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랫동안 환자였어요. 지금도 환자에요. 병을 알게 된건 고2 때고 현재 나이는 스물 여섯...
그 이전부터 발병해있었을거예요. 슬금슬금 진행되다가 알게 된게 고2 때였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서 저녁에 샤워하다가 갑자기 흘러내린 코피로 온 욕실을 피칠갑을 해서 일단 욕실 청소를 하고 코에 휴지 뭉텅이를 끼고 나왔는데, 나오는 순간 그 휴지뭉텅이가 피로 물들어 무거워지면서 빠져나왔고, 흘러내리는 피가 온 방안과 옷을 적셨어요.
크게 당황했고, 친구들의 비명소리로 너무 부끄러웠어요.
보건선생님과 담임선생님이 들어 와도 코피는 멈출줄 몰랐고, 그 전까지는 코피가 잘 안멎는다는것만 살짝 인식했을뿐 이런 상황까지는 처음이였기에. 부끄럽다는 생각만이 들었어요. 그 밤에 담임선생님과 제주의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서 피검사하고 링거 같은거 맞으면서 잠이 들었어요.
서울에 돌아 와서 부모님과 대학 병원에 가서 뭔가 심각한 병이라는걸 알게 됐고, 저는 정말 절망했어요. 수시를 위해 내신관리 빡세게 해놨는데, 혹시 중간기말시험 보다가 또 이렇게 되면 어쩌나 이런 철없는 생각만 들었죠 .... 고2, 2학기 중간고사때와 고3, 1학기 기말고사때 기절을 하는 바람에 병원에 실려갔고, 저는 수시는 물건너가게 됐어요. 정말 그렇게 학생부, 내신관리를 했는데 소용이 없더라고요 ㅠ
그러면서도 수능을 쳤고, 수능중에 코피가 나서 (하여튼 재수도 정말 없어요 ㅠㅠ) 보건실에 가서 코를 수시로 틀어막아가며 수능을 봤습니다. 내신을 망쳤기에 정시밖에 길이 없어......
수능 수험표는 피범벅에, 입고 온 옷들도 다 피범벅이 됐죠. 수능 끝나고 시험장을 나오면서 엄마랑 만나 바로 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코피가 안멎어서요..
어찌어찌 대학을 갔어요. 그것도 제가 미쳤었나봐요. 간호학과를 갔어요. 일반적인 과보다는 체력적으로 엄청 힘든 전공이죠. 근데 그래도 가고 싶었어요. 그나마 집과 학교간의 거리가 가깝고 대학병원이 있는 학교라 부모님의 반대에도 제 마음속에는 뭔가 계산이 되어있었어요. 여차 하면 병원 응급실로 가면 된다는 말도 안되는 합리화요....
학교를 다니며 주사 실습등을 하는데 같은과 친구는 제 혈관을 못찾더라고요. 한번 찌르면 피가 솓구치며 멈추질 않는걸 보면서 친구에게 무척 미안했습니다. 밝힐수가 없고... 괜찮다고 난 원래 혈관이 안좋고, 피가 잘 안멎는 체질이라고 절대 걱정할것 없다고 미안하다고 막 사과했습니다. 다른 과에선 몰라도 의료계통 학과에선 이런 병을 갖고 있는건 절대적인 약점이고, 어찌 보면 사기같은 일이거든요. 아픈 사람이 어떻게 간호사를 하겠다고 간호학과를 옵니까. 내 욕심으로 많은 친구들이 피해자가 될수도 있잖아요. 졸업때까지 누구에게도 제가 아픈것에 대해 말을 안했었는데, 생각해보면 좀 이기적이였습니다..
3학년때부터는 병원 실습 나갔고, 뭐 바쁜 학과라 수업 실습 시험등을 보면서 하루도 편히 쉴수가 없었어요. 학점에 봉사 점수도 있어 봉사시간도 채워야 했고, 헌혈도 봉사에 들어갔지만 헌혈은 커녕 수혈을 받고 다니는 처지라, 그냥 바쁘게 몸으로 때우는 봉사를 했고, 게다가 주제파악 못하고 욕심만 부려 교직과목까지 이수를 하자니 전 쉴틈이 없었습니다. 방학때는 학기중 교생 나가느라 못간 병원 실습 가야했거든요.
그리고 4학년 실습시간 천시간을 채우고, 교생 한달까지 마치고 대망의 졸업을 했습니다. 졸업전에 이미 취업을 원했던 병원, 서류와 면접, 필기 시험까지 다 합격을 해놨는데, 졸업후 발령이 나려고 하니 신체검사 받으러 오라 하더군요.
밤새도록 울었습니다. 혈액검사 하면 반드시 저는 탈락일거라는걸 알고 있었거든요. 그간에 모든걸 다 바쳐서 여기까지 왔는데, 나보고 여기서 이 병때문에 그만두라니, 너무 잔인하잖아요.
신체검사 받고, 당연히 혈액수치에서 말도 안되는 이상한 결과가 나오자, 병원 신검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혹시 어디 아프냐고요. 질환 있는거 있냐고.......... 있다고 사실대로 대답했습니다.
지금 그 병원(제가 지원한 병원)의 어느 교수님이 주치의라고요. 전 일할수 있다고 대답하며, 기회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럼 주치의 교수님의 소견서 받아오라 하더군요.
진료일정도 아닌데, 진료일정 예약을 잡아서 주치의 면담했습니다.
저: 올해 졸업을 했는데 취업시 신검에서 문제가 있다 보니 주치의 선생님 소견서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교수님 소견서좀 써주세요.
교수: 안돼.
저: 교수님 한번만 제 인생을 살려주세요. 전 이 직장에 다니고 싶어서 대학도 열심히 다녔고 졸업했고 취업준비도 열심히 했습니다.
교수: 안된다니깐. 니가 어떤 일을 할지 내가 어떻게 알고 소견서를 써줘. 너 막말로 땡볕에서 힘쓰는 일하다가 또는 위험한 일 하다가 잘못되면 어쩌려고... 안돼 못써줘 나가
저: (무릎꿇고) 아닙니다. 위험한 일 아닙니다. 한번만 부탁드립니다.
교수: 안돼 나가 나가!!
할수 없이 힘없이 진료실 밖으로 나왔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다시 들어가셔서 뭐 또 무릎을 꿇으셨다 합니다. 자식이 원하는 일이니, 앞으로 어찌 될지도 모르는데, 자기가 해보고 싶다는 일은 한번 하게 해줘야 나중에 회한은 없지 않겠냐고 읍소했다고 하시더군요.
어쨌든 그런과정을 거쳐, 소견서를 받았습니다.
이름 : 김이박
병명 : 중증*******
위 사람은 실내에서의 위험하지 않은 직장일은 수행할수 있을것이라 사료됨
주치의 박이김
뭐 이런 내용의 소견서를 갖다 내고, 그나마 같은 병원의 교수님의 소견서라 통과가 됐습니다.
남들은 아무것도 아닌 신체검사를 저는 몇년을 고민했고, 몇달을 숨을 못쉴만큼 힘들었고, 마지막에 받아내기까지
저와 부모님의 모든 자존심을 버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대학병원 내과 중환자실 신규간호사의 생활을 했습니다. 3교대에 1~2개월은 수습기간 프리셉터에게 혼나가면서 배웠고 그 이후에는 제가 직접 환자에게 간호처치 했습니다.
어느날인가는 3교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이트 후에 데이로 출근하다가 집에서 쓰러졌고, 병원 응급실에 들러 씨티 찍고, 뇌출혈 소견이 없다기에 다시 중환자실로 근무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기적적으로 기대도 안했던 조혈모세포 기증자 분이 나타났다는 연락을 받았고, 할수 없이... 그렇게 애타게 원했고, 힘들게 다녔던 병원 중환자실을 사직하게 되었습니다. 이래 저래 다 합하면 한 10개월 가량 되는 기간이였는데 잊지 못할 경험이였고, 저에겐 감사한 시간이였습니다.
하필이면, 이식을 앞두고 집 욕실에서 쓰러져 뇌출혈이 왔고, 응급실에 실려갔는데 지주막하 출혈로, 혈소판이 5천인 상태이므로, 담당교수님이 어머니께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20여일간 뇌출혈로 입원했는데, 저는 그때 죽었다 살아났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살려주신 여러 분(피를 나눠주신분, 의료진들, 부모님등등)과 신께 감사드립니다.
어쨌든 뇌출혈후에 다시 조혈모세포 이식을 하러 병원에 입원했고, 고단위 방사선과 항암으로 제 조혈모세포를 죽이고 새 조혈모세포를 이식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조혈모세포를 나눠주신 이름모를 기증자님 정말정말 감사드립니다. 정말 번거롭고 힘든 일이고, 누구에게 가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하기 힘든일이였을텐데.... 머리숙여감사드립니다.
기증자님. 제가 죽는날까지 잊지 않고, 은혜를 기억하겠습니다. 하시는 모든일이 잘되길 바라고, 건강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이식한지 거의 1년 반이 조금 넘게 지났습니다. 저는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았으나, 제 몸이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금은 이식전보다 못한 몸으로 살고 있습니다.
여러 약을 복용하고 있고, 고액의 비급여 주사로 생명연장을 하고 있습니다. 희망은 없지만, 그래도 살고 싶습니다.
하나둘 친구들이 결혼소식 전해오고, 직장내에서 승진했다는 소릴 들을때마다 축하한다고 하고 잘됐다고 하지만, 마음 한켠은 너무 괴롭습니다. 건강을 잃었을때 건강의 소중함을 알겁니다. 돈이 없으세요? 돈은 벌면 되지요. 건강은 되찾으려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되더라고요. 다 잃는거더라고요.
어떤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여러 매체를 통해 소식을 접할때, 얼마나 괴로우면 저랬을까 싶다가도, 마음 한켠의 악마는 그렇게 건강한 골수를 가지고 왜 죽었을까... 아깝다 나같으면 그 골수로 어떻게든 잘 살았을것 같은데 라는 교만한 마음이 튀어나옵니다. 이게 교만하다고 해야하는건가요..
건강하신 분들 너무너무 부럽습니다. 전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인 현재까지 제 삶이 멈춰있습니다. 중환자실 근무 10개월 정도는 제 몸과 마음이 제일 힘들고 괴로웠을때지만, 삶은 흘러가고 있다고 느꼈을땝니다. 너무나도 힘든 신규간호사 생활 그것도 대학병원 중환자실이 제 첫직장이였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모습 아직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자살로 실려오신 분들도 많아요.
병원 근처에 한강이 있어서 한강수비대 경찰 등에서 한강자살자들이 구조되면 저희 병원으로 실려오는 경우도 많았거든요.
죽지 마세요. 저같은 사람도 삽니다. 살고 싶어서 몸부림칩니다. 부모님이 힘들게 벌어다 주신 돈으로 저도 뭐 알바랍시고 집에서 종이접기하고는 있지만, 그 돈을 갖다 내고라도 하루하루 목숨 연장해서 살고 있습니다.
아까운 인생 아까운 젊음...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하루는 어제 죽어간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다 라는 명언처럼...
오늘 내가 쉽게 던져 버리려고 했던 생명은 살고 싶어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누군가가 그토록 바라던 생명입니다.
너무 긴글을 쓰다보니 기운이 모자라 다시 확인을 못하고 올립니다.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나 잘못된 표현등등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댓글보고 덧붙임---------------------------------------------------
추신: 힘내라는 댓글들 공감해주시는 댓글들 용기주시는 댓글들... 모든 댓글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려요. 점심으로 물냉면 먹고 유투브 좀 보다가 다시 와보니 오오..... 너무 많은 추천과 댓글보고 헉 했습니다. 저는 관심이 좋나봐요. 이렇게 관심 주시니 정말 좋습니다. 음... 아프다 보면 주변 친구관계가 소극적이 되고, 자유롭지 못하고, 나만 뒤쳐지는것 같은 열등감 때문에 인간관계가 메마르거든요...
근데 이렇게 많은 댓글과 응원 듣고 보니 제가 정말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것 같습니다.
보통 아픈 분들끼리 모여서 대화하는 환우회나 단톡방이 있는데, 저희 병도 환우회가 있어요.
그 환우회까페에서 같은 병원에 다니는 어느 분과 댓글 주고 받다가, 카톡하다가, 어제 통화까지 하게 됐는데, 그분은 저와 성별은 다르지만 동갑이고, 현재 병원을 안가고 계시다고 하더라고요. 7세때 처음 병을 알았다고 하고....
얼굴도 모르는 분과 그것도 이성과 전화통화, 되게 부담스러운건데, 동병상련이라서인지, 걱정도 되고, 꼭 진료 받으라고 당부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 나누고 끊었습니다.
그분이 계속 생각나고 해서, 아침에 종이접기 하다말고 이렇게 주절주절 글을 올리게 됐습니다.
저보다 더 심하게 아픈 분들도 많아요. 건강을 소중히 감사히 여기고 건강관리 잘하시길 바랍니다. 많은 관심 정말 감사드리고,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
아 그리고 저보고 멘탈 강하다고 칭찬주신 분들 많으신데 멘탈 약해요.. ㅎㅎㅎ 혈액검사하고 수치 나올때, 심장이 쫄려서 죽을것 같아요.. ㅠㅠ 수치를 진료전에 미리 앱으로 확인할수 있는데 화투? 패 쪼듯이 봅니다.. 타짜에서처럼 ㅎㅎ
전 그냥 살고 싶은 본능이 강한것 같습니다.
최선을 다해 치료받고 할수 있는데까지 열심히 살겠습니다. 가끔 주절이 넋두리 글 이렇게 올리면 관심 많이 주세요.
제가 혼자 종이접기만 하고, 집에서 뒹굴거리다 병원에만 가다보니... 외롭습니다.
긴글 읽어 주시고 댓글과 칭찬 주셔서 감사합니다.
힘내세요. 꼭!
뒤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글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힘내세요... 좋은 사람도 많습니다... 너무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글쓴이님 글에서 힘과 위로를 얻고 갑니다! 힘내세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저는 올해4월달 조혈모세포 이식을 해드릴뻔 했는대 정밀검사에서 맞지않다고하여 이식해드리지 못했네요..
힘내시고 또 힘내셔서 건강하시길 바랄게요~
무기력하게 있었는데 기운받아 열심히 살게요
그리고 열심히 살아서 넘치는 기운이 생긴다면 님에게 전달되서 건강이 1그람이라도 보탬되어 좋아지길 바랍니다.
화이팅!!1
좋은일이 있을겁니다.
시간이 지나서 좋아지시면 꼭 웃어주시고 저도 두루두루묵님의 글을 읽고 같이 웃기를 바랩니다.
이렇게요.... \(^_____^)/
힘내세요
남탓만하는제 모습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앞으로는 건강하시고 행복한일이 많이 생기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님 은 꼭 더 나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작가로 데뷔 해 보심이 어떨지요,,,,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하던 내일이다."
제가 항상 마음 깊은곳에 담아두고 매일마다 일어나면 되새기는 글귀입니다...
지금의 모습처럼 끈만 놓지 않으신다면 더 큰 기적의 힘으로 지금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좋은 소식 듣고 싶습니다. 힘내세요!!
누구보다 멋지게 사셨으면 합니다.
화이팅입니다.!!
왜............ 하늘도 무심하시지 ㅠㅠ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저도 하루하루 짧게 짧게 조금씩 재미있는 일 즐거운일을 생각하고 삽니다. 길게 앞날을 생각하면 못살겠더라고요.
제 인생의 절반을 사신 분께서 저보다도 더 힘든 삶을 보내고 계시는군요.
글을 읽다가 너무나도 막막하여 말을 잊지를 못하겠습니다.
그래도 저의 글이 대파미나리님에게 힘과 용기의 한가닥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힘내시고 이겨 내시고 건강해 지십시요.
그리고 건강을 되찾길 바래요. 꼭이요!
결코 제가 더 크다 말할수 없습니다. 저는 하루에 한번씩 이글에 들어와서 댓글 전부다 다시 읽으며 조금씩 마음을 다잡고 행복과 응원을 느낍니다. 사장님에게도 좋은 기운이 전해지기 바랍니다. 댓글주셔서 감사합니다.
쓴이의 글이 오늘도 힘을내게 해주네요.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긍정의 열정을 다하여 삽시다.
난 아무 건강문제도 없이....수면이 부족해...이것만 빼면 난
진짜..행복한건데..그걸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니..ㅠ
그렇다고 ...내 일상을 망치는 닭을 용서하겠단 뜻은 아님..ㅠ
흐엉...ㅠ
꼭 행복하세요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