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만 공습은 1941년 12월 7일이고 가미카제 특공대
첫 출격은 1944년 10월 21일입니다.
국방일보 기사 제목은 가미카제 소속 기체가 첫 전과 올린
10월 25일과 혼동한 걸로 보이구요.
가미카제 특공대 결성한 이유가 미드웨이 해전서 1년간
육성한 수 만큼의 조종사를 하루 만에 잃어서 베테랑
조종사가 부족 했기 때문이었으니 진주만 공습 때
출격 했단 건 더더욱 말도 안 되는 억지인 거죠.
1944년 10월25일 일본 가미카제 첫 출격
2017.10.22
진주만 공습 이후 일본이 우위를 점했던 제공권은 1944년 10월 무렵
미국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일본의 베테랑 조종사들은 대부분 전사한 데다 한때 공중전의 제왕이었던
제로식 전투기에 대항할 수 있는 전투기를 미국이 생산 하기 시작 했기 때문이다.
1942년 6월 4일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은 그들이 1년 동안 훈련시켜
배출한 조종사 수와 맞먹을 정도의 조종사를 하루 만에 잃기도 했다고 한다.
미 해군이 일본 본토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일본은
극단적인 공격법을 도입했다.
1944년 10월 19일 오니시 다키지로 해군중장은 필리핀 레이테 만에서
작전을 지원 하던 미국 항공모함을 공격 하기 위해 가미카제 특공대를
결성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다마이 아사이치 중령은 훈련생들 중에서 지원자를 받아 첫 번째 특공대를
구성 했고 세키 유키오 소령이 지휘를 맡았다.
첫 번째 특공대는 1944년 10월 21일 레이테 만에 있던 오스트레일리아함을
공격해 90여 명의 전사상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공격은 정확히
말해 특공대 소속 전투기가 아닌 일본 육군 항공대 소속 미쓰비시 전투기가
한 것이었다.
1944년 10월 25일, 가미카제 특공대는 출격에 나서 호위용 항공모함 5척을
공격, 1척을 침몰시켰다. 연이어 7척의 항공모함과 함대를 이루고 있던 다른
선박 40척을 공격해 그 중 5척을 침몰시켰고 35척에 피해를 입혔다.
http://kookbang.dema.mil.kr/newsWeb/20171023/2/BBSMSTR_000000010232/view.do
-오니시 다키지로-
내눈이 이상한건가..
기사 내용에도 그런 말은 없는데다, 틀렸다고 지적하신 날짜부분도 기사 본문을 보면 21일 전과는 가미카제 특공대(해군항공대)가 아닌 육군 항공대의 전과였다고 적혀있어요.
기사 내용상으로도 해군항공대 가미카제 첫 출격은 21일이고 전과를 올린 건 말씀 하신 대로 육군 항공대란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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