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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MHz (18:25~20:00)
■ 방송일 : 2020년 5월 14일 (목요일)
■ 진 행 :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
■ 출연자 : 허연식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2과장)
...(선략)...
◇ 정관용> 제가 오늘 인터뷰 시작하면서 말씀드린 군부대 안에서 무고한 시민을 대검으로 살해한 이건 어디서 어떻게 밝혀지게 된 거예요?
◆ 허연식> 2007년도 당시에도 국방부에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활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짧은 기간이기는 했지만 이 과정에서 군 관계자들의 증언을 다양하게 청취를 했고 이 증인들의 면담조사 결과에서 확인된 사실입니다.
◇ 정관용> 2007년에 이미 확인됐어요?
◆ 허연식> 네,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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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관용> 그런데 왜 민간인 학살이나 이런 것들이 그동안에 여러 영상자료나 사진자료나 증언 같은 걸 통해서 알려져왔는데 지금 말씀해 주신 이런 것들은 왜 그동안 정확하게 안 알려져왔을까요?
◆ 허연식> 우선은 5.18과 관련해서 대부분의 쟁점은 발포 책임자. 다시 말하면 최초로 발포명령을 한 사람이 누구냐. 그리고 신군부 개입에 의한 지휘체계 이원화, 암매장, 행방불명자 이런 굵직굵직한 사안들이 대부분 국민들의 관심 대상이었고 실제 광주 현장에서 벌어졌던 여러 민간인 학살이라든가 시위상황과 무관한 과잉진압이라든가 이런 사례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최초 발포 또 요즘 같으면 헬기사격 이런 데 집중하다 보니 그랬다 그 말이군요.
◆ 허연식> 그렇습니다.
...(중략)...
◇ 정관용> 그런데 아까 처음 얘기하실 때 조사관 숫자가 34명이라고 그랬잖아요. 그게 지금 1, 2, 3과로 나누면 한 과당 한 10명 정도밖에 안 되는데 조사대상은 이렇게 많고 이게 가능할까요?
◆ 허연식> 그래서 이게 결국은 처음에 이 특별법이 발의될 때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였는데 결국은 그때 당시 자유한국당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누더기가 된 셈이죠. 결과적으로는 34명의 조사관이 2년 동안 이 모든 과제들을 다 밝혀내기는 어렵다라고 봅니다, 현실적으로.
...(중략)...
◇ 정관용> 참, 그런데 이제 어찌 보면 마지막 조사가 되지 않을까요?
◆ 허연식> 이 특별법에 의해서 설립된 국가독립기구로서의 5.18 진상조사규명위원회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직은 생존해 있는 상황에서의 사실상 마지막 조사가 될 겁니다. 그리고 이 특별기구, 국가의 특별기구라고 하는 측면에서 보면 국가의 공식적인 보고서, 결과보고서를 채택하는 작업. 이것이 이제 결국 저희가 해야 될 마지막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후략)...
[요약]
(1) 2007년에 교차검증 완료 된 5.18 당시 학살 기록을 발굴하여 조사 시작함.
(2) 조사위를 꾸리는 단계에서 당시 자유한국당이 트롤링 한 덕분에 전부 인력/시간 다 제대로 배정 받지 못 해 100% 다 밝혀내기 어려움.
(3) 40년이나 지난 시점이라 사실상 이번 조사가 생존자/피해자들이 살아있을때 하는 마지막 조사가 될 예정.
[결론]
"처음에 이 특별법이 발의될 때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였는데 결국은 그때 당시 자유한국당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누더기가 된 셈이죠."
손톱깍기로 살점을 다 깍아내면서 죽여야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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