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한 민국 한법 전문(前文)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2. 유관순 누나
1. 전세계 17살 소녀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받친 것은 잔다르크와 유관순 열사 뿐임.(3.1운동 당시 만16세 3개월)
2. 이화학당의 동기들과 5인 결사대 조직하여 만세운동하다가 경찰서에 끌려간 후 온갖 협박과 고문 당하심. 학교장인 외국인 '프라이'선생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석방되어 집으로 내려감
.3. 천안으로 내려가서 부모님과 동네 유지 4분이랑 만세운동을 계획
4. 천안, 아우내장터에서 만세운동하다 현장에서 부모님 두분이 즉사.
5. 유관순 열사는 옆구리에 칼로 찔린채로 머리채를 잡힌체 일본 순사에게 끌려감.
6. 1심에서 일본시민으로 충성하면 석방해주겠다는 재판장에게 의자를 집어던져 법정 모독죄 추가.
7. 1심애서 7년형 인도 받음.(33인보다 더많은 형을 언도 받음)
8. 2심에서 3년형으로 감형
9. 상고하지않음 '나라가 없으니 어딜가도 갇혀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상고하지 않겠다'
10. 악명 높은 서대문 형무서로 이감
11. 칼에 찔렸던 옆구리에서 계속 피고름이나고 썩어감.
12. 감옥에서도 여전한 항일 정신으로 모진 고문이 계속됨.
13 고문 : 손톱을 다 뺀지로 뺌, 고추가루 탄 물을 코에 붓고, 17살 소녀를 발가벚겨 매달아 때림.옆구리 칼에 의한 상처가 여전히 아물지 않았음
14. 3.1절 1주년에 서대문형무소에서 다시 만세운동 주동함
15. 감형을 받고 출소 2일 전, 모진 고문에 방광이 터져 순국 하심.
16. 아무도 시체를 안찾아감.
17. 부모님이 다 돌아가신 집안은 풍비박산나서 거두어 갈 사람이 없었음. 주변 지인들도 일제의 협박에 아무도 시신을 거두지 않음.
18. 이화학당에서 시신을 인도함.
19. 출소 할꺼라 믿었던 이화학당 동기들과 선후배들이 새 옷과 머리 핀을 준비했었음.
20. 그러나 죽은지 10여일이 지나 시신으로 돌아옴.
21. 그날 이화 학당 교정이 썩은 내로 진동했다고 함.
@ 대통령은 말은 좀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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