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후에 좀 걷자고 했다.
바람은 선선했고 하늘은 맑은 오후였다.
그녀도 가끔씩 아주 길게~~~ 숨을 고르며
늦은 오후의 거리를 즐기는 듯(?) 했다.
그녀는 숨도 분위기 있게 천천히 쉬는구나~~
사랑스럽다~
창덕궁을 거쳐 창경궁으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니 우울함이 가시는 듯 했다.
♥그 여자♥
씨......아직 과일 많이 남았는데...
이 인간이 좀 걷자고 한다.
하긴 걷다보니 소화도 좀 되고
괜찮은 것 같았다.
근데 자꾸 트림이 올라와서 괴로웠다.
녀석이 눈치 못 채게 입 안에서 삭여서
숨 쉬는 것 처럼 길게~~ 후~ 하고 뱉었다.
전혀 눈치 채지 못 한 것 같았다.
^-^V
근데 이 놈이 뜬금없이 무서운 얘기 해 줄까요?
하더니 예전에 술 먹고 밤에
여기를 걷다가 귀신을 봤단다.
뭐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여자가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가더라나...
황당한 놈이다....
대낮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람....
근처 점집 하는 여자가 바람쐬러 나왔겠지...
♥그 남자♥
오랜만에 이 길을 걸으니
예전 후배들과 함께
귀신을 봤던 일이 생각났다.
달빛을 받으며, 한복을 입은 여자가,
미친듯이 길을 내달리는데 얼마나 무섭던지...
남자들끼리 껴안고 엉엉 울었다...ㅜ.ㅜ
근데 그 얘길 해 줬더니
열라 깬다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우씨.....진짜루 무서웠었는데....
궁에서 일하던 여자 일거라고
우리끼리 얘기했었는데...
아무래도 기분이 쳐져서 그런지
잼있게 얘길 못 했나 부다...
정신차리자!
취직은 다시 알아보면 되지 뭐
근데.....취직이 되긴 되려나...?...ㅠ.ㅠ
♥그 여자♥
음....잼 엄써도 좀 무서운 척 이라도 할 걸 그랬나..
금새 풀이 죽은 것 같다.
담부턴 황당한 얘기라도 호응 좀 해 줘야 겠다.
?
놈이 커피 한 잔...? 하더니
금새 "아니, 포켓볼 한 판 어때요?" 하고 물었다.
포켓볼 좋다. 직장 다닐 때 남자들한테 좀 배웠다.
?
이 인간들이 꼭 2차 술내기로 당구를 치러 가는 바람에
매번 점수만 계산 해 주기 싫어서 홧김에 배웠다.
근데 이 늑대들이 꼭 손가락 마디마디를 잡아가며
가르치려 드는 바람에 고생깨나 해 가며 배웠다.
?
암튼 이를 악물고 배운 덕분에
여자들 사이에서는 쫌 치는 편이다.^^;
?
이 놈아...너도 그 걸 이용해 손 한 번 잡아보려는
거면 헛다리 짚었다...꿈깨라... ^^
?
♥그 남자♥
대학로의 분위기 괜찮던 커피숍을 생각했다가
기분전환도 할 겸 눈앞에 보이는 당구장을
가리켰더니 의외로 좋단다.
하긴 요즘 포켓볼 한 번 안 쳐본 여자가 어딨담.
?
그녀와 함께 당구장에 들어서니 구석에 짱박혀
인생 절단난 표정으로 담배를
피워대던 복학생(추정) 녀석들의 눈길이
일제히 날아왔다.
?
모야...씨....하는 놈들의 눈길에서
많은 것들이 느껴졌다.
얘들아.....넘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라.
지금의 내가 미래의 너희들 이란다.
?
삶의 회한이 담긴 듯 당구공을 조져대는
녀석들을 보니 다시 우울해 질라 그런다.
?
옷~~~! 근데 얘는 무슨 당구를 이렇게 잘 친담!!
모 내가 갈켜줄 만 한게 없었다.
?
음....손은 담에 잡아야 겠구나...ㅠㅠ
아쉬움이 진하게 밀려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극장이나 가자 그럴 걸ㅜ.ㅜ
?
이 여자...실력이 나랑 삐까삐까 했다.
갑자기 학교 다닐 때 남들 당구칠 때
술먹었던게 후회가 됐다.
그래두 오히려 경기는 재미 있었다.
?
♥그 여자♥
?
아.....넘 예뻐도 이렇게 피곤하다니까.
무슨 남자 녀석들이 당구는 안치고 나만 쳐다본담.
하여간 이쁜건 어디가도 표가 난다니까... ^^
?
이 남자... 내 실력을 보더니 놀란 모양이었다.
혹시 당구장에서 카운터 봤냐고 물어본다...ㅡ_ㅡ
?
음....아직 성격 드러내면 안 되겠지.
대신 씩 웃으며 맥주내기 한 판 어떻냐고 했다.
좋다고? 넌 오늘 죽음이다.^^
?
3대 1까지 앞섰는데 놈이 내리 두 판을 따라 잡았다.
아~~ 자식이 내기에 목숨 걸고 그러냐...
그리고 운명의 마지막 판.
이 잔인하고 치사하고 쪼잔한 자식!!!
?
숨도 안 돌리고 마지막 8번 공을 넣어버렸다...ㅠ.ㅠ
더럽고 치사한 자식....
매너 없는 시키.
글케 나를 이기고 싶었냐ㅠ.ㅠ
?
우씨~~~ 알았다!
술 산다! 술 사!!
?
♥그 남자♥
검은 민소매 옷을 입고
날렵하게 큐질을 하는 그녀를 보니
혹시 이 여자 언니가 미국에 있는 쟈넷 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쁘고 노래도 잘하던 그녀가 당구까지 잘 치니
정말 매력적으로 보인다.
?
이쁘게 생긴 여자 애가 당구도 잘 치니까
남자들이 자꾸 흘끔흘끔 쳐다본다.
이 자식들이 이쁜건 알아가지고...
이 자식들아.....
니네 공에나 신경써라
자꾸 삑사리 내지말고
?
근데 한게임 치고나서 필이 오는지
술내기로 치잔다.
갑자기 타짜한테 꼬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역시 초반은 그녀가 앞서갔다.
어떻게 쌔복이 따라줘서 동점까진 갔다.
근데 눈 빛을 보니 아무래도 져 줘야 될 것 같았다.
뭐....그 정도 매너는 나도 있다.....ㅡ_ㅡ
?
근데...ㅠ.ㅠ
아쒸~~~ 티 안 내고 안 들어가게 치려고 했는데
그만 실수로 공이, 홀랑 구멍에 빠지고 말았다....ㅠ.ㅠ
?
절라 어이 없다는 표정이다.
이씨... 그럼 어떠카라구!!
그렇다고 일부러 안 맞게 쳤다고 할 수도 없고ㅠ.ㅠ
뭐...승부의 세계가 그런거 아닌가...^^;
넘 그런 눈으로 보지마라 ㅡ_ㅡ
술 내가 사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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