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조어가 많이 생깁니다.
목트임은 옛날부터 명창이 되기 위해 현대의학 기준으로
성대결절을 몇번이나 겪은 사람이 성취하는 득음의 단계입니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구수하고 속이 뻥~뚫림니다. 명창의 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귀트임이란 신조어가 있습니다.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상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런데 귀트임은 오래도록 시끄러운 소리에 노출된 사람이 걸리기 쉬운 질병과 같습니다.
또한 박자에 맞춘 큰소리는 더욱 그 질병을 심화시켜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생리적 현상을
만듭니다. 현대의학에서 청각과민증에 걸린 사람은 작은 소리에도 몸서리 쳐지며 정신적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러데 그런 현상을 어떤 득음을 얻은 것 같이 포장을 하여 유포되고 있습니다.
귀트임은 상당한 질병이며 그 질병은 분명 한사람을 망가뜨립니다.
뉴스의 예로 휴전선에서 북한이 일으키는 스피커를 이용한 귀신소리를 듣고 미쳐버릴것 같다는
주민들의 호소는 집단으로 청각과민 (귀트임) 현상이 생긴 것입니다.
보통 청각과민증(귀트임)증은 개인적 질병으로 사회 문제화된 대표적 사례는 지속적 층간소음으로 인한
잔혹한 사건들일 것입니다.
그런 일이 휴전선 전지역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에 심각하게 바라봅니다.
그지역에 있다 귀대하는 장병과 주민들이 각 도시의 곳곳에 개인적으로 존재한다면
그 사람들이 살아가며 겪을 고통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번 청각과민증(귀트임)에 걸리면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약이 없습니다. 정신과 치료도 무용지물입니다.
그래서 저는 귀트임이란 용어가 얼마나 잘 못된 표현인지 지적하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현대사회이든 옛날 숲속이든 동물들은 심지어 물고기들까지 소리에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생존 본능이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민감히 반응하도록 구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보통의 사람이 청각과민의 상태에서 병원을 찾아가도 정신적 안정을 위해 정신과나
이비후과를 가도 치료할수 없습니다.
왜냐면 소리로 일으나는 청각과민은 소머즈의 귀가 되게 하는데 소리에 반응하는 것이지
말의 소리를 잘듣는 것이 아니고 그저 작은 소리에도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병원을 다녀도 치료가 되지 않는 것은 사람이라면 당연한 것입니다.
물론 예외적 경우는 항상 존재하지만 그런 경우는 그저 예외적 경우입니다.
저는 목트임과 귀트임을 동일선상에 놓고 표현하는 것을 인터넷에서 보고 정말 누가 저 따위 거짓을
유포하는가 하는 분노를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치료의 방법과 예방을 위해 고민하고 힘써야 하는데 더욱 심화시킨다면
사회는 더욱 불안한 사회가 될텐데 하는 답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회구성원들이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이 많아야 우리의 번영과 안정이 지속될텐데..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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