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삼 년 전 ‘청소년도박근절’이라는 목표로 만든 시민단체 ‘도박없는학교’는 외부의 어떠한 지원이나 도움 없이 그저 제가 이때까지 불법 도박 시장에서의 경험만을 믿고 설립한 단체입니다.
도박에 중독된 친구의 어린 아들을 상담하며 “나라면 청소년 도박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 라는 자신감 하나로 대출을 받고 주위에서 돈을 꾸어가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내가 먼저 앞장서서 달리고 또 성과를 내면 무관심하기만 했던 정부와 세상도 변하겠지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삼 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을 달려오며 많은 어려움과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처음엔 함께 활동하는 아이들과 짜장면을 먹었지만 그마저도 힘들어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고 라면 값마저 부담 가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하지만 불법 도박 시장에 버려진 아이들의 현실은 손을 놓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했습니다.
도박으로 인해 2차 범죄를 저질러 소년원에 간 아이들이 여덟 명, 친구들에게 40만 원을 꾸고 갚지를 못해 육 개월 동안 성 고문을 당해 학업을 포기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한 아이를 포함해 정신병원에 입원한 여섯 명의 아이들, 아직도 불법 도박사이트의 사장이 되겠다며 도박을 업으로 선택한 아이들까지…. 내 자식들은 아니지만 그 어리고 착한 아이들이 그렇게 된 배경은 우리 어른들이 만든 세상에 있기에 많은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도박문제는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는 예방이나 치유가 아니고 그 근원을 뿌리째 뽑는 것이라 믿고 범죄계좌 동결에 매달려 왔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도박사이트가 수만 개로 보이겠지만 전수조사를 해보면 천 여개이고 이는 다섯명정도의 인원으로 육 개월에서 일 년이면 충분히 없앨수 있고 정부가 조금만 도와준다면 삼 개월 안에 해결 가능한 일입니다.
보잘것없는 시민단체와 가진 것 없는 우리가 그래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건 함께 고민하고 도와준 언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현실에 공감하고 저희 단체의 방향을 지지해 주는 언론사와 기자님들이 있어서 많은 일들을 이루어가며 변화를 이끄는 단초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어이없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우리나라 합법, 불법 도박의 최고 컨트롤타워인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의 수장으로 국무총리 비서실장이 내정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정부가 청소년 도박에 대해 털끝만큼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평생 국무총리실에서 근무한 관료를 사감위수장으로 앉히지는 않았을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사감위가 정신을 못 차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2007년 사감위 출범 후 여러 실책의 결과가 지금의 도박천국을 만들었는데 아직 더 망가뜨릴게 남아있나 봅니다.
합법 도박 감독과 불법 도박 감시를 목표로 만든 사감위의 역대 수장들은 도박에 문외한들의 낙하산 단골 메뉴였습니다.
연일 언론에서 청소년 도박으로 인해 신음을 하고 있는 아이들의 사연이 쏟아지고 있는데 정부는 사감위 수장의 자리가 자기 사람 하나 꽂아 넣을 의자 하나로 밖에 안 보이나 봅니다.
급성맹장에 걸려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상황인데도 나랑 친하다는 이유로 변호사 친구에게 개복수술을 맡긴다는 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요.
이젠 내가 왜 이러고 살았나 회의감이 듭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고 제가 좋아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니 누구를 탓할 것도 없지만 그냥 오늘은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어 글을 씁니다.
청소년 도박에 대한 정부의 정책, 없습니다.
청소년 도박을 막을 정부의 능력, 없습니다.
청소년 도박에 대한 정부의 관심, 없습니다.
청소년 도박에 대한 정부의 책임감, 좃도 없습니다.
작년 11월에 출범한 ‘온라인도박근절과 청소년보호를 위한 범정부대응팀’, 올해 2월에 출범한 국민통합위 ‘도박극복 프로젝트’ 특별위원회 이건 대국민 사기극입니다.
도박에 도짜도 모르는 의사, 교수, 변호사들을 모아놓고 마치 정부가 청소년 도박을 근절 할 수 있다고 떠드는 건 여론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하는척하는 연극,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지요.
여론이 시끄럽고 정부의 대응에 국민들이 주시하니 세금 먹은 값이라도 하려고 대단한 이름 걸고 당장은 속일 수 있겠지만 용두사미가 아니라 용두사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경찰서 이름, 교육부 이름, 사감위 이름걸고 무슨 캠페인이니 첼린지니 협업, 예방 공모전, 치유캠프 등등 사진 기사 하나 싣고 책임 있는 어른인척하겠지요.
사감위위원장에 67세 국무총리 비서실장 내정ㅋㅋㅋ
진심으로 정부와 지방부처들이 하는 짓을 보면 구역질이 납니다.
이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미쳤습니다.
이 나라는 아이들의 미래엔 관심도 없고 신경도 안 씁니다.
도박에 중독된 아이를 키우시는 부모님들이 저에게 많은 상담전화가 오면 항상 하는 말이 “지옥에서 살고 있다” 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학부모님들, 여유가 되시면 이민 가세요.
이 나라는 희망이 없어요.
날도 안 좋은데 저는 오늘 술이나 먹고 다시 한번 제 앞가림부터 생각해 볼랍니다.
님이 한창 달리고 있을때 현실을 말했다면 악플이 되었을 거에요.
그리고 그게 악플이건 뭐건 님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을테구요.
고생하셨구요. 수고하셨구요. 충분히 잘 하셨어요.
누구도 님만큼 하지 못했을 거에요.
잠시 멈추더라도 한발자욱이라도 내딪어 주신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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