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이순신 - 양규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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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 은
칼을 쓰는 민족이란 뜻이었지만
사람의 피를 좋아하는 민족으로 더 많이 불렸다
이들은 노예로 가치있는 자는 생포하고
그렇지 않는 자들은 모두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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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동아시아 최강이었던 거란
거란의 기병 전투력은 몽골과 동일시 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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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3년 거란의 1차 침략 당시
서희의 단판으로 확보한 강동 6주
서희는 이곳에 성을 쌓아 요새화 시킨다
거란의 40만 대군에 맞선
3000여명의 양규장군 부대
"너희들이 항복하면 즉시 회군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경으로 쳐들어가서
너희 처자들을 죽일 것이다"
- 거란
" 우리는 몸과 뼈가 가루가 되더라도
영원히 위대한 고려를 받들 것이다"
- 양규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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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군의 사기를 꺾기 위해
아이와 노인을 인질로 삼은 거란군
" 싸우는 상대의 사기를 꺾기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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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주성으로 들어가
거란병 6천명을 공격했다
성 안의 포로 7천 명을 구해.
1700 vs 6000
적군보다 훨씬 적은 수로
공성전 승리.
거란의 퇴각에 영향을 미친 양규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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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옷도 입지 못하고
끌려가던 고려의 백성들.
거란에 끌려가게 되면
대를 이어 노예로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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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7일
거란군 1만명 사살
1월 18일
거란군 2천명 사살. 포로 3천명 구출
1월 19일
거란군 2천 5백명 사살. 포로 천여 명 구출
1월 22일
거란군 천여 명 사살. 포로 천명 구출
양규 장군과 1700명의 최정예 병사들은
포로들을 구출하기 위해
회군하는 거란군을 여러차례 기습합니다
양규 장군과 1700명은 평범한 병사들이 아니라
최정예 병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네이비실나 특수부대 수준이었죠.
거란군은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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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각하는 거란군 공격한 '양규'
퇴각하는 왜군을 공격한 '이순신'
이순신 = 양규
마지막까지 적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고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았던 두 장군
돌아가는 적을 최대한 타격해야
다음번이 쉽게 쳐들어오지 못해요
'돌아가는 적을 고이 보내지 마라'
중요한 원칙인데 이게 힘들어요
왜? 전쟁이 끝났잖아요
병사들도 이제 싸우기 싫거든요
이순신 장군이 존경받는 가장 결정적인 건
노량해전에서 그냥 보내줘도 되는데...
사실 병사들 입장에서 보면 이 전투 안하고
집에 살아서 돌아가도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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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양규인가?
저 자를 막을 장수가 정녕 우리에겐 없단 말인가?"
어마어마한 공포감을 느꼈을 거예요
어디에서도 이런 군대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거란이 강조의 편지를 위조해 흥화진에 보내어
항복하라고 설득하니 양규가 말하기를
"나는 왕명을 받고 왔지 강조의 명령을
받은 것이 아니다" 라고 하면서 항복하지 않았다
만주벌판 개마고원의 유목민족을 복속 시킨
고구려의 무사들이 얼마나 대단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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