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직접 들은 얘깁니다.
우리집은 서울이 고향입니다. 어머니 고향도 서울이고 아버지의 고향도 서울입니다. 외가는 물론이고 친가도 다 서울에서 수대를 살아왔습니다. 6.25 때도 서울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친가는 공무원쪽이라서 전쟁이 나자마자 남쪽으로 피했지만 외가쪽은 그냥 서울의 평범한 시민이라서 미리 알지 못해서 런승만이 한강다리 폭파하고 튀는 것도 몰랐다고 합니다.
서울에 고립된 상황에서 외가에 인민군들이 들이닥쳤다고 합니다. 이유는 외삼촌을 잡아가기 위해서 였는데 철도공무원이었던 외삼촌은 마침 일 때문에 지방에 가 있던 상황에서 전쟁이 터져서 서울에 없었기 때문에 화를 면했다고 합니다. 집집마다 젊은 사람이 있고 공무원이 있고 이런 것들을 인민군들이 어떻게 그렇게 다 알고 들이닥쳤냐하면 이것도 또 마을마다 일러 바치는 프락치들이 있었고 동네빨갱이로 불리우는 것들이 앞장을 서서 잡으러 다녔다고 합니다.
점령을 당한 서울에서 인민군들은 아이들을 데려다가 북한의 사회주의 사상을 가르치고 김일성 장군 어쩌구 하는 노래도 가르치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녀자들은 인민군들의 식사와 빨래 등에 동원 시켰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갓난아이 였던 어머니 때문에 다행히 불려나가지 않았지만 이웃에 부녀자들 중 몇몇은 강제로 인민군들의 식사와 빨래를 해야만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전쟁의 양상이 바뀌고 서울이 수복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국군을 환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환영의 분위기도 잠시 뿐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인민군도 아니고 국군과 청년단(?)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인민군을 따라서 북으로 도망가지 못했던 동네 빨갱이들과 프락치들이 죽임을 당했는데 정말 어이가 없게 죽임을 당했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강제로 인민군들에게 식사를 해주고 빨래 같은 것을 해줬던 부녀자들도 인민군 부역자로 몰려서 죽임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죽여서 용산역 앞에 거적에 덮어 놨었다고 하는데 할머니의 이웃에서도 영문도 모르고 끌려 나가서 죽임을 당했었다고 합니다. 강요에 못이겨서 위협을 해서 하는 수 없이 인민군들에게 식사를 만들어 제공하고 빨래를 해줬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던 부녀자들이 꽤 많았다고 합니다.
런승만이 한강다리 끊어 버려서 피난도 못가고 서울에 남아있다가 위협에 못이겨서 가족의 안위를 위해서 인민군에게 식사를 해줬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던 부녀자들이 용산역 앞에 시신으로 버려졌는데 가족들도 그 시신을 수습하기에 두려웠다고 합니다. 연좌죄로 죽임을 당할까봐 그랬다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외가집이 있던 동네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그 외에 다른 지역에서도 이런 비극은 벌어졌다고 합니다. 런승만 때문에 서울에 고립됐던 서울시민들 중 보도연맹원들 말고도 무고하게 부녀자들이 많이 죽임을 당했는데 이것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저때 민족 반역자 들이 지들한테 위해될거 같은사람들을 공산당 부역자 또는 빨갱이라고 처단했습니다
지금도 불리하면 빨갱이라고 하는게 유지되고 있으니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하루라도 민족 반역자들을 처단해야 나라가 삽니다. 근데 그것들 밑에서 돈과 권력으로 부역하는것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이승만 기념관을 서울한복판에 짓겠다니..... 삐뚤어진 역사를 한번 바로잡지 않으면 이후 역사도 계속 반복된다.
저때 민족 반역자 들이 지들한테 위해될거 같은사람들을 공산당 부역자 또는 빨갱이라고 처단했습니다
지금도 불리하면 빨갱이라고 하는게 유지되고 있으니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하루라도 민족 반역자들을 처단해야 나라가 삽니다. 근데 그것들 밑에서 돈과 권력으로 부역하는것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사람들 모여있는 자리에서 누구하나가 저 사람 빨갱이야! 그러면
앞뒤 안보고 그냥 빨갱이로 몰아 부치는....
우메한 개한민국 빨갱이 타령하는 것들 다 쳐죽여야!
이승만 기념관을 서울한복판에 짓겠다니..... 삐뚤어진 역사를 한번 바로잡지 않으면 이후 역사도 계속 반복된다.
빨갱이 싫어한다고 하는 대구경북 사람들 봐라.
김일성 우상화 하듯이 박정희 우상화 일환으로 동상만들고 난리 부르스를 치고 있다고 하더라.
양극은 결국 서로 닮는다면서?
먹먹하네요
태극기 휘날리며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나쁜 런승만..
단지 시골 외곽 산골에산다는이유로 국군에게
학살당함 이유가 ...북한군 패잔병이나
공비.빨치산들에게 식사나 편의를 제공할 우려가있기때문
관대한
런승만과 국짐
국군이 강원도 평창을 수복하고, 당시 마을 이장에게 누가 부역자였냐고
물은 후 처형했다고 함.
실제론 이장이 부역자였는데, 이장은 인민군 퇴각로를 알려줬다는 이유로 오히려 상 받았다고 함.
할머니 얘기로는 일본놈 한태 붙어 먹던 놈이 또, 사람을 죽였다고 하심.
당시 죽임을 당했던 사람은 이장 집의 머슴(이장은 싫댔는데 머슴이 자신을 겁박해서 어쩔 수 없이 부역했다 함).
혼자 살던 과부 등 힘없던 사람이었다고 함.
“탕! 하니까 나무토막처럼 쓰러졌어” 하심
소설 마당깊은집 주인공 모친의 강점기말부터 해방후 6.25동란 시절을 연상하며 했던 대사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