저만의 잣대로 피해자들을 진영의 공작원 취급합니다.
그동안 어떤 피해자의 얼굴은 영상에 생생하게 담겼습니다. 그리고 매일 같은 표정과 손짓이 TV를 통해 반복 재생되고 있습니다. 그 피해자는 무생물인가요? 어떤 대상일 뿐일까요?
하지만, 촛불 이후의 촛불, 미투는 혁명군처럼 다가왔습니다. 모든 일상과 관행을 뒤흔들고, 고리타분한 좌우 진영의 경계를 파괴해 갑니다. 적폐는 시간 순으로 쌓여왔어도 해체는 옛 것, 지금 것을 가리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우리 일상에 늘 존재했으되 이제야 발견된 이 '새로운 진영'이 묻고 있습니다. 신체를 점령당한 경중을 저울질하는 당신은 어느 편입니까? 점령한 횟수로 등급을 매기는 당신은 어느 편입니까? 얼굴 없는 미투는 가짜라고 매도하는 당신은 어느 편입니까? 가해의 손이 진보인지 보수인지 가르는 당신은 어느 편입니까?
미투를 혁명이라 칭하기 전에 프레시안은 자문했습니다. 피해자 개인이 평생의 불행을 짊어져야만 진정성을 겨우 인정받을 수 있는 혁명이라면, 그것이 무슨 혁명인가? 가해자에게 짓밟힌 개인에게 무리지어 돌팔매질 하는 '21세기 민주사회'가 16세기 마녀사냥 시대와 무엇이 다른가?
익명 미투는 보장돼야 합니다. 언론이 기계적 잣대를 버리고 끌어안아야 합니다. 사회가 '얼굴 없는 미투'를 보듬고 용인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직장에서, 길거리에서, 모든 일상에서 자행되는 그 어떤 성폭력도 경중을 가리지 않고 세상에 알려질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보도의 본질은 정치인 정봉주와의 '진실 공방'이 아닙니다. 그에게 당했던 악몽을 7년 만에 세상에 토해낸 피해자의 외침이 사실로 입증되어 가는 과정이 핵심입니다. 사건 현장에 가지 않았다는 정봉주 전 의원의 주장은 유력한 목격자(민국파:정대일)의 증언에 의해 이미 거짓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정 전 의원은 성추행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며, 피해자를 향해 시간과 장소를 한 치의 오차 없이 기억해내라고 다그치다 검찰로 갔습니다.
하지만 정 전 의원이 낸 고소장엔 피해자가 없습니다. 유력한 목격자도 없습니다. <프레시안> 기자들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했다는 주장뿐입니다. 무엇이 두려워 진실을 밝히자며 시작한 소송에 진실의 주체들을 뺀 걸까요.
<프레시안>은 오늘, 정봉주 전 의원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고소합니다. 전적으로 정봉주 전 의원이 야기한 일입니다.
피해자가 정 전 의원으로부터 당한 악몽을 밝혀내는 길에 언론인 여러분들의 많은 응원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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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글짓기 백일장인가? 무슨 언론사 고소문이 논리는 없고 감정의 설사로 점철되어 있나? 그리고 보도의 본질이 진실 공방이 아니라고? 진실인지 아닌지 그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미 진실이라고 단정해 버리는 짓이 언론사가 할 짓인가? 요즘 언론사 기자들은 판사들이 하는 모양이네? 23일 동향을 기록한 780장의 사진이 제출되면 또 뭐라 핑계를 댈지... 머리가 나쁘면 눈치라도 있어야지... 한심한 것들 같으니...ㅡㅡ
언론사수준이 보인다.
이면지만 만들었구나..
"피해자를 향해 시간과 장소를 한 치의 오차 없이 기억해내라고 다그치다 검찰로 갔습니다."
진짜 내가 살다가 성추행으로 씻어낼 수 없는 악몽이라면
시간과 장소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기억하지 않을까?
얼굴없는 미투?
미투가 왜 미투운동이라 부르는데
즈그들 맘대로구만
처음 감독, 배우들 미투운동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정치권으로 넘어오면서 이상한 한국판미투운동이 되어버린 느낌.
보편적 의심과 합리적 의문점을 가지고 말하면 우린 "미투"운동이야! 라고 내뱉는 보슬아치들...
외국기업이든 외국운동이든 한국에만 오면 바가지, 덤탱이로 변하는거나.. 시바꺼
더군다나 미투의 경우 지금보다 훨씬더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100번 양보해서 A씨가 피해자 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프러시안의 보도 행태는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충분한 팩트 첵크가 없었고 몇일동안 반론의 기회도 주지 않았습니다.
미투 열풍 뒤에 숨어 여론몰이 하여 마녀 사냥하는 식의 보도 행태를 보였습니다.
프로시안의 보도행태는 진보적이지도 않고 기자정신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말 미투 보도를 하고 싶었다면
특수관계(친구)가 아닌 다른 기자를 통해서 해야 했고
보도에 앞서 충분한 검토가 필요 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최근의 미투 운동은 한국에서 이상하게 변질되어 일단 유죄로 추정하고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그 굴레를 스스로 벗어나야 하는 방식으로 변하였습니다.
이건 열명의 범죄자가 풀려나더라도 한명의 억울한 사람이 있어선 안된다는 법의 정신에도 벗어나는 일입니다. 허위 고발로 죄없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매장되고 투옥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입니까?
최근 한국 사회의 미투 운동은 마치 미국의 매카시 선풍과 비슷한 점이 많은 것으로 느껴집니다.
니들을 볼 시간에 차리리 아사히나 마이니치를 읽겠다... B급 찌라시 소설이라도 수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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