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외 국내 메이커들이 세계최고가 되는 그 날을 기다려봅니다. 단, 현대등이 모터스포츠에 좀더 적극적으로 도전하지 않으면 그 날은 멀어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네요. 모터 스포츠에 투자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좋은 차를 만들어도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데 한계가 있다고 보구요.. 일본차들은 F1, WRC 등 세계적인 대회에서 자기네 이름을 떡하니 달고 좋은 성적을 내고 있잖아요? 심지어 시트로엥조차 WRC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오늘날 좋은 차를 결정짓는 기준은 좋은 옵션의 큰 차보다 운전자와 차가 하나가 되어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쪽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봅니다. 모터 스포츠를 통해 얻는 데이터와 노하우 없이는 불가능하겠죠. 냉정하게 말해서 현대차에 이거다 싶은, 전세계인들에게 각인된 이미지가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있다면 싸다는 것 정도일까요? 차가 후져서 싸게 팔리는게 아니라면, 좋은차 만들어놓고도 싸게 팔아야한다면 브랜드 밸류가 낮다는 얘기겠죠.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현대는 모터스포츠에 과감히 투자해야합니다. 현대차 세계적인 수준 되어가고 있고 벤치마킹에서 이제 슬슬 벗어날 때도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논쟁을 지켜보다 갑자기 생각난 글이 있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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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년 닛산에 입사한 이래 차량 실험만을 담당했던 제가 뉘르부르크링그를 달리게된 계기는 (스카이라인) R32 GT-R 개발 때문이었습니다. 80년대 후반, 닛산 사내에서는 [901 운동]이라 불리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90 년대 중에 조정 안정성에서 세계 제일이 되자]라는 일종의 노력 목표였는데, R32 GT-R 개발을 통해 저도 이 901운동에 관여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엔 R32 GT-R의 4WD 제어 시스템인 ATTESA E-TS의 제어 프로그램용 지도 제작을 하고 있었는데, GT-R 완성이 슬슬 가까워지면서 세계의 유명 차량들과 같은 환경에서 평가를 받아야 한다라는 의견이 사내에서 강하게 제기 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R32 GT-R에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지만, 역시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무대가 아니면 [조종 안정성 세계 제일] 이라는 목표에 다가갈 수 없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그 무대로 지목된 곳이 바로 뉘르부르크링그 였던 것입니다.
뉘르부르크링그를 처음 방문한 것은 R32를 발표하기 1년 전으로, R32 GT-R의 겉 모습을 S13 실비아처럼 위장해서 가져 갔습니다. 그때까지 시찰을 위해 닛산 사원이 뉘르브르크링그를 방문한 적은 있었지만, 본격적인 테스트를 위해 찾아간 것을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포르쉐 944가 8분 30초 정도의 기록을 마크하고 있었고 [우리차는 그보다야 빠르겠지]라는 가벼운 마음이, 솔직히 있었습니다.
헌데, 이 첫 원정에서 저와 우리 차는 완전히 KO당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뉘르부르크링그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벨기에 닛산 사무소에 있던 테스트 드라이버에게 운전을 부탁하고 옆에 동승했는데, 달리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제가 엄청난 곳에 왔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그 때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시작하자마자 코너를 빠져 나와서는,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 내리막길을 시속 180km의 속력으로 질주하니, 처음 경험하는 저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자동차는 자동차 대로 점점 가열되더니 5km도 가지 못해 내부 온도가 120도를 넘어섰습니다. 바로 속력을 줄였지만 이미 터빈이 과열된 상태였습니다.
20분 정도 걸려 겨우 한 바퀴 돌아 들어와서는 바로 R32 GT-R 실험 담당자인 와타나베 씨에게 따졌습니다. "이런 곳을 어떻게 달리라는 겁니까" 하고 말이죠.
처음에는 위장해서 가져온 자동차로 슬슬 달려보고 밥이나 먹으러 갈 예정이었는데, 달려보고는 완전히 잘못된 생각임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기 때문에 벨기에에서 조달한 부품으로 터빈을 교환했는데, 사원수가 10명도 되지 않아 철야 작업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은 9분을 돌파해서 8분 45초라는 최종 랩 타임이 나왔습니다. 물론 드라이버는 현지 사람이었고 저는 코스 외우는데 정신이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어쨌든, 첫 체험은 이렇게 강렬했습니다. 우리가 위태위태하게 달리고 있을 때 포르쉐나 벤츠가 아무렇지도 않게 옆을 쓰윽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그들을 추월하지 못하고서는 901운동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임을 통감한 첫 원정이었습니다.
제가 뉘르부르크링그에서 처음으로 핸들을 쥔 것은 1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91년경, 드라이버 트레이닝 프로그램에서 200바퀴 정도를 달려보면서 슬슬 코스를 기억하게 됐을 때쯤 R33 GT-R 개발이 시작됐습니다. 저의 테스트 드라이버 생활과 뉘르부르크링그 테스트 시기가 운 좋게 딱 맞아 떨어졌던 것이죠.
R33 GT-R은 뉘르부르크링그를 7분대에 주파하겠다는 목표 아래 개발된 차량이었기 때문에 정말 사정없이 달렸습니다. 물론 무섭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재미있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엄청난 코스 구조에 질렸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없는 테스트를 만들어가면서까지 차에서 내리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밤을 새며 그란 투리스모를 즐기는 기분과 같습니다. 차이라고 하면, 게임에서는 사고 후에도 레이스에 복귀가 가능하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차에 문제가 생겨 테스트를 못하면 안됐기 때문에 절대 사고를 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지기도 싫었고 공명심도 있었지만, 타임 어택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이전 기록을 10초 정도 앞당기는 선에서 자중했습니다. 물론 드라이버 중에는 차량을 망가뜨리면서까지 기록을 중시하는 이도 있지만, 우리 업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덕분에 뉘르부르크링그에서는 지금까지 무사고로 통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그 이후에 이어진 테스트에서는 시속 180km로 블라인드 코너를 질주한다든가, 시속 230km 상태에서 서스펜선에 충격을 주는, 뉘르부르크링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상황을 철저하게 분석했습니다. 이것은 개발자 입장에서도 극히 드문 경험이었으며 이 문제들을 하나하나 뛰어 넘으면서 GT-R은 비로소 성숙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GT-R이 뉘르부르크링그에서 얻은 큰 수확 중 하나로, 차체 강성 향상을 들 수 있습니다. R32보다 한계치를 더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타이어의 강성을 받아낼 정도의 강인한 차체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BMW나 벤츠의 차체가 우수한 것이 이 때문이라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뉘르부르크링그를 달리면서 처음으로 실전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마 이때부터였을 겁니다. 뉘르부르크링그를 홈 그라운드로 삼으며 달리는 BMW나 포르쉐 사람들로부터 "닛산도 꽤 하는데..."라는 평가를 받은 것이 말입니다. R34의 테스트 시기가, 마침 BMW의 구형 M5 개발이 한창이던 때였는데, 서로 성능을 겨룰 만큼의 좋은 관계를 그때 쌓게 됐습니다.
뉘르부르크링그는 포르쉐와 BMW가 서로 불꽃을 튀기고, 카레라 GT와 멕라렌 SLR이 서로를 추월하는, 그런 곳입니다. 공존하기 위해 경쟁하는 곳이죠. 닛산이 그런 곳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은 GT-R이 뉘르부르크링그에서 거둔 큰 결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교류가 R34 GT-R의 최종 버전, [스카이라인 GT-R V-spec II Nur (R34)]을 탄생시킨 이유 중 하나입니다.
R32 GT-R이 처음 뉘르부르크링그를 달리던 시절에는 폭스바겐 골프조차 길을 비켜주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실력을 끊임없이 어필하고 또 어필해서 닛산 GT-R이 빠르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닛산]이라는 브랜드를 그들에게 인지시키는 데만 무려 5년이 걸렸습니다.
단순히 달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며 격돌하는 자동차 메이커 사이의 공동체가 뉘르부르크링그에는 존재합니다. 그 일원으로 인정받을 만큼의 역사를 쌓아왔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크나큰 자랑입니다.
필자 소개 : 카토 히로요시
1957년 일본 출생, 76년 닛산 자동차에 입사한 이래, 차량 운동 성능을 평가하는 실험부에서 스카이라인, 페어레이디Z등의 차량을 담당해왔다. 현재는 700명에 이르는 닛산 테스트 드라이버의 최고 지위에 서있다. 그 정확한 평가 능력은 [신의 손을 가진 남자]라고 불릴 정도로 저명하다. 뉘르부르크링그의 깊이를 가장 잘 아는 일본인이다. 2003년, 일본 후생성이 탁월한 능력을 인정하는 [현대의 명장]을 수여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