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3월 1일 시작된 제주도의 4.3사건은 1954년 9월 21일까지 이어졌습니다.
제주에서 3.1절 기념행사를 하던 중 기마경찰이 아이를 치고도 그냥 가버린 것에 군중들이 돌을 던지며 항의를 했고 그것을 총을 쏴서 진압을 했던 것이 4.3사건의 발단이 됐던 것입니다.
이날 발포로 송덕윤(49세 농부), 김태진(38세 농부), 양무봉(49세 농부), 오문수(34세 농부), 허두용(15세 국민학생), 박재옥(21세 주부)가 사망했습니다. 이중 박재옥 여성은 젖먹이 아이를 안고 있었습니다.
사망자 6명 중 5명은 등 뒤쪽에서 쏜 총탄에 맞았습니다. 하지만 이를 두고 경찰은 정당방위라 주장했고 제주도민들의 분노는 높아졌습니다. 그러자 육지로부터 응원경찰이 파견 됐고 제주도에는 통행금지령이 내려졌었습니다.
이 날로부터 시작 된 제주도의 비극은 전쟁이 끝나고도 1년이 지난 시점까지 7년을 계속 됐습니다. 전쟁 중에 이승만은 유사시에 제주까지 도망가려 계획을 세웠는데 자신이 죽인 제주도민들이 해코지를 할까봐 무참히도 학살에서 살아남은 제주도민을 죽였습니다. 남로당과 무관했던 노인과 아이, 주부들까지 산으로 들어가 저항한 가족이 있으면 찾아내서 죽였습니다.
제주 4.3사건으로 추정 사망자가 6만~8만까지 보고 있습니다. 당시 제주의 인구는 27만명이었습니다.
4.3에 관련된 것은 다음 달 다시 올리겠습니다. 어째든 1947년 3월 1일은 제주도의 비극이 시작된 날입니다.
4월 3일은 많이 기억 하지만 이 날은 3.1절과 겹치면서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 글을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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