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자동차 덕후들 간의 대화 도중 나왔던 얘기로 글을 씁니다. 우리나라의 배출가스 규제가 어떻게 시행되고 있는지 알고 계시나요? 뭐 5등급 노후경유차 퇴출, 유로6d 시행.. 디젤차 관련은 익히 들어왔기에 잘 알고 있지만 휘발유차 규제가 어떻게 시행되고 있었는지 오늘 대화 중에 문득 스스로에게 물어봤지만 저 역시도 잘 모르고 있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조사하고 글을 씁니다.
우선, 간단한 역사부터 짚어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미국은 캘리포니아주 규제와 나머지, 일명 '49-state' 연방 배출가스 규제가 따로 존재합니다. 1967년 CARB(California Air Resources Board)는 심각한 스모그 때문에 독자적인 배출가스 규제를 공포 하였는데, 각 주 별로 배출가스 규제가 다르게 되면 자동차 업계에 타격이 크기 때문에 그 즉시 자동차 업계는 로비를 통해 연방 배출가스 규제 보다 더 강력한 주정부 배출가스 규제 시행을 막는 법안을 통과 시킵니다(닉슨 작품). 그러나 캘리포니아주는 이에 앞서 자체 주정부 배출가스 규제를 도입했기 때문에 예외가 인정되어 캘리포니아주와 49-state 배출가스 규제가 서로 다른 배경을 갖게 된 것이죠.
그렇게 세월이 흘러 2006년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온난화방지법이 발의되고 2007년 통과되는데(슈와제네거 작품), 그간 연방정부의 배출가스 규제 보다 강력한 주정부 자체 배출가스 규제를 만들지 못하도록 했던 판결이 수 십년 만에 뒤집히면서 2009년, 캘리포니아주의 규제를 다른 10개 주에서 도입하게 됩니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그동안 캘리포니아주를 제외한 49개 주에서 동일하게 제작된 차를 손쉽게 만들어 팔고 있었는데 이들 10개 + 캘리포니아주까지 11개 주에서 더 타이트한 배출가스 규제를 만족시키는 차를 만들어 팔아야 되니 사실상 배출가스 기준으로 서로 다른 두 가지 모델을 만드는 것이 비용상 메리트가 사라지게 되었고, 제조사들은 이제 캘리포니아식의 더 타이트한 배출가스에 맞게 전체 자동차를 만들어 팔게 되며 그간 자주 들어오던 49-state라는 용어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얘기도 지금부터 시작하면 딱 맞습니다. 미국식 배출가스 기준을 도입한 우리나라도 이 10개 주들 처럼 2009년 부터 캘리포니아식 규제를 도입하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 시행중이던 캘리포니아식 배출가스 규제, Tier 2(2004~2009)의 등급(Bin)은 총 11개였습니다. 숫자가 높을수록 배출가스를 많이 내뿜는 차고 숫자가 작을 수록 더 깨끗한 차죠. 그리고 이 많은 티어들 중, 얼추 중간 정도인 Bin 5 이상이면 배출가스를 적게 배출하는 상위 50%에게 부여되는 ULEV라는 등급에 해당 되는데, 우리나라의 규제는 캘리포니아주의 규제 강화 기간이 종료된 2009년 도입되었기 때문에 Tier 2의 최종 목표였던 이 ULEV 등급부터 도입을 시작했습니다.
이 캘리포니아식 규제의 놀랍도록 타이트한 점은 둘 더 있습니다. 유럽식 규제의 경우 해당 모델을 테스트하고 그 차종이 인증을 통과 하기만 하면 몇 대를 팔아먹던 관계가 없는데 캘리포니아식 규제는 해당 메이커가 해당 모델이어 동안 판매한 전체 자동차의 평균치에 기준합니다. CAFE(Corporate Average Fuel Economy)라 하는데.. 연비..라고 써있으나 배출가스는 연료소비량과 비례한다 하여 동일 기준을 적용합니다. 배출가스를 많이 내뿜는 차는 많이 판매할 수록 제조사에게 손해가 되는 것이죠.
다른 놀랍도록 타이트한 점 하나는 규제의 시행 단계입니다. 유럽식 규제의 경우 규제 시행일이 정해져 있고, 마치 시험기간이 끝나면 놀듯 규제 시행일에 맞게 새 규제에 대응만 해두면 다음 새 규제 시행까지 당분간 몇 년은 배출가스 대응 걱정 없이 자동차를 판매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반면 캘리포니아식 규제는 각 규제를 Tier로 구분되는 세대로 규정하고 이 Tier의 시작은 각 온실가스 배출량 몇으로 시작해서 매년 얼마씩 줄여서 최종년도에는 몇 까지 줄이겠다는 연단위 기준치가 매년 줄어듭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새 규제가 도입되는 주기 4~5년 정도 마다 새 배출가스 규제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모델 노후로 단종시킨 것 처럼 자연스럽게 사라지지만 미국에서는 매년 새 배출가스 기준치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매년 그 차들이 나가 떨어지는 그런 규제인 것이죠.
지금까지 위에 설명한 Tier 2라는 규제는 우리나라에서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시행 되었었던 것이고, 현재 시행중인 규제는 2017년부터 Tier 3라 불리며 시행된 그 다음 세대인데, 지난 Tier 2에서는 캘리포니아 본토에서 규제 강화가 종료된 후 국내에 도입이 되었다면 현재 규제는 캘리포니아 본토와 규제 시행일이 동일합니다. 다만, 캘리포니아 본토에서는 여전히 판매를 허용하는 ULEV(Tier 2 Bin 5 = Tier 3 Bin 160 이상)를 우리나라에서는 금지시키며 SULEV(Tier 2 Bin 2 = Tier 3 Bin 30 이상)만 판매를 허용하는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죠. 미국에서는 배출가스 인증을 잘만 받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통과가 안되는 희한한 사례가 있다면 그게 바로 미국 본토에서 SULEV 미만 등급의 자동차입니다. 참고로 캘리포니아에서 이번 Tier 3의 목표가 전체 신차 평균치를 규제 종료 2025년까지 Bin 30에 맞추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이미 캘리포니아주의 최종 목표를 시작부터 컷트라인으로 잡았다는 소리입니다.
Tier 2에서 Tier 3로 올라오며 눈여겨 볼만한 다른 중대한 사항은, 그간 디젤차에서나 이슈가 되었던 PM(미립자)에 대한 기준치도 마련되어 비록 CAFE에 근거하지는 않고 개별 모델 별로만 측정하지만 어쨋든 2017년 평가에 20%만 반영하는 것을 시작으로 매년 20%씩 늘려 2021년부터는 평가에 100% 반영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미 대부분 2022년형 모델이 출시되었으니 직분사 가솔린 엔진의 대표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오던 이 문제에 어떤 형태로든 대응을 마쳤다고 봐야겠지요. 별거 아니긴 한데 디젤차의 경우 SCR의 DEF(요소수)가 보충 없이 최소 4000마일을 주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항도 생겼습니다. 이미 전부터 내구 관련 내용은 있었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이 15만 마일까지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도 있습니다.
이쯤에서 유럽의 최신 규제와 미국의 최신 규제가 어떤 차이를 보이냐가 궁금하실텐데, 이건... 저도 알아보려 했으나 북미는 NMOG(Non Methane Organic Gas)와 질소산화물의 합을 기준으로 하고 유럽은 평가항목에 질소산화물만 따로 평가를 하는데다, 측정 싸이클이 다르기에 지식이 짧은 제가 뭐가 어떻다고 얘기할 수가 없네요.. 아시는 분이 계시면 제보 받겠습니다. 유럽과 미국이 각각 따로 명시해둔 CO(일산화탄소)와 PM(미립자)의 경우 단순 환산을 거치면 CO가 미국 1.6g/km vs 유럽 1.0g/km으로 미국 쪽이 0.6g/km, PM은 미국 4.8mg/km vs 유럽 4.5mg/km으로 이 역시 미국 쪽이 0.3mg/km 가량 더 널널하긴 한데, 말씀드린 대로 측정 싸이클 차이도 감안을 해야할 듯 합니다. (위 사용된 미국 규제 수치는 2022MY 기준)
뭐.. 테스트 싸이클이 다르다 한들 1.0과 1.6 차이면 미국이 60%나 더 큰 수치인데 아무래도 대배기량에 큰 차 선호하는 나라 답게 당연히 더 널널하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은 그래서 다운사이징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고.. 미국은 승용차(LDV)에 대한 기준에 일부 풀사이즈 픽업트럭과 SUV가 포함 되고 유럽은 아니라는 점도 이 정도의 수치 차이의 배경이라고 봅니다.
기술의 발전 속도 역시 한계라는게 있고 현실적으로 당장은 해결할수 없는 문제가 있는건데
지나치게 이상만 바라보면서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하려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친환경을 부르짖는거야 당연히 나쁘다고 할수 없지만 너무 이상만 앞서는 느낌이죠.
이미 규제를 만들 때 당연히 자동차 업계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이 현실성 고려가 최대한 많이 된 수치를 정해서 만들겠지만 특정한 정치 세력이 자기들 원하는 목표치로 가져오라고 압박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합니다. 이 줄다리기에서 누가 입김이 더 세냐에 따라 그 나라 규제가 정해지겠죠..
CARB가 발효되었을때 최초로 인증을 통과한 회사가 혼다였다고....
결국 미국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가장 타이트한 규정에 맞추는 쪽이 유리하고 어떤 의미로는 우리나라가 내연기관 신차의 환경인증이 가장 빡세편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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