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여름 이었습니다.
경남 교육의도시인 **시 옥봉동과 봉래동 사이 산자락에 있는 **국민학교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저는 키가 크다는 이유로 교기인 축구부에 차출되어 운동을 하다가, 운동후 집에서 코피를 흘리는등 체력이 안될거 같아, 그 당시 축구부감독(교사 겸임)에게 축구를 하기 어렵겠다고 사유를 설명하고 유니폼(백넘버 25번)을 반납했습니다.
그때 부터 그 축구부 감독이 저를 대하는 태도가 급변했습니다.
그 사람은 5학년2반 저의 잠임이기도 했습니다.
그사람은 오직 운동만 할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수업이라고는 국어시간은 글씨를 잘쓰는 친구를 시켜서 칠판 가득 반대말, 비슷한같은거를 적어 놓고 외우라고 하고 수업끝.
산수, 사회, 자연 실과등등 수업은 그냥 우리끼리 책읽는 시간 이었습니다.
체육시간이라고 특별할 거는 없습니다.
그냥 공 몇개 던져주고 놀다가 종치면 들어가라하고 끝입니다.
그러던 1979년 여름에 평소 저를 벼르고 있던 그 사람은 체육시간이후 축구공을 정리해놓지 않았다고, 반장인 저와 부반장, 체육부장, 주번들을 체육 창고안으로 들어오게 하였습니다.
체육창고는 어둡고 먼지 투성이에 메트레스만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그 체육창고는 계단 옆 핸드볼 골대 옆에 있는 노란색 페인트로 칠해진 창고입니다. 기억이 선합니다.
갑자기 그 선생은 반장이 잘못했다고 하면서, 체육부장에게 회초리 꺼리를 만들어 오라고 하고, 잠시후 뒷산에 갔다온 체육부장(C.D.S) 한손 가득 나무가지를 꺽어 왔습니다. 그냥 봐도 30개는 되어 보였습니다. 그중에는 대나무 뿌리도 있었습니다.
미친 체육부장새끼......
그리고 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다 나가라고 하고, 창고 문잠 닫겼고, 거기에서 20대 후반의 건장한 운동을 잘하는 체육교사가 12살의 키는 크지만 삐쩍마른 초등학생을 나무가지가 다 부러질때 까지 때리는 교사폭력이 일어났습니다.
중간 중간에 손과 발로 때리기도 했습니다.
그때 살려 달라고 그 새끼 다리를 잡고 울면서 매달려 보기도 했습니다.
그 새끼는 더욱 흥분하여 때렸습니다. 웃기는건 주먹으로는 때리지 않았습니다.
한시간정도 맞았던거 같습니다. 축구부 훈련한다고 그만 때리고 나갔습니다.
저를 힘들게 했던 축구부가 아이러니하게도 저를 살렸습니다.
거의 눈물 범벅이 되어 창고 밖으로 나와 보니 부반장, 주번, 체육부장이 울면서 서있었습니다.
친그들은 내가 죽은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 스마트폰이 있었으면 정말 멋진 기사거리아닙니까....
중략하고....
국민학교 동창회 주관기때 그 무능 폭력 교사(?)를 만났습니다.
순간 겁이 났습니다.
희한하게도 진주의 모 중학교 교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퇴직을 하였을거 같습니다.
그 사람은 K.Y.H 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입니다.
학교폭력의 시작은 교사폭력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학생에 의한 폭력만 관심을 가지지 말고 교사에 의한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교사 폭력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교사 폭력뿐만 아니라 교사에 의한 성추행도 관심을 가져 합니다.
여학생의 목덜미, 허리를 스~~~윽 만지는 행위, 뒤어에 껴안으면서 국민학교 여학생의 젖가슴을 더듬는 변태 교사등등....
그 당시 저희 학교에도 K.J.O이라는 서예담당 교사(1978년도 4의5반 담임)가 그런 짓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4학년때는 친구중에서 키크고 예쁘고 성숙했던 O.J.Y이 많이 당했습니다.
학교폭력과 성추행은 교사로 부터 발생했합니다.
그 해결책은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현재의 부모님들이 잘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부모님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 반성과 폭로가 필요합니다.
40년도 훨씬 지난 일을 적어보면 속이 시원할줄 알았는데, 그렇지 만은 않군요.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때의 일을 제 기억속에서 지워보려합니다.
점심먹을 때가 .....
제가 쏘께요....
그럼 답 나오는디
옛날선생들은 거의다 조폭이였어
사랑의매? 까지말고 애들을 초죽음으로 팼지
지금은 다 쳐 늙어갖고 처벌은 못하겠지만 니네들이 싸놓은 똥들이
지금도 개판치고 있는 중이다 이거지
모든 학폭의 기원은 선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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