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자동차 출범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대만 팔린 차가 있다.
SM 520LE MT 암녹색이 그 것.
같은 모델의 다른 색상은 연간 200대가 넘게 팔렸으나 암녹색은 한 대만 판매돼 국내 소비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색상 중 하나로 기록됐다. 반면 가장 선호하는 색상은 검정색. 검정색은 지난해까지 1만대가 훨씬 넘게 나가며 그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대표되는 색상은 누가 뭐래도 흰색이다. 예로부터 흰색을 선호해 온 민족성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흰색을 좋아하는 이유는 '가장 무난하다'는 것.
물론 여기서 '무난함'에는 여러 요소가 포함돼 있겠으나 무엇보다 되팔 때 색상에 따른 감가상각이 적은 게 주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살 때는 화려한 색상이 비싸지만 되팔 때는 흰색과 검은색 이외의 색상은 오히려 제값을 받지 못해 무채색 선호경향이 더욱 커지는 셈이다.
국내에서 또 하나 실패한 색상으로는 쌍용자동차 무쏘에 적용된 진홍색이다. 지금은 아예 사라졌지만 이 색상은 2002년까지 고작 10대만 판매돼 실패한 컬러라는 오명을 남겼다. 무쏘 초기 시절 기본 색상이었던 남색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인기가 식은 반면 흰색과 검은색은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자동차를 선택할 때 고려하는 색상은 크기에 따라 선호도가 매우 다르다.
현대자동차 에쿠스와 뉴그랜저XG 등 대형 세단은 검정색이 많지만 차가 작아질수록 흰색 선호경향이 뚜렷해진다.
실제 EF쏘나타의 경우 색상의 인기도는 순백색(28.3%), 진주색(26.7%), 흑색(12.8%) 순으로 나타나 자동차의 크기가 클수록 검은색이, 작을수록 흰색이 많이 선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대형차와
중형차에서 유채색은 마치 선택하면 큰 일이라도 나듯 금기시 되고 있다. 실제 대형차를 살 때 소비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색상은 담녹색(0.1%)과 흑색 투톤(0.2%), 베이지(0.8%)로 조사됐다. 에쿠스의 경우 흰색(0.6%), 그랜저XG는 베이지(0.1%)가 실패한 색상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소형차인 아반떼XD와 베르나는 흰색이 전체의 절반 이상(58.9%)을 차지, 압도적인 흰색 우위를 보여줬다.
무채색 선호도는 국내 스포츠카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대표적인 스포츠카 투스카니는 은색(49.4%)과 검정색(22.9%) 비율이 진노랑(0.4%), 진청색(2.9%) 등 원색 계열에 비해 월등히 높아 무채색 불패신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에 반해 경승용차의 대표주자 마티즈는 흰색과 적색 비율이 각각 27.2%와 23%로 국내 전 차종을 통틀어 유채색 비율이 가장 높다. 또한 은행잎색(Golden Yellow)과 풋사과색(Cyber Green)도 적잖은 판매를 기록, 컬러 마케팅의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앞서도 말했듯 국내 소비자들이 무채색 계열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향후 중고차 처리 때문이라는 속사정이 담겨 있다. 실제 자동차회사에서 컬러를 담당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새로운 원색의 색상을 시도해도 번번히 실패하는 이유에 대해 "구입할 때는 비싸고, 팔 때는 제 값을 받지 못하는데 굳이 원색을 살 이유가 없다는 게 소비자들의 생각"이라며 "새로운 색을 적용하고 싶어도 그렇지 못하는 이유를 시장에서 찾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흰색과 검은색을 선호하지만 물을 건너가면 선호 색상이 뚜렷이 달라진다. 가장 대표적인 민족과 색상의 관계로 이탈리아는 붉은색, 프랑스는 청색, 독일은 은색의 인기가 가장 높다.
색상이 민족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할 때 이탈리아 국민들은 다혈질이고 쉽게 흥분하는 경향이 강하다. 국민성 자체가 정열적인 붉은색에 가까운 셈이다. 이런 이유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스포츠카 브랜드 페라리를 상징하는 색도 붉은 색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심지어 페라리에 적용되는 붉은 컬러를 '이탈리안 레드'로 부르며 자신들의 민족적 색상에 자부심을 갖는다.
대표적인 프랑스 멜로영화 '베티 블루'에 등장하는 블루는 프랑스를 상징하는 색이다. 블루는 심리학에서 통상 냉정과 평온 그리고 이지적인 이미지를 지닌 색상으로 구분하고 있다. 문화를 사랑하는 프랑스인들에게 블루는 자기들만의 독특한 색상이자 이미지인 셈이다.
부지런함과 철저함으로 대변되는 독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실버(은색)는 평범함의 상징이다. 톡톡 튀기 보다는 묵묵히 자기 책임을 다하는 게르만족 특성이 묻어나는 색상이기도 하다.
특히 은색은 나서기를 싫어하는 한국인들에게도 비교적 많이 선호된다. 그러나 한국인과 독일인이 은색을 선택하는 이유는 다르다. 국내에서 은색 이미지는 사회적 억압의 상징으로 다소 불안심리가 작용한 반면 독일 사람들에게 실버는 '차분함'의 표현인 셈이다.
녹색은 영국인들이 좋아한다. 한 때 영국의 대표적인 자동차메이커였던 재규어의 기본 컬러가 녹색이다. 평화와 안전 그리고 객관성을 상징해서다. 녹색은 국내에도 언론사 취재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활동적인 성격의 노란색은 주로 젊은 층을 상징한다. 이런 이유로 노란색은 스포츠카의 주류를 이루기도 한다. 이탈리아 페라리도 적색 외에 노란색을 갖추고 있으며, 페라리와 경쟁하는 람보르기니와 미국의 닷지 바이퍼같은 스포츠카는 언제나 노란색을 기본 색상으로 지정, 생산하고 있다.
통상 색상에도 이름을 붙이는 네이밍(Naming)을 한다면 이해가 될까. 그러나 자동차에 있어 모델과 타깃에 맞는 가장 적절한 컬러 이름은 늘 관심사다.
컬러리스트들은 우리 말로 색을 표현할 수 있는 종류가 50여가지 내외라고 한다. 많게는 수백 종류에 이르는 컬러를 표현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때문에 자동차 컬러명은 주로 영어로 표기되는 사례가 많다.
사이버 그린(Cyber Green)이니 골든 옐로(Golden Yellow)니 하는 컬러명을 정할 때 가장 중요한 항목은 자동차의 컨셉트. 주 소비층을 고려해 적절한 이름을 붙여야만 하는 것. 흔히 소비자들이 차명에만 관심을 기울이나 제조사 입장에선 색상에 따라 차를 선택하는 시대를 감안해 컬러명에 매우 신중을 기한다.
컬러 네이밍이 가장 앞선 곳으로 꼽히는 회사는 GM대우자동차다. GM대우는 자동차에 고급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해 흰색은 갤럭시 화이트(Galaxy White), 은색은 폴리 실버(Poly Silver), 검정색은 그라나다 블랙(Granada Black)으로 부른다. 경승용차시장을 이끌고 있는 마티즈 블루 스카이(Blue Sky)는 차에 경쾌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지어낸 컬러명이다.
쌍용자동차 체어맨의 검정색은 클래식 블랙(Classic Black)으로 부른다. 검은색에 클래식이란 수식어를 붙임으로써 같은 검정이라도 차별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현대 투스카니에 적용된 흰색은 노블 화이트(Noble White)로 귀족을 위한 흰색이란 뜻을 담고 있다. 노란색은 밝은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태양광에 빛나는 '서니 옐로(Sunny Yellow)'라고 부른다. 색상을 이해하기 편하게 부르기도 한다. 에쿠스에 적용되는 화이트 펄은 디자이너 앙드레김이 좋아하는 색상이라 해서 '앙드레김 화이트'로 칭한다.
추천~~~꾸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