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협정[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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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편집]
일본제국이 패망한 후 일본인들이 일본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대다수의 어선과 어구를 소유하고 있던 일본인 선주들 역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어선과 어구를 대부분 가져갔기 때문에 한국의 수산업은 크게 위축되었고 어업 생산량이 급감하였다. 한국의 수산업이 생산수단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동안 일본의 어선들은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어로 금지구역으로 설정되어 있었던 곳까지 들어와 어류를 남획하였고 이 때문에 한일간에 잦은 충돌이 있었다. 1950년대 일본 어선들은 제주도와 흑산도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 남서 해역에서 대규모로 선단을 이루어 어로작업을 벌였다. 한국 측에서는 평화선의 선포 등으로 일본의 수역 침범에 대처하고자 하였으나 어선과 장비에서 열세였기 때문에 적극적인 대응을 할 수 없었다.[10]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외교관계를 회복하게 되면서 어업협정이 함께 체결되었다.
협상의 과정[편집]
1965년 어업협정은 제3공화국 때 한일국교 정상화의 일환으로 행해진 것이다.
박정희는 대선 승리를 위해 서둘러 어업협정을 체결하였으나 공개시기를 늦추었다.[11]
1963년 일본측의 요구를 수용한 한일어업협정의 발표를 미룬 정황도 드러났다. 정부는 그 해 7월까지만 해도 ‘12마일 전관수역 방안으로는 영세어민의 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40마일 전관수역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을 일본에 전달했다.[12]
하지만 이후 일본측의 12마일 전관수역 주장을 수용할 의사를 밝히고 이를 공개하지 아니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특히 8월과 9월 최고회의, 중정, 외무부 당국자들이 참석한 7차, 9차 한일문제 대책회의 문서에서는 대선을 고려한 정략적 논의도 드러났다. [12]
“ | (12마일로 한다는 것이) 어느 정도까지 비밀이 지켜지느냐가 문제다. 야당측의 공격 자료가 돼선 안 된다.[12] | ” |
? 중정 국장 |
“ | 대통령 선거 전에는 이 안은 내놓지 말아야 한다.[12] | ” |
? 최고회의 위원 |
이후 평화선이 철폐되고 독도 인근이 공해(公海)가 되었다. 성능이 좋은 일본의 어선이 동해의 물고기를 거의 싹슬이 하다 시피 하였다.[13]
61년부터 시작된 6차회담 기간에 평화선에 기초한 40해리를 주장하던 한국정부의 입장에 대비하여 변화가 생겼다. 외무부와 중앙정보부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반대에도 박정희의 대선일정 등을 감안해 '12해리 전관수역' 입장으로 물러섰다. 이 기간 한국은 일본측에 1억 1천 4백만달러의 어업협력금을 정부차관 형식으로 공여기간 3년, 이자 3.5%, 3년 거치후 7년간 균등상환 조건으로 요구했으며 일본은 민간차관 형식으로 7천만달러를 고집했다.
특히 일본은 차관 등 청구권 문제의 대가로 평화선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우리 정부는 평화선 문제에 신축성을 보일 수있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또한 일본은 1963년 6월7일 어업협력에 따른 청구권은 5억달러 이내로 하되 12해리 전관수역의 합의 또는 평화선 철폐와 어선나포 방지를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14] 이에 따라 같은 해 7월12일 전관수역을 12마일+α로 하기로 양국간 의견조율이 이뤄졌다.[14]
한편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원칙에 입각해 북한 연안에 대해선 언급하지 말자는 입장을 고수했다.[14]
https://ko.wikipedia.org/wiki/%ED%95%9C%EC%9D%BC%EC%96%B4%EC%97%85%ED%98%91%EC%A0%95
결론은 원조 토착왜구+빨갱이 대통령 박정희 가카께서~
돈에 미쳐서 독도를 공해로 만들어 버림!!!!!
김대중이 신한일어업협정을 통해 독도를 포기한 토착왜구라고하는데..
2005년 문화일보의 이병선 기자는 칼럼을 통해 1965년 한일어업협정에서도 군사정부에서 중간수역 지위에 해당하는 공동규제수역으로 설정했고 신 한·일 어업협정은 김대중 정권에서 최종 타결됐지만 문제의 조항을 수용한 것은 김영삼 정권이었다고 밝혔다.
이미 김대중 대통령 타결 이전에 김영삼이 수용하였고..
당시 김영삼은 민자당 소속.. 민자당은 현 자일당의 전신임..
즉, 박정희가 돈에 미쳐서 한일 어업협정으로 독도를 공해로 만들고..
김영삼이 신한일업협정으로 일본 주장 수용하고..
김대중이 최종 타결 함.
누가 토착왜구 일까??
추가로..
일본은 1900년대부터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억지 주장을 하기 시작함..
쪽바리 근거로 센프란시스코조약 등등 게소리를 나불데는데..
일본은 이미 1800년도경에 독도를 한국땅으로 인정하고.. 쪽바리 지도에도 표기해 놓음!!!
https://news.joins.com/article/18258937
[출처: 중앙일보] 1802년 일본 지도 ‘독도는 조선 것’
세계 다른 국가에서도 독도를 다케시마로 오표기하고 우리나라에서 정정 요청을 하고있음..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일부 기관에서 오 표기 된 다케시마 지도를 꺼내서 욕 쳐먹고 있음..
이건 정말 고쳐져야함..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일본에 힘에 밀려.. 독도를 제대로 주장 못하고 질질 끌려다니며..
당연히 우리나라 땅인데... 별 그지같은 쪽바리 시키와 분쟁하는 것에 분노를 해야지..
어디 되먹지 않은 쪽바리 사상에 세뇌 된 벌레시키가..쪽바리 주장을 하면서 분탕질하는거냐??
이 벌레시키가 한국인이냐?? 쪽바리 벌레시키냐??
쪽바리가 그렇게 좋으면.. 여기서 분탕질하고 욕 쳐먹지말고..
니네 나라로 꺼져라!
그래서 내가 평화주의자들 싫어한다.
누가 토착왜구냐??
이영훈 분신 정도 되나봐요 냅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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