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패퇴를 만들어낸 10군단장 알몬드와 헷갈리신듯 ㅠㅠ
해병 1사단장은 올리버 스미스.
중공군이 병단급이라고는 하나 부대 편제가 유엔군보다 적어서. (그래도 유엔군보다 전체 숫자는 많음)
당시 해병은 증편되어있어 병력의 차이는 실제로 크지 않다는 말이 있더라구요.
(대신에 교환비는 어마어마)
미육군 7사단은 괴멸수준이었고.
황초령 전투이후로는 철수중인 해병대를 따라오던 피난민은 고립.
그리고 피난민 10만을 철수 시킨것도 좋은 결과지만. 10여만명정도의 피난민을 더 태우지 못해 북에 잔류 했다고....(이 역시 알몬드의 신속한 판단 부재)
아쉬운건. 해공군력은 유앤군이 중공군을 압도 했던만큼. 흥남을 철수하지 말고 추후 북진을 위한 교두보로 남겨두었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지도가 달라져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얼마나 혹독한 추위였는지, 미군에는 동계전투 라는 새로운 장르를 연구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또한 장진호 전투의 주역인 미해병 1사단장인 스미스 소장의 신중함 과 해병이라는 자부심 과 투혼이 없었으면,
미군에 군단급 병력이 전사 남을 포위공격으로 인해 패배로 이어질뻔한 전투 였습니다.
미 해병1사단이 장진호에서 중공군 병단급 세력 과 맞붙어 붕괴되지 않고 끈질지게 전투를 벌이는 바람에,
미 10군단 과 한국군 1군단이 포위망을 빠져나와 함흥으로 무사히 빠져 나와 철수 할수 있게 해줍니다.
열악한 조건에서 투혼을 잃지 않고 끝까지 싸운 미해병 1사단 덕분에, 전사에 길이길이 남을 가장 훌륭한 철수작전 중 하나로 불리는 함흥 철수 작전을 펼쳐서, 미 10군단 의 대부분 장비 와 보급품 ,병력 그리고 민간인 10만명을 철수 키게 합니다.
단순히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며 전투를 벌인 단순한 전사가 아니라는 겁니다.
얼마나 혹독한 추위였는지, 미군에는 동계전투 라는 새로운 장르를 연구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또한 장진호 전투의 주역인 미해병 1사단장인 스미스 소장의 신중함 과 해병이라는 자부심 과 투혼이 없었으면,
미군에 군단급 병력이 전사 남을 포위공격으로 인해 패배로 이어질뻔한 전투 였습니다.
미 해병1사단이 장진호에서 중공군 병단급 세력 과 맞붙어 붕괴되지 않고 끈질지게 전투를 벌이는 바람에,
미 10군단 과 한국군 1군단이 포위망을 빠져나와 함흥으로 무사히 빠져 나와 철수 할수 있게 해줍니다.
열악한 조건에서 투혼을 잃지 않고 끝까지 싸운 미해병 1사단 덕분에, 전사에 길이길이 남을 가장 훌륭한 철수작전 중 하나로 불리는 함흥 철수 작전을 펼쳐서, 미 10군단 의 대부분 장비 와 보급품 ,병력 그리고 민간인 10만명을 철수 키게 합니다.
단순히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며 전투를 벌인 단순한 전사가 아니라는 겁니다.
해병 1사단장은 올리버 스미스.
중공군이 병단급이라고는 하나 부대 편제가 유엔군보다 적어서. (그래도 유엔군보다 전체 숫자는 많음)
당시 해병은 증편되어있어 병력의 차이는 실제로 크지 않다는 말이 있더라구요.
(대신에 교환비는 어마어마)
미육군 7사단은 괴멸수준이었고.
황초령 전투이후로는 철수중인 해병대를 따라오던 피난민은 고립.
그리고 피난민 10만을 철수 시킨것도 좋은 결과지만. 10여만명정도의 피난민을 더 태우지 못해 북에 잔류 했다고....(이 역시 알몬드의 신속한 판단 부재)
아쉬운건. 해공군력은 유앤군이 중공군을 압도 했던만큼. 흥남을 철수하지 말고 추후 북진을 위한 교두보로 남겨두었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지도가 달라져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평소 남겨주시는 글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덕분에 잘못 된 부분을 수정할수 있어서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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