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대 그랜저를 탔다. 부산 김해공항에서 가거대교를 건너 거제도를 다녀오는 100㎞의 다소 짧은 구간이었다.
현대차가 마련한 시승차는 270마력과 31.6㎏.m의 3,000㏄급 직분사 엔진을 탑재한 최고급 차종이다.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ASCC) 등을 적용한 시승차의 가격은 4,271만 원이다. 만만치 않다.
시승 전 디자인을 두고 참석자들의 견해들이 잇따랐다. YF쏘나타를 부풀렸다는 평가도 있고, 재규어 XF의
뒷모습과 닮았다는 말도 나왔다. 다만 4세대와 달리 역동적으로 변모했다는 점은 모두가 공감하는 대목이었다.
먼저 조수석에 앉았다. 좌석에 몸을 기대니 편안함이 느껴진다. 나파가죽시트의 재질이 고급스럽게 느껴지고,
엉덩이와 허리가 밀착된다는 점에서 인체공학을 꽤나 고려한 흔적이 엿보인다. 조수석 시트도 전동식 조절이
가능한데, 버튼은 시트 모양으로 도어 패널에 마련됐다. 등받이 각도와 앞뒤는 버튼이 작동하지만 헤드레스트
모양 버튼은 장식용이다.
조수석에선 그냥 편히 앉아 승차감을 느끼는 데 주력했다. 운전자가 편한 운전을 한 덕분에 크게 불만은 없었다.
다만 속도를 시속 100㎞ 이상 올리면 풍절음이 약간 거슬리는데, 시승 당일 바람이 많이 불었던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반환점에 도착한 뒤 내외관을 꼼꼼히 살폈다. 보닛 가운데 두 줄로 펼쳐진 캐릭터 라인이 역동성을 표현하고,
최대한 품격을 잃지 않으려는 측면은 유려함이 강조됐다. 아웃사이드 미러를 감싸는 외형에도 역동성이 묻어났다.
리피터 내장형이다. 뒷좌석에 들어가 보니 머플러가 지나가는 센터패널의 높이가 낮아진 점이 눈에 띄었다. 가운데
높이 솟은 센터패널의 불편함을 없앤 점은 칭찬해 주고 싶다. 앞바퀴굴림만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이번에는 운전석에 앉았다. 속도계와 엔진회전계 사이에 있는 트립창은 컬러로 표시된다. 수온계와 연료계는
각각 엔진회전계와 속도계 중앙에 원으로 자리 잡았는데, 덕분에 엔진회전계와 속도계의 지침 길이가 짧아졌다.
개인적이지만 그다지 호감을 가질 만한 디자인은 아니다.
가장 먼저 ASCC를 작동시켰다. 스티어링 휠에 마련된 '온(ON)' 스위치를 누르고 시속 100㎞에 맞춘 뒤 앞차와
간격을 4단계에 맞췄다. 앞차와 약 100m 간격을 두고 속도는 자동으로 조절됐다. 각 단계별 거리는 속도에 따라
조절되는데, 통상 4단계는 앞차와 접촉하는 데 2초 이상이 걸리도록 설계됐다는 설명을 들었다. 중간에 다른
차가 끼어들면 스스로 속도를 줄여 다시 거리를 유지했다. 앞차가 서면 그랜저도 섰다. 이후 다시 출발하면 역시
거리를 유지하면서 가속된다. 매우 똑똑한 크루즈 기능이 아닐 수 없다. 고속도로 등에서 매우 편리한 기능이고,
수입차에도 많이 적용돼 있지만 역시 오래도록 놔두면 졸리는 게 문제다. 이를 두고 현대차 관계자는 "ASCC는
편의장치이지 안전장치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00% 공감하는 부분이다.
ASCC를 해제한 뒤 가속페달을 밟았다. 일반적인 운전 모드로 서서히 밟으면 무리 없이 가속된다. 이 같은 방식으로
가속을 하면 엔진 소음이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하지만 역시 시속 100㎞를 넘어 120㎞에 도달하면서 풍절음이
조금씩 들려온다. 소리는 듣는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천차만별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거슬린다.
이번에는 킥다운을 시도했다. 엔진회전수가 급격히 오르며 차가 앞으로 치고 나간다. 한 박자 반응이 느린 것
같지만 그랜저의 성격이 고성능 중대형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는 없다. 다만 직분사 엔진으로 연소율을 높여
폭발력을 증대시킨 것은 좋은데 그에 따른 흡차음 대책이 조금 모자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엔진 소음이
은근히 크게 들린다. 이 부분은 공회전 때 진동하고도 연관돼 있다. 시동을 걸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진동이
엉덩이에 느껴진다. 그런데 진동이 심하다는 게 아니라 불규칙적으로 미세하게 일어난다. 중형차쯤이야 그렇다
해도 그랜저를 프리미엄으로 육성하려는 제조사의 의지를 감안하면 직분사 엔진 적용에 따른 진동 소음은 앞으로
개선이 필요한 대목이다.
6단 변속기는 효율에 중점을 맞춰 설계됐다. 실제 현대차 관계자는 "중대형차라도 효율이 중요해 변속 기어비의
초점을 효율에 뒀다"고 설명해 줬다. 6속의 범위가 넓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랜저로 짧은 구간 폭발적인 가속력을
내도록 하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물론 변속충격은 거의 없다. 중립(N)에서 주행(D)으로 레버를 바꿀 때 움찔하지
않는다. 또한 조작 감성도 많이 개선돼 노브가 한 손에 잘 잡히고, 시프트 레버의 절도감도 좋은 편이다.
승차감은 4세대보다 분명 단단해졌다. 그러나 40~50대를 겨냥한 탓에 부드러움은 유지했다. 그래서 핸들링도
송곳 같은 맛은 없다. 이를 두고 제품개발을 담당했던 황정렬 이사는 "승차감과 핸들링을 조화시키는 게 참으로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또한 GDI 엔진이어서 소음 튜닝을 하는 데도 많은 애로가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나치게
GDI의 성능을 강조한 핸들링을 유지하면 주 수요층이 싫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여기에 진동 세기에
따라 자동으로 반응하는 댐퍼의 적용은 승차감을 위한 선택이다.
단점도 있다. 운전할 때 센터콘솔의 암레스트 역할이 조금 부족하다. 암레스트 공간이 앞으로 충분히 나와야 하지만
컵홀더 공간을 마련하다보니 짧아졌다. 그래서 오른팔 전체가 놓이지 못해 편안함이 덜하다. 이 부분은 현대차
관계자도 인정한 대목이다.
이외 각종 편의기능은 그야말로 '풀옵션'이어서 엄청나다. 파노라마 선루프와 제동·조향 기능을 통합제어하는 VSM,
타이어공기압경보장치, 급제동 경보 시스템 같은 안전품목도 갖췄다. 에어백 아홉 개는 기본이며, 뒤에서 차가
추돌할 때 목 부상을 최소화 하는 저탄성 헤드레스트도 있다. 여기에 운전석 시트에 마사지 기능을 제공하는 액티브
기능도 넣었다. 작동해보면 부드럽게 자극돼 느낌이 좋다. 골프 가방 네 개가 충분히 들어가는 트렁크 용량은
중대형차의 기본이다. 주차조향 보조시스템도 있어 확실히 수입차를 적극 겨냥했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5G 그랜저는 4G보다 한 걸음 더 나갔다. 그러나 시승차처럼 풀옵션을 선택할 사람은 많지 않다.
현대차가 자랑하는 ASCC를 구입하려면 최소 3,670만 원짜리 HG300 노블을 구입한 뒤 160만 원을 추가 지불해야
한다. 30만 원이 드는 주차조향 보조시스템과 230만 원의 내비게이션과 전후방 주차 가이드 시스템도 선택품목이다.
현대차는 이번 만큼은 가격을 거의 올리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TG 대비 기본에 포함된 편의품목이 적지 않고, 새로운
엔진이 탑재됐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오는 6월이면 19인치 휠이 적용된다. 역동성을 추구하는 사람을 위한 배려다. 나아가 3,300㏄급 직분사
엔진을 탑재한 최고급 차종도 등장할 예정이다. 현대차로선 그랜저를 경쟁 준대형과 확실하게 차별화 시키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시승을 마치고 기자회견장에서 현대차 관계자가 이런 말을 했다.
"지난해 내수 시장에서 고전을 했다. 왜 현대차에 대한 비판여론이 많은가도 생각했다. 그래서 올해는 무엇보다
소비자 신뢰도를 회복하는 데 주력하겠다. 그래서 슬로건도 '드라이브 유어 웨이(Drive your way)'에서 '뉴 씽킹,
뉴 파서빌리티즈(New thinking, new possibilities)'로 바꿨다."
뒤늦은 느낌도 있지만 분명 변화된 모습이다. 5G 그랜저로 다시 한 번 내수에서 도약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듯 꼭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기 바란다. 이왕이면 가격도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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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출처 - 오토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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