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도-10년도니까 벌써 시간이 꽤 흘렀네요
갓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감사하고 즐거웠던 그 때
낮에 대학원에 공부하던 사정상 지방 대학병원 약제과에서 야간당직 약사로 근무를 해서
생활비를 벌곤 했습니다.
보통 오후 5시, 8시 정도 들어가서 그다음날 아침 8시에 퇴근 하는 스캐쥴로 일주일에 두번 정도씩 일했는데
서울과 달리 사람구하기 힘든 지방의 병원의 상황상 800병상의 큰 병원의 약관련 업무를 직원 한명 데리고 총괄해야하는
상황이라 초보 약사의 입장에선 마냥 쉽지는 않았었죠. 평상시에도 병원 전체에서 오는전화, 외부전화도 끊임없고...
입원환자들 긴급약과 다음날 아침약을 준비하며 응급실 환자들의 퇴원약도 준비해줘야 하는 업무들...
만만하진 않았지만...뭐 그래도 요즘 세상에 졸업하자마자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그러던 어느날 뉴스에 신종플루가 떠들석해지기 시작하고
타미플루란 치료제가 효과가 있다는게 알려지기 시작하고...
사망자가 늘어가는것을 경쟁하듯 기자들이 카운터 세기시작하는 순간
응급실에 사람들이 폭풍처럼 오기 시작했습니다.
기존 병원 업무도 간신히 감당하던 찰나에 인력수급은 전혀 안되고
(병원 회의해서 처리해야한다는데... 긴급 인력 투입 되는데 6개월이나 걸렸습니다 그땐 이미 파장 분위기라 별필요 없었죠)
끊임 없이 몰려 오는 환자들... 서울의 큰 대학병원들이야 야간 전담 인력도 충분하고 조금 힘들다 싶었지만
1년차 약사였던 저한테는 정말 힘들었던 기억입니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기침만해도 1미터 밖으로 도망가던 시절이었는데
병원에서 확진 판정 받고 마스크를 받았음에도 불편하다고 끼지도 않고
약주며 복약지도 하는 제 얼굴에 그대로 기침을 해대던 분들...
수십명의 환자가 밀려있는데도 전화로 자기아들 타미플루 먹고 자살하면 어쩌냐고
30분 동안 붙잡던 어떤 아주머님....(지금 급하게 더 급한 분들 약 줘야한다고 말해도 듣지도 않더이다...)
오후 5시에 시작하면 다음날 새벽 6시 쯔음에야 간신히 화장실에 갈 시간이 나서
어린 마음에 세면대 붙잡고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 생각은 반쯤은 포기했던것 같습니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여기서 내가 도망가면
하루에 몇백명씩 오는 환자들에게 약은 누가 줄거이며...(대체 인력을 구하는게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던지라..)
나름 전문직으로써 사명감도 있었던거 같았습니다.
더 고생하는 의사선생님들과 간호사들이 한명씩 과로로 쓰러져서 실려갔다는 소식들을 들으며
나도 조만간 신플이 옮던.... 과로를 하던 저렇게 되는게 아닐까하고 그래도 할 수 있는데 까진 해야지 하고
체념하고 일을 했던 그 시절....
CPR을 하다가 메르스에 걸린 간호사를 보며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인터넷에선 약사들은 왜 공짜로 약 받아서 돈받고 약주냐고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있었고
(진심으로 제 일당 그대로 줄테니까 일은 안해도 되니
200명 확진자들이 기침하는거 다 얼굴에 한번 맞고 있어보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많이 기다린다고 화내고 욕하는 분들부터....
지금은 병원에서 일을 하고 있진 않지만
방호복을 입고 일하는 분들 모습을 볼때마다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매번 비슷한 사건을 거치지만
특별했던 한 때 (SARS)를 제외하곤 국민들의 반응도 정부의 대응도
병원의 경직된 대응까지도 모두다 발전이 없내요...
소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치면 좋을텐데...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분들은 격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더 나은 급여와 보장된 안정성이 있기도 하고
더 힘든 상황에서 보장되지 않는 위험을 무릅쓰고 일해야 되는 분들도 있다는것도 압니다.
하지만
의료관련 전문직이란건 특정상황에선 가장 먼저 위험에 노출되고
때로는 생명을 걸고 일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소방관분들 께서 불 앞에 주저하지 않으시듯
대부분의 의료관련 인력들 역시 그 상황에서 도망가지 않고 회피하지 않고
상대의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테니까요
물론 권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지어야하는 의무마져 가볍게 여기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회사 기숙사에서 기거하던 때 생각나네요...
그냥 독감정도 느낌... 죽을것같다 라는 생각은 안들던데...
한번 그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메르스가 와닿질 않으니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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