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산군1년(文山君一年). 문재지변(文災地變).
임금이 덕이 없어 문산군이 즉위
하자마자 백성의 삶은 날로 피폐(疲弊)
하여 시름하였고, 조선팔도 곳곳에서
재앙(災殃)이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반정(反正)을 꾀하는 모양새로
정권을 찬탈(簒奪)한지 6개월.
경상도(慶尙道)의 지진에 식년시(式年試)를
진행하지 못하였고, 진해(鎭海)에서는
기름수레를 끌던 노인이 불에 타 죽었다.
홍수가 일어나 집들이 떠내려갔으며,
남쪽 지방의 땅이 흔들려 많은
가옥이 파손(破損)되었다.
이로 인하여 전국 유생들의 과거가
1주일 넘게 유예(猶豫)되어
겨우 치뤄지게 되었다.
파주(坡州)에는 가축병이 창궐(猖獗)하여
닭과 오리들이 실성하여 죽어가므로
백성들은 산채로 이를 땅에 묻었다.
수천만마리의 닭과 오리들이
산채로 매장(埋葬)되었다.
낚시배가 물자를 운반하는 배와
충돌(衝突)하여 10명 이상의 백성들이
탈출하지 못하고 산채로 수장(水葬)되었고,
충청(忠淸) 마을 백성들의 쉼터에서
불이 나서 서른에 가까운 백성이
불에 타 죽었다.
문산군 1년 내내 간신히 심은 농작물은
썩고, 각종 재난(災難)으로 가축과
사람이 죽어나갔다.
하루에 한번 오던 재앙은
어떤날은 세번이 오기도 하였다.
한날은 북방 오랑캐 병사가 중상을
입고 목숨을 구하러 월경(越境)을 했으나
임금이 싸움을 두려워해 추격해온
적을 물리치지 못하였다.
문산군이 조공(朝貢)을 다녀온 후
청나라에서 마구 검은 연기를 보내어
도성 내 백성들이 숨도 쉴 수 없게 되었다.
임금은 청나라 눈치를 보고 백성들이
쓰는 수레탓으로 돌렸고 한성부(漢城府)
판윤(判尹) 정2품(正二品) 박원숭(朴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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