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주일입니다.
저는 천주교인이라 성당에 갑니다. 오늘 개신교인은 교회로 불교인은 절로
각개인의 종교관에 따라 때론 사정상 필요한 곳에 갔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아주 훌륭한 사람이 예수님께 예수님을 따르고 싶다 합니다.
성경구절에 나오는 부자의 천국행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 구절입니다.
저는 종교를 믿을때 천국이나 극락에 가기 위해 믿은 적은 없는것 같습니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 이란 말을 막연히 싫어해 왔습니다. 그럼 착하게 잘 산 사람들은 모두 지옥행인가 라는 말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사실 이 모든 말은 인간들이 자기씩으로 표현한 말이라 생각합니다.
서구의 거대한 성당은 재물이 없이는 만들어지기 불가능합니다. 유럽 바이킹의 약탈시기 수도원들은 제1의 표적이었습니다. 먼저 금은 보화가 많고 외딴 곳에 있어 손쉬운 약탈대상이된 것입니다. 다시 동아시아로 와서 불교도의 황금불상과 황금궁전도 동서양의 형태가 비슷합니다. 뒤늦게 생긴 이슬람교의 성전 또한 마찮가지입니다.
그럼 왜 이렇게 표현된 것일까 보다 예수님이 그런 비유를 한 것의 해석의 차이가 아닐까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진리라 표현하셨습니다.부처님도 같은 맥락이지만 다르게 표현하였습니다.
즉 진리를 따라라 하신 것입니다. 훌륭한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겠다 하자 12제자외에 처음으로 믾은 사람들 중에서 나의 제자가 되는 길을 말씀한것이 이사람입니다.
그는 훌륭한 사람이지만 모든 재물을 나누어주고 따를 수가 없었기에 울며 돌아갑니다.
불교의 부처님은 왕자의 자리와 처와 자식을 떠나 수행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왕자와 귀족들이 스님이 되기도 합니다. 종교를 믿으며 그 종교에 헌신하는 경우 기독교와 불교에서는 위와 같이 하는 것이 모두 일반적입니다.
그만큼 진리에 대한 믿음을 얼마나 가지고 있나이며 울면서 돌아간 그사람이 훌륭한 삶을 그뒤 살지 않았을리 없습니다.
아마 제자가 되진 못했지만 자신이 할수 있는 일을 찾아하며 훌륭하게 살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죽어 지옥을 갔을까요.. 부자가 천국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보다 어렵다를 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지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글을 보고 사이비다 하면 할말은 없지만 그래도 그 젊은이 나쁜짓하며 살지 않았를 것이라는데는 모두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은 진리이기에 믿는 것이지 천국이나 극락에 가기 위해 믿는 것이 아닌것을 자꾸 천국이나 극락이야기만 합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사람들에게 좀더 알기 쉽게 표현하다 보니 해석이 다양해 질수 있다 생각합니다. 종파의 분리는 결국 교리의 해석 차이가 만든 결과물이기에 저는 천주교리의 일관성을 좋아하여 성당에 다닙니다.
천국과 지옥이야기를 합니다. 결과적인 일을 과정을 살아가는 인간들이 먼저 단정지어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예지몽을 꾼다는 글을 썼습니다. 꾸고 싶어 꾸는 꿈도 아니고 원한 적도 없지만 저절로 일으나는 일이기에
저는 어느순간 이 과정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여행을 통해 경험하며 제가 본것이 한 단면이며 그것의 다른 단면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어
얼마나 기쁘하였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잘알고 있는 도마 안중근의사는 천주교 신자입니다. 그는 일본인에게는 치욕을 한국인에게는 명예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교리적 측면에서는 죄인입니다. 어떤 해석을 하든 그 해석이 정당하다면 그 사람들의 해석이 맞는 것입니다.
이제는 제가 절에 간다면 법당에서 기도는 하지 않지만 법당 밖에서 부처님께 인사는 드릴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당에서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성모 마리아와 달마대사 가 만났을때 그분들이 싸울까요.. 아니면 차담을 하시면서 정겨워 하실까요..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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