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 째 되는 날 갑판에서 처음 분류작업을 하게된 날, 이날은 파도가 정말 심하게 쳤다.
(아마도 너무 파도가 심하게 치니 갑판장이 통발작업을 직접하고 아래쪽에서 작업을 지시한 것 같다.)
분류작업을 하는데 정말 바닷물이 배위를 촥 하고 덮으면 갑빠에 모자까지 덮어쓰고 있어도
온몸이 물에젖고 눈도 못뜰 정도로 힘이 든다.
바닷물이 눈에 들어오면 정말 눈이 안떠진다.
고무장갑을 끼고 있어서 눈을 마음데로 닦을수도 없다.
겨우 실눈을 떠서 어종을 확인하고 분류작업을 한다.
문어나 붉은생선들은 정말 옮기기 쉽다.
게도 집게때문에 조금 까다롭긴해도 어창에 바로 넣는게 아니라
큰 다라이에 보관하다가 어창으로 옮기기 때문에 옮기는데 힘이 들진 않는다.
문제는 바다 장어인데 이놈들은 맨손으로 잡을수도 없고, 그물을 이용해서 잡아야되는데, 크기도 크기고, 힘도 엄청 좋다.
그리고 어창입구가 너무 좁아서 힘들다.
만약에라도 놓치게되면 장어가 발광하다가 배밖으로 흘러나갈수도 있다.
그게 다 돈이기 때문에 그런 실수를 하게되면 정말 심한 욕을 먹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한마리도 놓치지 않기위해 노력했다.
정말 마음으로는 임금문제에 속았다는 사실때문에 정말 일하기 싫은데
그래도 하는 동안에는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생각에 열심히 했다.
한번 미끄러진 장어를 잡기위해 배밖으로 흘러나가는 수로를 몸으로 막고 장어를 주워담으면서
나는 오늘 운반선이 들어올 때 육지로 나갈 것이라고 몇번이고 다짐했다.
바다에 흘러가는 장어를 잡기위해 몸을 던지고 겨우 잡아서 어창에 넣고나니 , 선장이 방송으로 얘기했다
'자 머하노? '
갑판장이 얘기했다.
'장어 잡지마라 ~ 아 잡는다,'
선원들이 조롱섞인 웃음을 짓는다.
다 죽여버리고 싶다. 그냥 다 죽여버리고싶다.
이미 그들에게는 나는 이미 떠날 사람이며, 이미 그들의 동료는 절대 아니였다.
그래도 묵묵히 나는 내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선장이 갑판에 내려와 갑판장과 대화를 나눈다
.
-아무래도 뭍에 들어가야될 거 같노
-비도 잡혀있고, 진도로 드가는게 낫겠는데예,
안듣는 척 일하면서 속으로 내심 다행이라고 몇번이고 외쳤다.
운송선이 온다고해도 안태워주면 그만이고, 해경을 부른다고하면 이들은 나에게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육지로 들어간다니 이건 정말 다행이다.
속으로 내심 다행이라고 외치며 생선들을 분류하고 있을때 선장이 날 부른다.
-니 사무장이랑 통화했는데, 니는 작업 시마이하고 옷갈아입고 드가라 ,
-예? 작업안끝났는데 들어가도됩니까?
-일못하겠다고 했다매, 일시키지 마라카니까 걍 드가고,
우리 육지드가면 내리든지, 운송선을 타고 내리든지 알아서해라
-예
속으로는 정말 쾌재를 불렀다.
이 미친 노동을 그만할 수 있다는 것이,
그때 마음은 솔직히 삼일 일했던 거 돈 안받아도 내려만주면 감사하게 내리겠다는 마음이었다.
적어도 그때 마음은 그랬다.
육지를 밟을수만 있다면, 그냥 이 미친 배에서 내릴수만 있다면,
건설현장이든 공장이든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선장의 지시를 받고 나는 작업복과 장화를 벗고 조리실앞에 방뚜껑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남들이 일하고있는데 쉬는 마음이란 이런 비유가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자퇴를 확정짓고 땡땡이를 치는 고등학생의 마음이랄까,
갇혀있는 곳에서 자유로워졌다는 해방감과 알 수 없는 걱정들이 섞인 미묘한 감정.
서랍같은 침실에 혼자 몸을 구겨넣고 휴대폰을 잠시 보다가 이내 문을 닫고 심하게 요동치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한시간여가 흐르고 작업중이던 선원들이 밥을 들고 방으로 내려왔다.
(배가 심하게 흔들리거나, 당장에 급한 작업이 없을 경우는 식사를 방으로 옮겨서 한다.
배가 안정적이고 급한 작업이 있을 경우에는 조리실 바로 앞에서 밥을 먹었는데,
밥은 개인 밥그릇과 국그릇만이 주어지며, 밑반찬은 군대나 학교에서 사용하는 식판을 이용하게 된다.
방에서 먹는 경우는 조금 덜하지만 조리실바로 앞에서 밥을 먹을 때는 정말 더러운 꼴을 많이 보게된다.
왜 뱃놈 뱃놈이라고 하는지.... 이들은 예절도 없으며, 공동체의 의식도 전혀 없었다.
물론 다른배는 어떨지 전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탔는 이배에서만큼은 확실히 그랬다.
밥을 먹다가 일어나서 두 걸음 정도 걸어가 오줌을 누고, 밥을 먹는 와중에 선장이 바로 옆에서 똥을 싸기도 한다.
먹어야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더러운 꼴을 보면서도 그냥 참고 먹는다.
선장은 선장실에서 따로 식사를 하게되며 식탁은 따로 없지만
쟁반에 밥과 국 반찬을 따로 담아서 배에 막내들이 선장실로 직접 가져다준다.
영화 해무를 보면 조금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남는 음식은 바다에 그대로 버리게 된다.)
선원들이 밥을 들고 내려왔지만 작업중에 열외되서 내려와 누워있는 나에게 누구하나 식사를 권하는 이는 없었다.
나 또한 전혀 먹고싶은 생각이 없었다.
이미 마음이 떠난 상태에 그 열악한 식사에 입조차 대고싶지 않았다.
나는 그냥 침대문을 닫아둔 채로 계속 잠을 청했다.
파도 때문에 작업이 불가했는지 식사를 한 선원들도 음식을 치우고 다들 침실에서 쉬고 있었다.
두시간여가 더 흐르고 갑판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짐싸서 나온나,
-예? 저요?
-그래 니 짐싸가 나온나 운송선 들어왔다니까 니 저거 타고 나가라
-예
헐레벌떡 내짐을 싸기 시작한다.
깔아놓은 이불, 벗어놓은 작업복은 다시 가져갈 생각조차 하지않았다.
왜냐면 다시는 나는 이 미친일을 하지않을 것이기 때문에.
당장에 입었던 옷들만 가방에 구겨넣기 시작했다.
갑판에 나가니 갑판장과 선장, 갑판장과 붙어지내는 선원 셋만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통발어선보다 작아보이는 어선이 과자와 담배등 박스 몇 개를 싣고와서 나르기 시작하고,
두 명의 짐을 든 사람들이 이쪽배로 옮겨탔다.
내가 내려서 타게된 사람들인지, 아니면 늦게라도 합류하게 된 사람들인지 나는 알길이 없었다.
다만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나는 내짐을 저배로 옮기고 나는 오늘 육지로 나가야된다는 것이었다.
운송선에서 옮겨실어야 될 짐을 다 옮겨실은 뒤 선장이 방송으로 빨리 나보고 옮겨타라고 얘기했다.
꽤 먼거리였지만 짐을 둘러매고 나는 뛰어넘어서 배를 옮겨탈 수 있었다.
옮겨탄 배에는 선장 1명과 기관장 1명의 늙은 어르신 두분만이 타고있는 배였다.
옮겨탄 배에 갑판에 앉아 담배를 피면서 멀어져가는 운x호, 내가 탔었던 배를 지켜봤다.
(1에 첨부했던 통발어선의 사진은 제가 운송선에 옮겨타서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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