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출신 안귀령, 동문들 ‘김준혁 규탄’에 비겁 침묵”
https://v.daum.net/v/20240408053612108
김활란 친일행적
1936년 이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변절했는데 '아마기 카츠란'이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한 것은 물론이고 1936년 말부터 갑자기 교육과 여성 계몽 분야에서 친일 활동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기 시작했다. 조선총독부 관제 단체에는 거의 다 참석했고 매일신보에 정신대 참여를 적극 독려하는 글을 수백 편 쓰는가 하면[14] 내선일체 찬양글도 많이 썼다. 1938년의 윤치호 일기를 보면 윤치호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석방을 위해 애쓰는 것에 대해서 김활란이 분노했다는 대목이 있는데 이것만 봐도 김활란의 변절이 얼마나 철저했는지 짐작이 간다. 당시 김활란과 함께 친일반민족행위에 앞장섰던 여성계 지도자들이 박마리아[15], 모윤숙[16], 노천명 등이다.[17]
조선총독부 관제 단체에는 거의 다 참석했고 매일신보에 정신대 참여를 적극 독려하는 글을 수백 편 쓰기도 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자신이 졸업한 이화여자전문학교(졸업 당시에는 이화학당 대학부) 학생들에게도 정신대 참여를 독려한 것이다.
김활란은 해방 이후 정국에서 모윤숙과 함께 '낙랑 클럽'이라는 고급 사교단체를 조직하였다. 문제는 이 단체가 주한외교사절, 미국 고위관리, 미군 고위장성 등을 파티에 초대하여 접대하고 정보를 빼낼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였다는 것. 특히 낙랑클럽은 이화여전 등의 명문 여자 대학생 출신으로 이뤄졌다. 낙랑 클럽의 자세한 실체는 90년대 중반 중앙일보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가 비밀해제한 문서에서 발견하여 폭로하면서 널리 알려졌는데, 당시 국내 주둔하던 미군의 정보기관인 CIC가 작성한 비밀 문서에 기록된 이 단체의 실체는 다음과 같다
낙랑클럽은 서울에 거주하는 여성들에 의해 48년이나 49년께 사회단체로 조직됐다. 이 단체의 목적은 외국귀빈, 한국정부 고위관리 및 미군장성, 주한 외교사절 등을 접대하기 위한 것이다. 이 단체의 회원은 한국의 모 일류 여대를 졸업한 교육받은 여성들에 주로 국한됐다. 이들은 대개 영어를 할줄 아는 매력적인 여성들로 교양있는 호스티스였다. 특히 부산 피난 시절에는 송도(松島) 돌산 위에 세워진「시 사이드 맨션」등이 파티장으로 이용됐다. 이 클럽을 앞장서 조직하고 이끌고 있는 사람은 YWCA 총재이자 저명한 시인이다. 그녀는 51년12월 유엔총회 당시 소련 외무장관 비신스키를 열렬히 포옹한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낙랑클럽 회원들은 기혼, 미혼, 무직, 직업 여성등 다양한 인적구성을 보이고 있으며, 초기에는 회원수가 1백 50명에 달했다. 외국인 접대행위는 몇몇의 경우 외국인의 정부(情婦)가 되는 일로 발전되기도 했다. 실례로 낙랑클럽 조직 구성에 참여했던 한 여성은 부산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영관급 장교의 정부(情婦) 노릇을 했다.
대한민국에 해만 끼치고 아무짝에도 도움 안되는 애들이라고 봄.
안귀령과 김활란 이 무슨 연관이 있나
이해가 안되네
이대 출신인 안귀령이 가만히 있는게 말이 되냐고 씨부리는거 같네예.
문서로까지 기록되어 있는 팩트를 보고도,
지들이 창피해야 할 상황인데, 문제가 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모양이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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