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야~
아빠, 좋아?”
“응, 아빠 좋아~”
성우가 늦둥이를 데리고 아버지의 추억이 깃든 보리밭을 찾았다.
“민재야, 여기 기억나니?
민재는 엄마 뱃속에서 시작해서 여덟번째 왔으니, 이제 기억나지?”
“응, 아빠, 작년에도 왔었어요!”
“그래, 여기는 민재 할아버지, 할머니가 처음으로 찾았던 곳이란다.
그리고 엄마를 만나서 처음으로 온 곳이 여기야.
민재가 생기고 처음 온 곳도 여기란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요즘도 웃고 있어요?”
“그럼~
언제나 웃고 계시지.
민재야~
꼭 기억하렴!
언젠가 아빠도 민재를 지키려고 별이 될거야.
하늘에서 가장크게 웃고있는 별이 아빠란다.”
“그럼, 아빠별도 할아버지, 할머니 별처럼 같이 민재 지켜주는 거에요?”
그럼~
별이 되더라도, 아빠와 엄마와 민재는 하나란다.
아빠는 늘 민재 가슴속에 있을거야.
민재가 어디에 있건, 가장 커다란 웃음으로 민재를 지켜줄거야.
사랑해요~”
성우가 열살쯤, 아빠손을 잡고서 보리밭을 찾았다.
말도 타보고, 송아지를 만져보고, 맛난 간식들로 뱃속에 빈자리가 없도록 먹으며 다리가 아프도록 걸었다.
귀찮을 정도로 사진을 많이 찍었다.
“성우야~
이쁘게 웃어보렴~
그 자리가 엄마가 사진을 찍었던 자리란다.
엄마처럼 환하게 웃어보렴~”
아빠는 늘, 똑같다.
모든시간, 장소, 물건에도 엄마를 숨겨둔 모양이다.
한번도 본적이 없는 엄마지만, 또한 너무나 익숙한 사람이다.
밤하늘을 보며, 엄마를 찾곤 했다.
가장 크게 웃고있는 별을 찾으면 되는데, 천사들이 너무 많아서 가끔은 찾기가 힘들때도 있다.
“나도 엄마가 보고싶은데....
엄마는 어떤사람 이에요?”
“엄마는....
사실은 천사였지.....
성우라는 착한 천사를 선물하고 간 천사였어요.”
성우를 임신하고 나서야 암 이라는 병을 발견했다.
엄마의 결정은 간단하고 단호했다.
성우를 낳고, 치료는 그 후에 하기로 결정했다.
천사의 장난인지, 엄마는 성우를 낳고 정신을 잃어버렸다.
목숨보다 소중한 아이의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런 엄마를, 아빠는 단 한순간도 혼자두지 않는다.
저녁쯤, 숙소에 도착하고 아빠는 숯불피워 고기를 굽는다.
고기와 몇가지 반찬으로 밥상이 차려지고, 아빠의 소주병도 놓여있다.
아빠와 마주한 자리의 안쪽에 작은 미니어쳐 크기의 액자가 두사람을 보고있다.
이제는 일상인듯, 자연스럽다.
아빠는 언제든 엄마와 함께한다.
“여보, 우리성우, 많이컷지?
반찬 투정도 안하고, 얼마나 착한지 몰라.
당신도 오늘은 기분좋게 나하고 술한잔 해요~”
“엄마! 고기 잘 익었어요~
이거 드세요~”
잘 익은 고기를 엄마의 접시에 올리는 일도 자연스럽다.
“성우야~
잘 들어야 한다!
이제, 아빠도 엄마한테 가야해요.
성우는 아빠랑 오래 지냈지만, 엄마는 혼자 있으니, 얼마나 외롭겠니?
그치?”
“응, 엄마는 혼자니까 그럴거에요.”
“그래, 성우는 남자니까, 참을수 있지?
이제 아빠는 성우를 믿고 엄마한테 가야겠어.
그래도 아빠는 항상 성우를 지켜볼거야.
하늘에서 가장 크게 웃고있는 별이 아빠야!
알겠니?”
열살, 보통의 친구들보다 철이 늦은건지, 성우는 아빠의 말을 알아내지 못했다.
“성우야~
아빠와 엄마랑 성우는, 사실은 하나란다.
곁에 없어도, 늘 우리는 하나란다.
성우 가슴속에 엄마와 아빠는 항상 함께 있단다.
알겠니?”
“응, 알았어요.”
몇달후, 아빠와의 마지막 순간에 천원짜리 지폐를 손에 쥐어주시고, 아빠는 더이상 말을할 수 없었다.
철이 없어서 일까?
성우는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다.
손에쥔 천원으로 무얼 할는지 고민할 뿐, 그날 하루는 성우의 머리속에 아빠가 없었다.
아빠가 가장큰 별이 된 후에는 할아버지랑 할머니와 생활을 했다.
이상하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빠와 성격이 똑같다.
아마도 집안 내력인듯, 차분하고 조용함이 전통인 모양다.
“성우야~
오동나무 꽃이 이쁘게 폈네?
네 아빠가 저꽃을 참 좋아했지.”
“할아버지~
아빠가 꽃을 좋아했어요?”
“응, 산에 들에, 이쁜꽃이 보이면 정신을 못차렸지.
그래서 내가 온 집안을 꽃밭으로 만들었지.
우리집은 사철내내 꽃이 핀단다.”
그래서인지, 아빠는 꽃을보면 엄마를 보는듯 대화를 하곤 했었다.
할아버지와 정이 깊어갈 쯤, 성우가 들어온 이년쯤 후, 어느날이다.
간밤에 잘 주무셨던 할아버지가 일어나지 않는다.
성우에게 별이 하나더 생겨났다.
열두살의 성우는 아직도 이별에 무감각하다.
분명, 슬퍼야 할 상황인걸 잘 알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정신을 잃을만큼 슬피 우시는 할머님을 보고서 안스러운 마음이 들 뿐이다.
“할머니, 그만.....
이제 울지 마세요.
할머니가 그러니까, 저두 울거같아요.
할아버지는 엄마랑 아빠가 잘 돌봐 주실거에요.”
“그래, 성우야....
너는 부모를 다 잃고서도 사는데, 내가 이러면 안되지.....”
할아버지도 그랬지만, 할머니도 아빠랑 똑같다.
생각이며 행동까지, 늘 자신보다 함께하는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이다.
서른이 넘어서 돌이켜보니, 엄마도 아빠도 아닌, 할머니와 가장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제, 할머니는 가끔 가는귀가 어두워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아유~
성우야, 저기가 어디니?
저 꽃이 뭐길래 저렇게나 이뻐?”
“할머니, 저기 거제도 같아요.
수선화가 이뻐보여요?”
“저게 수선화니?
아유, 너무 이쁘다~”
“하하하....
할머니, 방송으로 보니까 이쁘게 보이는데....
전에 가봤더니 별거 없었어요.”
“그래?
그래도 한번 가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올해는 아마 수선화 시기가 끝났을 거에요.
내년에 꼭 같이가요.”
“그래?
그러면 내년에는 꼭 가보자.”
“네, 할머니~
내일 갈치구이 좀 해주세요.
이상하게 갈치구이가 먹고싶어요.”
“그래, 넌 입맛도 아빠랑 똑 같구나?
내일 저녁에 해줄께~”
일하는 중에 경찰이라며 전화가 온다.
“김 성우씨,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할머님께서 돌아 가셨습니다.
신원확인이 필요해서, 영안실에 좀 와 주시겠습니까?”
어시장에서 물기에 미끌어져 뇌진탕으로 병원 이송전에 돌아가셔서 손쓰지도 못했단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목이아파 피를 토하도록 통곡을 멈추지 못한다.
갈치따위가 먹고싶다고 말을해서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유라 생각하니 참을수가 없다.
스스로가 미워지고 자신에게 화가나서 도무지 슬픔을 감당 할 수가 없다.
폐인처럼 많은 날들을 흘려보내고, 생각 나는게 있다.
아빠의 보리밭을 찾았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대신에 그 누구에게도 여분을 허락하지 않는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와 엄마에게 해보지 못했던 말들이 아쉽고, 따스하게 한번 안아보지 못한게 못내 간절함으로 남았다.
숙소에서 고기를 구워본다.
아빠의 미니어처 액자가 네개로 늘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우리, 앞으로는 자주 여행도 다녀요.
사랑해요.
많이....
사랑해요.”
꽃구경 가야해요~
불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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