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말 기대와 의욕으로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오픈빨이라고 1월 2월 3월 원만하게 돌아가는 영업에 다소 안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4월 지역특성상 4월의 벚꽃축제때는 축제장부근만 영업이 잘되고 나머지 지역은 사실상 개점휴업이나 다름없습니다 대게 군항제는 10일전후로 기간이 끝나기에 이후 차츰 매출이 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16일 참사가 났죠
처음에는 전원 구조란 뉴스 속보에 다행이네하는 이정도의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역이 바닷가라 해상사고를 자주는 아니지만 간간히 접합니다 사망사고도 있지만 대부분 대물사고이죠
그러서 더 대수롭지 않았는가 봅니다
허나 전원구조는 오보였고
구조작업의 난항, 수색작업 지연, 인양등등 여러과정이 지나갔지만
한가지 기억에 남는건 배의 창문으로 어릿어릿 보이던 생존자들의 모습이였습니다
왜 눈앞에 두고도 창문을 깨서 구조하지 않는가 왜 구조를 더 신속히 하지 않는가 답답한 마음에 애가 달고 배에 남은 생존자들의 걱정에 하루하루가 힘들었습니다
사실상 온나라가 초상집 분위기 아니였나 싶습니다
지역이 지역인지라 지역내 가장 큰 경제 주체는 조선업이고 해군입니다 대형 선박사고이기에 조선소도 해군도 회식이나 회사밖의 소비를 줄이는 경향이 있었고 해군의 경우는 당시 야외 여가 활동을 줄이라는 공문도 내려왔었습니다
4월의 매출은 사실상 0원이였습니다 그럼에도 어디 하소연할수도 없었고 할생각도 못가졌었습니다
5월 역시도 그리고 6월을 지나 7월에 폐업을 했습니다
누구를 원망할수가 없었습니다 하늘로 간 아이들 당시 제게는 조카가 딱 그아이들 또래였습니다
결혼을 앞두고있어 나 역시도 부모가 될 입장이기에 하늘에 별이된 부모들의 아픔이 그저 안타깝고 답답했었습니다
이후 정부의 대처 구조체계의 교란 시스템 붕괴를 보고
한편으론 학창시절 미친개라 불리던 선생이 학기초 학생들 기강잡는다고 학생하나 책잡아 조회시간 운동장에서 전교생이 보는앞에 개잡듯이 잡고 그걸 지켜보며 두려움을 느끼고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 다행이라며 안도하던 그 야만의 시간들이 생각났습니다
이후 그 정권은 탄핵으로 막을 내리고 다음 정부 그리고 지금 정부에 이르렀습니다
이태원 참사로 그날의 악몽이 다시 재현됐습니다 또 오송지하차도 참사도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또다시 시스템은 무너졌고 똑같은 사태가 또다시 반복 됐습니다.
누구는 그럽니다 세월호에 대한건 잊자고
세월호 유가족의 보상은 솔집히 관심없습니다
어짜피 내것이 아니며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선 자식의 목숨은 내목숨과도 기꺼히 바꿀수있기에 금액의 규모 역시도 전혀 고려치 않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이후 아니 씨랜드 참사 그이전 서해훼리호 참사이후를 지나 오늘까지 시스템의 발전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책임자 처벌은 최고 직책으로는 가지 않았고 원인이나 사고 이후 대처방안은 흐릿해져 그저 국민들 기억속에 지우기 급급한 치부로만 생각하는 그들이 저는 아직도 답답합니다
여러 참사 희생자들의 아픔이 잊혀지길 바라며
그 희생자들의 아픔을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이라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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