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명 L47 (SM7)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부산 신호공단에 자리잡은 르노삼성자동차 부산공장. 생산 라인에는 부드러운 선율이 흐르고, 유리 천장을 통해선 가을 햇살이 그대로 들어왔다. 자동차 공장 같지 않은 분위기의 작업장에는 젊은 근로자들이 신형 준대형차 SM7을 조립하느라 분주했다.
창립 11주년을 맞은 르노삼성의 직원 평균 연령은 만 33세로 국내 완성차 업체 중 가장 젊다. 이런 젊은 근로자들을 위해 르노삼성은 작업시간마다 조립팀별로 원하는 음악을 틀고 있다. ‘젊은 공장’이다.
르노삼성은 일본 대지진 여파로 부품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지난 3~6월 공장 가동률이 70~80%에 머물렀지만 지금은 완전 가동 체제다. 조립라인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한 직원은 “QM5의 수출 주문이 늘어나고 SM7 신차 출시로 밀려드는 주문을 제때 맞추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르노삼성은 2000년 출범 때만 해도 SM5 한 차종으로 연간 1만대 남짓 판매하는 작은 후발업체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은 연간 27만대 이상을 생산·판매하는 글로벌 메이커로 도약했다. 나아가 글로벌 3위 자동차 메이커인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아시아·태평양지역 개발 및 생산 전초기지 역할을 맡고 있다. 쉼없이 새로운 성공 스토리를 써나가고 있는 르노삼성은 지난 10년간 눈부시게 성장한 한국 자동차산업 역사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내수 후발업체에서 글로벌 메이커로
프랑스 르노그룹이 2000년 9월 삼성자동차 지분 80.1%를 인수하면서 출범한 르노삼성은 첫해 중형 세단 SM5 단일 모델로 승부를 걸어야 했다. 1만2000대 판매가 전부였을 만큼 첫해 성적은 초라했다. 국내 완성차 5개사 중 꼴찌였다.
하지만 SM5의 성능과 품질 우수성이 입소문을 타면서 이듬해 판매 실적이 7만대 이상으로 치솟는 기적을 낳았다.
SM5는 단숨에 현대자동차의 쏘나타를 위협하는 경쟁자로 등장했다.
탄력을 받은 르노삼성은 2002년 SM3를 시작으로 2004년 준대형 세단 SM7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QM5 등 신차를 잇따라 내놨다. 2005년 매출은 2조원을 넘어섰고 2008년에는 3조7000억원을 달성했다. 쌍용자동차를 제치고 처음으로 업계 4위로 올라섰다. 2008년 하반기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도 르노삼성의 기세를 꺾지 못했다. 2009년과 2010년에는 모기업 GM이 흔들리면서 어려움을 겪은 한국GM마저 제치고 3위를 차지했다.
좁은 내수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수출시장을 뚫은 게 주효했다. 2006년 2월 준중형차 SM3는 르노와 닛산 브랜드를 달고 본격 수출에 나서 보란듯이 성공했다. 2005년 3600대에 불과했던 수출 물량은 본격 수출에 나선 첫해인
2006년 4만1000대로 껑충 뛰었다.
르노삼성은 올 들어 9월까지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러시아 멕시코 칠레 프랑스 등 70여개국에 10만8396대를 수출했다.
내수 판매 8만4893대를 웃도는 실적이다. 회사 관계자는 “르노-닛산에서 요구한 수출 관문인 섭씨 50도 이상의 사막과
영하 40도의 혹한에서의 주행 등 각종 성능시험을 모두 통과하자 새로운 시장이 열렸고, 회사는 비약적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잡았다”고 말했다.
프랑수아 프로보 르노삼성 사장은 “초기와 달리 르노-닛산 모델을 들여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생산해 수출하는 게 아니라 지금은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차를 수출하고 있다”며 “르노삼성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아시아태평양 허브 기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르노-닛산의 아·태지역 연구·개발(R&D) 및 생산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르노삼성이 자체 개발한 QM5는 유럽과 중국 등에 ‘꼴레오스’라는 이름으로 수출하고 있다.
◆경쟁력의 바탕은 1등 품질과 생산성
르노삼성이 10년 이상 고속질주하는 데는 ‘품질과는 타협하지 않는다’는 변치 않는 경영철학이 자리잡고 있다.
자동차 시장조사기관인 마케팅 인사이트가 지난 7월 한 달간 실시한 ‘2011년도 자동차 품질 및 고객만족’ 조사에서 르노삼성은 10연 연속 고객만족도 1위에 올랐다. SM7은 초기 품질과 내구 품질 부문에서 준대형차에서 1위, 전 차종을 통틀어 2위에 올랐다.
품질과 고객만족을 최우선하는 경영철학과 함께 차별화한 고객 서비스를 끊임없이 실현했기에 가능했다는 게 업계 평가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주력산업팀장은 “르노삼성차는 재구매에 나서는 충성 고객들이 많다”며 “고객들이 품질과 성능에 만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르노삼성은 1998년 삼성자동차로 처음 시작할 때부터 경쟁사에서 숙련된 인력을 빼오는 방법을 마다하고 직업훈련생을 뽑아 일본 닛산에 연수를 보내는 방법을 택했다. 품질이 앞선 일본차를 따라잡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같은 품질 최우선 철학은 10년이 갓 넘은 짧은 역사에도 4개 차종만으로 내수시장에서 3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품질에 대한 자부심은 차량 보증기간에서도 나타난다. 엔진과 미션 등 동력 부문은 5년·10만㎞, 기타 부품은 3년·6만㎞ 보증 등 업계 최장 보증기간을 적용하고 있다.
높은 생산성도 르노삼성의 강점이다. 르노삼성의 시간당 자동차 생산대수(uph)는 국내 최고다.
6개 차종을 혼류 생산하는데도 르노삼성의 uph는 64로 50 안팎인 경쟁사들을 압도한다.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뜻하는 조립생산성(HVP)도 르노삼성이 24.5로 현대자동차(31.3)를 앞선다.
◆르노삼성과 함께 해외로 가는 협력사
지난 1월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구매를 총괄하는 공동 구매조직인 RNPO
(Renault-Nissan Purchasing Organization)의 핵심 임원들이 한국을 찾았다. 연간 95조원 규모에 달하는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부품 조달을 책임지는 이들은 르노삼성 협력업체로부터 부품 구매 가능성을 타진했다.
당시 크리스티앙 반덴헨드 RNPO 대표를 비롯해 임원 20여명은 열흘간 머무르며 르노삼성 기흥 중앙연구소와
부산공장에서 ‘RNPO 글로벌 콘퍼런스’를 갖고 르노-닛산의 구매전략에 대해 협력업체들과 의견을 나눴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국내 우수 협력업체들과의 상생 경영을 위해 부품 협력사들이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와의 거래
물꼬를 트기 위해 구매조직 임원을 한국으로 초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노력 덕에 르노삼성 협력업체 가운데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로 부품을 수출하는 기업이 빠르게 늘고 있다.
2009년 28개 업체에 불과했지만 2010년에는 84개사로 늘었고, 올해는 100개 이상에 달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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