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은 넓은 공간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광장이라 불려왔습니다.
유럽의 많은 광장은 세계각지에 유럽의 광장을 모방한 광장이 만들어 지게하였습니다.
심지어 프랑스의 개선문을 모방한 곳들이 세계 곳곳에 만들어 지기도 합니다.
고대로마의 광장이나 아테네의 광장에서 사상가나 정치가의 명연설이 기록으로 남아 있기도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피커나 음향장치도 없는데 어떻게 많은 사람들을 설득시킬수 있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사람의 목소리로 30분만 연설하고 나면 목이 쉬게 됩니다. 큰소리로 하고 나면 몇일 쉬어야 합니다.
거리 기준으로 연설자 중심 20미터 거리정도가 한계인 것 같습니다.
음향장치를 사용하면 더멀리 들리고 연결하면 그뒤까지 전달될수 있습니다.
물론 옛기록의 표현으로 육신통은 거리의 한계를 벗어납니다.
그래서 현재의 기준으로 황당무계하게 생각합니다.
비방책이나 저주의 주술같은 것은 혹세무민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지금도 사용됩니다.
저의 개인적 생각입니다.
성인이나 고승의 능력을 보고 돈벌이나 개인적 목적으로 잡스런 방법을 생각하여
사람을 현혹하는 방법으로 소리를 이용하였고, 소리는 동물적 인간이 안심하거나 경계를 가지게 하는
기능을 하여 왔기에 종교(무속등)에서 돈을 많이 낼수록 크고 화려하게 소리를 내지 않았나 입니다.
광장의 목적 자체가 사람을 모으는 곳입니다.
현대의 광장에서 연설자가 말하면 각종 음향기기 100미터 200미터 뒤의 사람에게 전달이 됩니다.
고대의 광장에서 연설자가 말하면 아마 거기있는 사람들이 연설문을 적거나 기억하였다가 사람들에게
전파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현대의 방송을 보면 편집의 힘이 얼마나 거대한지 알수 있습니다. 20분정도의 이야기꺼리를 2시간으로
만들수 있는 것이 편집 같습니다. 편집을 재창조로 보아도 무방할것 같습니다.
광속은 빛의 속도라 합니다.
CNN생중계 전파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동 전장의 총성을 들었든 기억은 전장의 총성보다는
과학기술의 경이 이기도 하였고 인간의 용맹성을 보는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광장이야기를 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은 현대의 광장은 너무 크고 너무 넓기 때문에
소음과 무질서가 올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광장은 뉴스를 만들어 내는 공간인것 같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나 또는 모았나 경쟁하기도 합니다.
광우병 파동에서 보면 광장이 뉴스를 생산하고 뉴스를 기반으로 광장이 크졌습니다.
촛불혁명도 똑같은 과정을 거쳐 일으났습니다.
그런데 그런 성공의 신화는 계속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사람들에 심어 줍니다.
한번의 성공이 성공이 반복될수 있다는 신화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프랑스대혁명의 성공은 그 뒤 말도 않되는 혁명사태를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 역사의 기록입니다.
수많은 짧은 영상들(숏)과 동영상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사실로 받아들이게 만들었습니다.
광장의 확장이 방구석까지 확실히 들어 온것 같습니다.
방구석에서 광장의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수단이 그만큼 다양해 졌고
선의 든지 악의 든지 얼마든지 편집의 방법으로 재창조 되고 있다가 현재의 상태인것 같습니다.
그나마 토론중심의 뉴스는 그래도 생각할 시간을 주지만 짧은 영상은 편집으로 재창조된 것이기에
편집자의 의도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일수 밖에 없는 구조인것 같습니다.
정당들은 누가 얼마나 재미있는 숏(짧은영상)을 만들어 낼수 있는가로 젊은 표심을 잡아 왔었고,
현재는 다른 전연령층도 따라 가는 것 같습니다.
숏(짧은 영사들)은 뉴스의 한단면을 계속 볼수 있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현상은 모두가 이사실을 알고 이 일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돈은 사람들을 자신도 모르게 열심히 만들게 하는 힘인 것 같습니다.
다음에 계속~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