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를 소개하는 영어권 유투브 Simple History (구독자 293만)에 올라온
베트남전 동맹국의 눈에 비친 60년대 한국군의 모습.
(최근 한국어 자막이 달렸습니다.)
그림에는 M-16으로 싸운것으로 표사 되어 있는데,
맹호의 둑코 전투 와 청룡의 짜빈동 전투는 M-1개런드,BAR,카빈,M1919 등 6.25때 무장 그대로로 일궈낸
전투 이고, 이 전투 인해 주월한국군의 중대전술기지의 유효함 과 생존성을 증명 합니다.
주월 한국군의 특징 중 하나가 야간매복을 꽤나 적극적으로 선호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낮에는 월남, 밤에는 월맹 이라는 공식이 깨져 버리고, 밤에 안심했던 베트콩들의 이동 및 행동에
제약이 걸려 버린다는 점 이였습니다.
월남전 참전 당시 공산권군대의 게릴라전에 가장 경험임 많고, 대응책이 잘 마련되어 있던 군대가 바로
한국군 하고 그리스군 이였습니다.
한국군 6.25를 거치면서 남한내에 잔류한 패전병으로 이루어진 공비들 과 자생 게릴자들....
몇년에 걸친 처절한 토벌에 이골이 난 군대 였고, 대응책 역시 매우 잘 되어있었다는거죠.
중대전술기지 개념 과 전략촌 자체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물과 물고기를 분리 한다는 개념에서 나옵니다.
야간매복 역시 낮에는 우세한 정규화력으로 인해, 게릴라들은 낮에는 최대한 토벌군을 피하고, 주로 밤에 이동
작전을 하기 때문에 전략촌으로 접근하는 게릴라들을 차단,섬멸을 위해서 라도 야간매복은 필수 였습니다.
여기에 한국군은 우회전략을 선호하는 군대 이기도 하였습니다.
미군의 경우는 우회보다는 적극적은 포병 및 항공 화력을 이용 하고, 베트콩 역시 이를 잘 알기때문에 일제
타격후 후퇴 하거나 그 화력우세를 덮을수 있는 미군 과의 근접전투를 선호하게 됩니다.
근데 베트콩이 선호하는 근접전투는 한국군이 가장 바라던 전투 양식였다는 거였죠.
매복을 통한 일제타격 및 적극적 우회전략을 통한 퇴로 차단....그리고 적극적인 야간전투.
월맹군,베트콩 과 한국군의 전투력 차이가 여기서 나오게 됩니다.
아버지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글코 아부지 벌어온 돈 아무도 안 썼다고 하는 친가 색히들 이런글 잘 보고 지금이라도 영천국립묘지 가서 사죄해라 개쉐이들... 아 그럼 저도 개가 되는군요 ㅎㅎ
100% 깨끗한 정치인이 존재하긴 힘들지만... 우리는 그중 최선을 뽑으려는거....
정치는 더러우니까 관심끊고 피하자는건 아니시죠?
야당에서 조차 6.25때 일본이 살아났으니 우리도 적극파병하자고 했었음
박정희가 차지철을 시켜서 반대파를 결성시키고 미국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원조원었음
일본은 산업화에 성공해서 청년들 목숨값만 받은 우리보다 더큰 이득을 본건 어쩔수 없는일임
정치인들이 청년들 목숨값으로 비자금 마련하는건 어느 시절이나 마찬가지고
자기가 믿는 정치 집단이 선이라는 착각은 버리는게 현명함
6sar님 글이나 댓글 잘보고 있습니다
6SAR님 잘봤습니다
올해가 먼길 떠나신지...10주기..이신데..늘 보고 싶지만...
이글을 읽는 동안...이라도 더욱더 그립네요..
아버지~
몰랐습니다...
훌륭한 한국군 백마용사 였던 사실..을
존경 합니다...
아버지 생각 하며 더욱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보고싶습니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얼마나 참혹했는지 짐작이 가더라구요.
땅굴에 수류탄까고 들어가는 심정이란...옆동료들이 죽어나가는 현장...ㅠ
당시 중대장 정경진대위는 중령으로 젼역하셨고, 소대장 신원배 소위는
훗날 제가 군생활하던 90년대 해병제2사단장님이셨습니다.
전방순찰도 자주 나오셨고,팔뚝두께며 몸도 한덩치 하셨었는데,
얼마전 기사를보니 많이 연로해보이시더군요..
90년대만해도 월남전에서 실전경험을 하신 장교,부사관들이 많아서
훈련은 늘 실전처럼....
반갑습니다.훈단,실무에서도 짜빈동전투에 대해선 교육을 많이 받았습니다,
적이 진지내부로 진입하였을때 여단포병에 지원시 좌표는 진지내부였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얼마나 처참했을지 상상이 안갑니다...진지사수를 위해 피아 구분이 없이 다 죽을수 있는건데...
아버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당시 아버님께서 중대장으로 전투에 참여하신거면 정경진대위와 비슷하실듯합니다.
월남전 이후에도 군생활을 계속 이어나가셨나요? 혹 저희가 아는분인가 궁금합니다.
혹시 해병북파공작대(MIU)출신 ,김영빈 소령님하고 비슷한 연배이신가요?
이분이 udt18기로 수료하셨고,
중앙정보부 ,해첩udu공작관으로 이력이 있으십니다.
150여명 입교하면 20~30명정도만 남아서 진짜 강한자만이 수료할수있었던
시절이었죠..100명입교하여 7명이 수료한적도 있다고 합니다.
2사단 수색대 출신이신가요? 예전 90년대엔 수색중대였었죠..
까치부대가 있었던 마니산 정수사 계곡에가면 건물터등이 남아있었는데 요즘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김포수색대의 전신이 MIU가 맞는거죠?
당시 까치부대 해체후 일부는 김포수색대로 또 일부는 UDU로 통합되어 간걸로 알고있습니다만...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나드셨을 흑백사진속의 아버님을(선배님을) 잠시 떠올려봅니다..
우현히 댓글로 짧게 대화를 나눴습니다만 마치 아버님을 옆에서 뵌것같은 기분입니다.
아버님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필씅!
아무쪼록 머니먼 정금님도 항상 건승 하시고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십요! 필~~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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