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프쉬페(Die Admiral Graf Spee)는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의 3번함. 이 배는 독일 해군이 1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베르샤유 조약의 군비제한조항의 범위 내(배수량 1만톤 이하)로 맞추면서도 강력한 군함으로 건조한 배이다. 취역은 1936년. 영국 해군은 이들 군함을 덩치는 작지만 강력하다고 인정하며 포켓 전함이라고 불렀다.
덩치에 비해서 큰 터렛이 키 포인트
- 배수량: 14,500 톤
- 무장: 6문 X 28 cm (11인치) 함포, 8문 X 15 cm 함포, 6문 X 8.8 cm 함포, 8문 X 3.7 cm 대공포, 8문 X 2 cm 대공포, 8문 X 53 cm (21인치) 어뢰발사관
- 장갑: 측면 장갑(현측) 80 mm, 140 mm 포탑, 40 mm 갑판
- 성능: 최대 속도 28노트, 항속거리 30,014km(18,650 마일, 시속 15노트 항해)
- 동형함: 3: 도이칠란트,아드미럴 쉬어, 아드미랄 그라프 쉬페
- 운용: 1933년 ~ 1936년 사이 취역.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상실
1932년 10월 1일 빌헬름스 하펜 해군공창에서 기공.
1934년 6월 30일 진수식
1936년 1월 6일 취역
그라프쉬페는 제2차 세계대전의 개전 후 통상파괴작전에 종사하며 1939년 9월 30일을 기점으로 남대서양이나 인도양에서 많은 상선을 침몰시켰다. 이에 대해 연합국은 대서양에 일곱, 인도양에 하나로 총세 전함 3척, 항모 4척, 순양함 16척의 대책부대를 편성하여 통상파괴함을 수색했다.
1939년 12월 13일 그라프쉬페는 영국 해군 중순양함 엑세터(HMS Exete, 20cm포 장비), 경순양함 에이잭스(HMS Ajex, 15.2cm포 장비), 경순양함 아킬리스(HMS Achillies, 15.2cm포 장비) 3척에게 포착되어 라플라타 해전이 발발한다. 이 전투에서 그라프쉬페의 손해는 비교적 경미했지만 겨울철 북대서양의 격랑에 견디며 본국에 돌아갈 상태는 아니었고 함장인 한스 란돌프(Hans Wilhelm Langsdorff 1894-1939, 착실한 기독교신자로 나치즘 숭배자가 아니었다.)는 가까운 중립국인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항에 함을 퇴각시켰다. 애초부터 이 배는 본국으로부터 군함과의 교전을 금지당하고 있었다. 우루과이는 중립국이라곤 하지만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라로 또 독일 본국에서 우루과이에서 조기철수명령이 내려왔고 수리도 못한채로 절망적인 귀국항해에 나서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정박기간 중에 영국 해군의 선전방송이나 본국으로부터의 정보에 의해 단독으로는 대항할 수 없는 유력한 함대에게 탈출로가 봉쇄당했다 판단한 란돌프는 우루과이 정부가 제시한 항구 철수기간을 맞이하고 있던 12월 17일에 질게 뻔한 싸움으로 승조원을 위험에 빠트리지 않게 하기 위해 승조원을 독일 상선에 옮겨 태우고 남은 승조원 40명과 함께 그라프쉬페를 몬테비데오 항구 밖으로 끌고 나가 자침시켰다.(승조원은 전원 구명보트로 대피) 이 모습은 라디오 실황중계로 전세계에 방송되었다. 또 독일 본국에선 "자침 시 유감을 가지지말라"고 지시는 있었지만 스스로 자침에 책임을 지고 있던 란돌프는 계류하고 있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군함기를 몸에 두른채 권총으로 자결했다. 또 그가 아르헨티나 정부와 교섭하던 승조원에 대한 선처도 인정되지 않고 전원 억류당했다.
한스 랑스도르프 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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